국가의 탄생 - 근대국가의 중세적 기원 중앙사학연구소 번역총서 1
조지프 R. 스트레이어 지음, 중앙대학교 서양중세사연구회 옮김 / 학고방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조지프 R. 스트레이어 (혹은 조셉 R. 스트레이어)는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대학 출신의 역사학자로서, 1930년대 모교인 프린스턴 대에세 오랫동안 교수를 역임하며, 학자로서는 드물게 CIA에 관여를 했으며, 첨예한 냉전 구도속에 특유의 국가론을 견지하며, 그에 따른 연구와 저술활동을 지속하다 1987년에 생애를 마쳤습니다. 특히 스트레이어는 소수의 엘리트 지배에 따른 국가론을 지지했는데요. 또한 이와 관련하여 합리적 관료주의에 대한 학문적 논거에 적지않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은 1961년부터 행한 일련의 강ㅇ연, 대학 강의, 논문 발표 등을 통해 영감과 필요성을 도출해 출판된 것으로, 지난 1970년 ‘On the Medieval Origins of the Modern State’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국내에는 일종의 기획된 연구번역물인 ‘중앙사학연구소 번역총서’중의 하나로 2012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약간 특이한 점은 중앙대 역사학과 차용구 교수의 지도하에 번역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해당 역사학과가 주도적으로 번역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꽤 번역이 좋았습니다.

작고한 스트레이어 교수는 지난 2007년 작고한 아서 슐레진저와 더불어 1970~80년대에 유명했던 학자였습니다. 특히 유럽 중세 역사에 대한 미국 국내의 권위자였으며, 근대 국가의 출현에 따른 근대 정치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서 그의 이 책은 그러한 학문적 연구선상에 있는 논저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래서 이 책은 특유의 몇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친영주의적 관점, ‘잉글랜드 내부에는 강한 동질성을 갖고 있었다’는 측면의 해석을 기반으로 유럽 역사에서 12세기 이후 잉글랜드에 대한 긍정적 서술 관점이 보이고, 두번째로는 현대의 국민국가에 대한 해석과 연결되어 보이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민족주의는 엄연히 다른 부분이라는 인식에 따른 그 자신의 대의 명제, 즉 엘리트 들을 위시한 위로부터의 국가 토대가 이러한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연계되어야하는 필요성에 대한 요구입니다. 그가 피지배 계층의 불만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러한 예측이 더욱 가능해 보입니다.

우선 책의 1장은 11세기의 유럽 정세를 요약해 보면서, 소위 국왕의 통치 기반인 위로부터의 초기 주권 개념과 세속 권력인 국왕과 종교 권력인 교황 권력간에 전반적인 해석과 전개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고, 2장은 1장에서 서술했던 봉건영주와 국왕의 관계에서 중요한 문제였던 조세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출현했던 초기 사법제도와 14세기 전반을 휩쓸고 간 흑사병의 광풍 이후 일부 지방의 통치조직들이 와해된 결과에 따른 제한적인 관료제의 출현 등을 다루고 3장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포괄적인 제목으로 초기 근대국가의 출현에 영향을 끼친 상비군의 개념과 유산 계급의 출현에 따른 기존의 왕정과 국가 지배체제의 여러 변화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일단 여기의 이 책이 큰 맥락에서 밝히고자 하는 점은 17세기 이후 초기 근대 국가의 성립에 기존의 ‘암흑의 핵심’이라는 중세의 영향이 기반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인식 태도에서 서유럽의 중요한 두 국가, 즉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 전체의 봉건 국가형 체제의 벤치마킹된 중요한 국가들이었고, 또 다른 이해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상이한 체제 발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앞서 제가 언급했던대로 잉글랜드가 복잡한 지역 기반의 프랑스와는 달리 동일한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는 국가로 평가하며, 17세기 중반 이후 짧은 크롬웰의 대두를 제외하면 꽤 안정적인 토대 위에 있던 국가로 잉글랜드를 배경의 논증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반대로 프랑스는 노르망디를 비롯해 지역적 특색과 기반을 갖고 있는 지방의 봉건 영주들과 영국과의 백년전쟁을 통해 통합과 분열의 정치라는 상황속에 놓여 있던 프랑스의 상황도 상세히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논법은 1장에서 보인바와 같이 초기 조세권에 대한 국왕과 교황의 갈등, 이를테면 프랑스에서 보인 주교들에 대한 조세권에 대해 이렇다할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교황의 사실상 무기력한 양보와 이후 역대 교황들이 국왕과의 세속 정치권의 대결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인정한 이후 조세권과 관련된 통치자의 권리가 어떻게 인식과 제도의 발전을 해 왔는지에 대해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세권과 이 징세 문제와 관련된 초기 사법 제도 및 이후 유산계급의 요구와 맞물려진 합리적 관료제의 출현이 근대 국가 성립의 주요한 기반인 것은 역사로서나 정치 일면으로서나 분명해 보입니다. 이렇게 12세기에서 16세기 후반까지 유럽에서 소위 위로부터의 주권 국가 sovereign state의 성립 과정이며, 초기 사법제도도 마찬가지로 위에 조세와 관련된 조세징수원이 재판관을 겸임한 것으로 기원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동시에 쇠퇴하고 있던 봉건 영주들과 유산 계급의 출현으로 초기 의회가 생성되고 “이들 의회가 정부의 조세 수입을 억제할 수 있는 한, 유럽 국가의 발전은 방해를 받았다”는 저자의 평가는 어쩌면 “주권 개념이 도대체 언제부터 등장했고, 그것의 정확한 규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왕의 징세에 대한 권리’를 효과적으로 막아내기 위한 지방 과두 세력과 통치 세력들의 저항은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답을 도출하기 위한 어려운 역사적 사실이라고 파악됩니다. 또한 에스파냐의 카탈루냐 지방의 오래 존속된 정치적 독립성이 이것을 단순히 민족주의라고 보기보다는 지방의 독립성을 추구한 결과라고 보는 측면의 저자 해석이 꽤 설득력이 있는 것도 앞선 주권 개념의 명확한 개념을 설명하기 여려운 것과 유사하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국왕 휘하에 설립된 국왕 직속 재판정을 비롯해 “법을 제정하는 권한에서 주권을 발견할 수 있다”는 해답은 일견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국왕의 통치 권력을 확실히 보증하는 것에는 징세의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므로 제한적인 개념일 수 있습니다.

또한 16세기 전반에는 큰 전역이 유럽에서 발생하지 않아 성곽의 주요 경비를 제외한 상비군의 필요성이 시급하지 않았고, 산발적인 국지적 갈등에 용병을 이용한 것은 앞선 상황을 잘 설명한 만하고, 특히 16세기 이전에는 국외 정보에 관심을 두지 않다가 이후, “16세기에 국외 정보에 관심을 갖고 이 부분에 능통한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진 것”은 국내 상황에 대한 통제 가능성이 어느 정도 이뤄진 이후, 산발적인 국지전과 외교 문제에 따른 필요성으로 인해 일종의 전문적인 직위 계급의 출현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의 국왕 휘하에 있던 각종 장관들이 자잘한 국내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지만 국외에 눈을 돌리게 되는 이러한 외부 정보 요구는 근대 국가 출현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국내 불만과 수용 가능하지 않은 요구들이 야기시킨 각종 반란에 대해 “최후의 수단인 군사력은 집단이나 지방에 관용의 한도를 넘어선 경우에만 사용될 수 있었다”는 기존의 패러다임과는 다른 변화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렇듯 초기 근대 국가의 출현이 면밀한 중앙 집권적 권력 체계의 형성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 중앙에 대한 각종 견제가 여러 측면에서 생성되고 그러한 서로간의 인식과정이 (자의이거나 혹은 타의거나) 어떤 공감대를 갖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법적인 측면이나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주건의 최고위 행위자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과 이를 통해 합리적 관료제가 출현하는 것은 꽤 절묘한 역사적 과정이 아닌가 느껴졌습니다.

끝으로 국내에는 스트레이어 교수의 번역이 많지는 않은데요. 개인적으로는 그의 전기가 번역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다가 문득 들었습니다. 아마도 중세 유럽에 대한 상이한 관점의 논증이 저의 관심을 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초기 근대국가와 국민 국가 생성의 기원론에 관심있는 분들은 스트레이어의 이 책을 통해 도움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고, 번역 자체가 꽤 매끄러워 일독에도 크게 거부감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책 107페이지에 띄어쓰기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데 이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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