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국가의 탄생 - 베트남 전쟁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고삐 풀린 미국의 전쟁사
레이첼 매도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미국 내에서 대표적 진보 정치 논평가로 잘 알려져 있는 레이첼 매도는 MSNBC의 자신의 이름을 딴 저녁 뉴스쇼 ‘레이첼 매도 쇼’를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스탠포드와 옥스포드를 거치며 학업을 쌓았고, 세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장학금이라 불리우는 ‘로즈 장학금’의 수혜자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언론인이 자신의 본업과 연계하여 이러한 글을 쓰기는 쉽지는 않은데요. 더군다나 과거 전직 대통령들의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는 경우와 관련해서도 그렇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Drift : The Unmooring of American Military Power”이며 지난 2012년에 출간되었습니다. 국내 번역 출판은 7년의 격차가 있는 셈인데요. 갈라파고스가 이 책의 번역 출판을 맡았습니다.

저자인 레이첼 매도가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는 점은, 미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군을 동원하는 전쟁 수행에 있어서 과거 베트남전 당시 미군 총사령관이었던 크레이턴 에이브럼스가 마련한 “군 통수권자가 전쟁을 벌이기가 더 어렵도록, 또는 최소한 미국 국민의 지지를 먼저 받아 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쟁을 벌이기가 어렵도록 하는 방향으로 미 육군을 재편하는 식의” 에이브럼스 독트린에 반대되는 백악관의 각종 불법적인 군사 작전과 전쟁 수행 과정 등을 해당 대통령의 임기로 구분하여 분석하여 밝히는 비판이 주된 대상입니다. 관점에 따라서는 꽤 충격적인 내용도 많아서 언론인 출신의 저자가 발휘하는 용감한 양심이라고 평가해도 될만한 책이라 여겨집니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베트남에 결코 발을 담그지 않겠다고 맹세한 린든 존스 행정부 시기부터 가장 최근인 오사마 빈라덴의 참수 작전을 명령한 오바마 대통령까지 ‘행정부의 수반과 군사 작전 및 군사 수행’을 간략하지만 꽤 의미심장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9장은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와 그 핵무기 시대에 발생된 여러가지 사건 사고를 또한 밝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9장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미국이 지금까지 모두 합쳐 핵폭탄 11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의 언급입니다. 저는 그동안 현재 파키스탄의 핵무기가 가장 위험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온적이 있는데요. 그런데 파키스탄보다 못한 핵무기 분실사고를 미국이 해왔다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이것이 그동안 ‘상호확증파괴의 시대’에서 이 지옥의 무기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뻔히 아는 세계의 패권 국가가 이것을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했던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저로서는 정확히 인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냥 할말을 잃어버렸다고 해야할까요.

우선 냉전시기 중요했던 미국 현대사의 측면에서 레이건 행정부의 진면목을 고찰해보고 있는 점은 이 책의 다른 장점으로 보입니다. 일전에 딘 베이커가 이란-콘트라와 그레나다 침공을 다루기도 했습니다만 제2의 닉슨이 될 수 있었던 이란-콘트라 게이트를 교묘히 빠져나간 이후 동시에 레이건이 퇴임한 뒤, 그에 대한 숭배 작업은 미국 사회의 한 정치사회적 트렌드이기도 했습니다. 저자인 매도도 이것과 관련해서 대통령직을 끝장낼 수 있었던 이 스캔들에 있어서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는 레이건 대통령의 치밀함과 증거와 자료를 배제한 채 스스로 직감에 의존해 벌여왔던 그의 정치적 특성을 새로이 조명하고 사실상 그동안 잊혀져 왔던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정치군사적 여러 패착과 불법행위 등을 다시금 물밑으로 끌어올리는 결과물이라 봐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2장부터 5장이 레이건 행정부에 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다만 아주 사소하지만 올리버 노스를 비롯한 이란-콘트라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자들의 사면을 딘 베이커가 분석한 책에서는 레이건 대통령 자신이라고 밝혔지만, 매도의 이 책에서는 이후 조지 H. W. 부시의 작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닉슨이 제럴드 포드에 의해 워터게이트에 대한 사면을 받은 것과 같은 사례라고 매도는 분석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사면권이 부여되는 이유는 다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일찍이 제임스 매디슨이 미국의 민주주의와 관련해 우려했던 것은 행정부가 군사력을 손에 쥐고 빈번하게 전쟁에 나설수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1941년에 루즈벨트에 의한 예외를 차치한다면, 앞선 에이브럼스의 작업도 미국 백악관의 주인이 미국 국민의 의사와 반하여 군대를 파견하게 되는 상황을 동일하게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도 레이건이 닦아 놓은 군사 투입과 관련된 행정부에 부여된 법적인 해석으로 말미암아 1991년 조지 H. W. 부시의 걸프전과 클린턴 행정부를 거쳐 조지 W.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된 대테러 전쟁도 이와 같은 맥락위에 놓여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아마도 미국의 의회가 대통령의 주도면밀한 전쟁 권한과 관련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사실상 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맹렬한 토론의 전제조건인 국민의 안전이 아마도 현재 거미줄처럼 놓여 있는 미국의 세계 안보 시스템에 오히려 미국 시민들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것이 아닌가 확대 해석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더불어 이 글을 통해 알게된 또다른 사실인 클린턴 행정부 시기 전적으로 비용 절감을 위해 군의 독특한 임무와 권리를 아웃소싱 및 민영화하여 수많은 민간 용역 업체를 탄생하게 만들고 이들의 한곳이 발칸 반도에서 성노예 여성을 불법적으로 구매해 성착취를 해왔던 것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실로 군조직이라면 발생할 수 없는 일이 민영화에 의해 이런 비윤리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던 것이죠.

그리고 CIA에 의한 국외 작전, 특히 드론과 관련된 파키스탄과 중동에서의 비밀 작전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데요. 여기서 심각한 문제는 군사 작전을 CIA에게 사실상 위임되고 있고, 이것의 감시가 과연 미국 의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인가와 군사 작전과 관련된 문제를 군이 아닌 정보조직이 수행하게 되는 것이 미국 국가 안보의 시급성을 논하더라도 과연 이것이 이상한 선례가 되지 않을까 고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람보다 큰 화면으로 드론이 보내주는 영상을 바라보면서 물론 테러 용의자들이긴 하지만 이들을 제거하면서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를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를 놓고 셈법을 하고 있는 묘사는 실로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미국은 그동안 그 많은 군사 개입과 군대의 파견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기반은 튼튼히 민주주의적 정치체를 유지해 왔습니다. 의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금권정치하에 놓여 있음에도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과 관련된 최소한의 기준을 갖고 있었고, 자신들의 의회 나들이가 바로 이러한 것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필히 인식하고 있는데요. 이런식으로 정보 비밀주의에 당연히 필요한 견제와 감시가 결여되기 시작하면 이런 식의 패러다임이 과연 어떻게 나타날지는 꽤 부정적이라 봐야 할 것입니다.

앞선 미국의 핵무기 유실과 동일하게 또 충격이었던 것은 파키스탄 내의 한 마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 지내고 있었다는 것인데요. 저자인 매도는 파키스탄 정권이 이를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금시초문이었는지와 관련해서 만약 전자라면 파키스탄 정권의 심각한 자기 모순이며, 후자라면 파키스탄 정부에 있는 자들은 다 쓸모없는 자들일텐데요. 오바마가 이 비밀 작전을 승인하면서 만약 파키스탄 군이 방해하면 교전해도 좋다고 허락했던 것으로 보아 이 중동의 군사정부는 물타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부분도 적지않은 충격이었습니다.

끝으로 과거 레이건이 주도한 그레나다 침공과 관련해 아직도 많은 이들이 터무니 없는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에서 이 책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지 꽤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한국 전쟁 시기에 큰 도움을 받은 국가로서, 반세기를 넘는 동맹 관계에 적지않은 경제 발전에 자국의 시장을 허락한 것과 분명히 한국과 그 국민들에게 살 기회를 준 것은 미국의 손길이기도 합니다. 다만,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의 석유와 인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지대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러 경제와 산업에 필수 물자인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일개 중동 깡패 지도자가 탈취하는 것을 미국은 눈뜨고 그냥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또 이와는 반대로 그 즈음에 유고슬라비아에서 인종 청소가 벌어졌을 때 관심 사항이 아니라고 조지 H. W. 부시가 사실상 손을 놓았던 것과 같이 미국도 자신의 이익이 어디에 가까운지에 따라 군사적 개입을 비롯한 적극적 도모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명백하게 우리와 미국은 혈맹과 다름없는 동맹관계이지만 국가의 이익과 국제 무대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좀 더 냉정하게 미국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좀 더 필요하지 않나 매도의 이 책을 통해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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