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본제국 붕괴 - 1945년 일본의 패망과 동아시아
가토 기요후미 지음, 안소영 옮김 / 바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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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책의 저자 가토 기요후미는 일본근현대사와 동아시아사 등을 연구하고 있는 역사학자입니다. 한자로도 동일하게 ‘대일본제국붕괴’인 원전은 지난 2009년 일본에서 출간되었는데요. 흥미롭게도 2010년 국내에 번역 출간되고 나서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을 친히 게재할 정도로 한국에서의 출판에 큰 관심을 가진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문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에 계신 분들의 강렬한 지식 욕구에 무척 놀랐습니다”라는 문장입니다. 이 일본인 역사학자가 그동안 삶을 살면서 귀와 눈을 막지 않았다면 일본 식민지 시기의 한반도와 중국, 동남아시아에서의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잔혹한 역사를 인식하고 있을겁니다. 우리 한국인이 그러한 역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 일본인 역사학자는 어떤 말을 이 책에 담았나 바로 그런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로 관심을 받을 수 밖에요. 한국어판 서문에 박혀 있는 저자의 저 문장 때문에 저는 뭔가 복잡한 심사를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기와 그 종전의 역사가 한국인들에게 단순히 ‘강렬한 지식 욕구’로 해석되는 건지 하는 씁쓸한 감상과 함께 말이죠.

우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저는 그동안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주변국들에 대한 식민지 침탈의 역사를 담은 글을 읽을 때마다 매우 집중해서 그리고 토씨 하나 허투루 넘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가토 기요후미의 이 책도 마찬가지로 기묘하지만 많은 책들이 시원하게 이해되지 않는 간극이 있었습니다. 또한 꽤 교묘한 언설도 함께요. 오늘날 자민당과 총리 아베를 필두로 위에서 아래로 불고 있는 일본 내의 ‘역사수정주의적 입장’은 대다수의 일본인들의 예의 침묵과 함께 강화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아시아인들에게 진 것이 아니라 미국에게만 진 것이다”부터 시작해서 꽤 대표적으로 뿌리채 뽑히지 않고 있는 난징대학살의 그 왜곡적 인식 태도, 독일과 비교해서도 드러나는 사과와 배상에 대한 애매한 태도 등 외에도 수백 수천가지가 있지만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을 포함한 일본 자체는 매번 그래왔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그나마 리버럴한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는 오에 겐자부로조차도 전후 역사에 대한 약간 애매한 태도를 갖고 있죠. 최근에 불거진 위안부 문제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본측의 정치역사적 태도로 인해 한국 내에 동아시아 공동체 혹은 동아시아 연대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을 정말 끊임없이 비판해 왔던 것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총 7장의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요. 특히 기존의 일본인에 의한 종전사와 관련해 새로운 서술의 행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준비되지 않은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이뤄진 당시 조선, 타이완, 만주를 살펴보고 있으며, 기존의 알탸회담이 일본에게 있어서 스탈린에 의한 술책으로 보는 것과 루즈벨트에 이어 등장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사실상 부정적인 의견 등 입니다. 당시 일왕에 의한 ‘항복 옥음 방송’ 으로 인해 한반도에 정치적 공백이 발생했고, 한국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게 되는 과정과 이후 자기 결정권이 박탈당하는 정치적 혼란의 분위기를 꽤 객관적으로 설명해 내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자에게 한가지 고마운 점은 영국과 미국은 조선의 독립이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지만, 본디 한반도에 있던 조선은 일제치하의 35년을 제외하면 오랫동안 통일 왕국의 역사로 존재했던 것을 첨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정에 어두운 미국과 영국을 꼬집은 것이죠. 그리고 중국의 장제쓰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한반도에는 필히 정식의 정부가 있어야만 주장했던 것도 서구와 이 지역 사람들과의 본질적인 역사인식 차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렇게 일왕의 항복 선포 전후에 발생한 사건들 중에서는 소련의 만주 침공을 비판하고 있는데요. “소련으로서는 군사적 위혐도 받지 않았음에도 중립조약을 위반하면서까지 만주에 침공한 대의 명분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평가하는데요. 이 부분이 앞뒤 행간으로는 당시 일본 제국을 위한 변명인지, 눈뜨고 소련에게 강탈당한 만주을 바라보는 중국의 장제쓰를 위한 건지는 다소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연합국으로 참전해 독일과 유럽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치룬 스탈린에게 그 전에 맺은 일본과의 중립 조약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이미 세계대전인 상황에서 주축국을 제거하기 위한 명분이 스탈린에게 있었는데 뻔히 알고 있는 일본인 역사학자가 명분 운운 하는 것은 다소 이치에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또한 소련의 참전을 막기 위해 당시 일본 내각이 전면적인 모스크바에 대한 화평교섭을 시작하면서 소련 측이 시간을 끌기 위해 일본 대사에게는 즉시 선전포고를 하고 대사관 주위의 통신을 끊은 걸 대단한 술책으로 여기는 저자의 인식도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스스로도 외교에서 강대국이 일방적으로 행하는 수단들에 대해 단순히 도덕이상주의적 접근은 거의 쓸모가 없다고 인정했으면서, 미국은 인정할 수 있고, 소련은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이분법은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통용될 만한 가치일수는 있겠으나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에는 얄타 밀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스탈린의 술수라고 언급하고 “독일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탈린은 일본의 분할 점령을 통해 미국에게서 양보를 얻으려고 했다”고 분석하는데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소련군에 의한 만주 진입을 정당성의 문제로 치환시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일본 제국이 패망하기까지의 각국의 정치적 셈법과 외교적 술수 등을 잘 설명해 냈으면서도 조선 총독부가 와해되고 해방 한반도에 속속들이 생겨나는 정치 세력을 열거하는 와중에 이 중 백범 김구 선생을 설명하면서 “과격한 독립 운동”을 시도했다고 평가하는 대목에서는 역시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원폭 개발의 성공과 소련의 공동성명 참가를 명백히 밝혔다면 일본은 항복 의사를 표명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미군이 진입한 오키나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말할 필요도 없이 도쿄가 미 공군에 의해 대 공습을 받을때도 본토에서의 결사 항전을 주장했던 인사들이 적지 않았는데, 마찬가지로 이 부분과 논리적으로 대치되는 저자의 평가는 “일왕의 항복 표명의 가장 큰 이유는 원폭 투하가 아니라 소련의 선전포고였다”입니다.

약간의 논외지만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산개해 살고 있던 일본인들이 3천만이나 되었는데도 당시 일본 정부는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으라는 식의 아무런 대책을 보이지 않은 것을 당시 일본 정부가 얼마나 대책이 없었는지 저자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책임 회피에 대한 냉엄한 책임 추궁이랄까요. 일왕이 항복 옥음을 발표하면서 ‘신민’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오로지 ‘일본인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한때 나마 강하게 일본 제국 신민으로 이해되었던 ‘반도인’과 ‘본도인(타이완인들)’들은 순식간에 제국 신민이 아닌 것이 되었다고 아마도 패망하는 일본 제국의 허울을 꼬집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역사학자의 이 책은 일본 제국의 패망과 관련된 정치와 외교, 그리고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선에서 더불어 첨언으로 제국이 사라진 조선과, 타이완, 만주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뒤에 동남아시에 대한 간략한 서술도 이어지지만 큰 의미는 없어 보였습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좀 더 곰곰히 생각해봐야겠지만 이러한 역사적 서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는 약간 어렵기도 하군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의 보론으로서 하세가와 쓰요시의 ‘종전의 설계자’를 다음 읽을 것으로 준비해 놨습니다. 약간의 애석한 저의 평가는 대충 이 즈음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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