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 무시, 물화 -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김원식 지음 / 사월의책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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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INSS)의 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인 이 글의 저자는 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한 연구와 하버마스 이론에 따른 사회비판, 지구화 시대의 정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앞선 연구들을 통해 한국 사회를 위한 종합적 비판 이론을 모색하는 것을 찾고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각종 사회철학의 최근 논의들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약력을 보면서 문득 호기심이 생겼던 것은 어느 대학의 강단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로버트 케이건 등과 같이 꽤 독점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연구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어쩌면 후학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이 사회나 국가에 일정 부분 스스로 기여를 하고 있는 지식인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덧붙여 이러한 종류의 글을 쓰는 저자와 같은 학자의 태도는 크게 존경받을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본격적인 글로 들어감에 앞서 개인적으로 고백할 부분은 일전에 이택광 교수의 글에 이어 실로 오랜만에 읽는 국내 학자의 글이라는 점입니다. 다소 약간의 반성의 마음을 담아 글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 책은 총 8장의 소주제들로 구분되어 있는데요. 앞의 1장과 4장까지는 글의 주제를 아우르는 한국 사회의 부정의와 사회적 병리현상을 먼저 언급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해석하는 수단으로서 배제와 경제적 불평 및 그리고 인정과 무시, 우리 사회의 급격한 시장화로 통해 초래된 물화에 대해 서로 중첩적인 관계로 진단하고, 이어 5장과 8장까지는 한국 사회를 그 틀로 잡아 사회역사적 서술과 동시에 진행된 왜곡된 방향성을 함께 다루면서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들을 차분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만 8장은 이 글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으로 보기는 약간 애매하고 일종의 매우 보편적인 당위성들을 담고 있는 주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은 민주주의적 요구 즉, 과두제와 포퓰리즘의 위협에 놓여 있는 현재의 우리 정치 등을 인식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해 조심히 지표를 찾아보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 비로소 시작된 근대는 “봉건적 지배와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어 바로 이 점이 근대성을 함축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근대를 인용한다면 이러한 근대가 사회와 정치에 매우 포괄적이고 가치일념적인 시장화를 전세계에 이식됨으로써 극히 변질되었다고 판단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원래 우리의 근대는 원래 개인의 자유와 인간 해방이었으나 시장자유주의적 진행 과정이 설사 전체적인 규모로서의 경제적 부를 가져다 주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익히 대표적으로 장 지글러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비판했던 것과 같이 세계를 국가 범위로서 지배-피지배 관계로 한층 악화시키고 20억의 절대 빈곤 인류를 제외한 나머지 인간들은 그 결실을 획득하긴 했으나, 그마저도 구조적으로 고착화 된 불평등 문제와 차별로 인해 우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시민의 고통이라고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현대 사회를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에서 출발해 규범적인 문제와 현시적인 문제를 모두 포함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좀 더 ‘동등한 자유’에 집중합니다. 이것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비교 분석하며 특히 저자는 “자유의 동등성을 훼손하는 제도나 사회질서, 사회구조는 모두 불의로 규정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우리 모두는 정의라는 촘촘한 그물망 안에 담겨져 있어야 하며, 이것이 본디 근대가 빛나면서 밝혔던 ‘진정한 해방’으로 다시 회귀하는 전제 조건일 것입니다. 물론 앞의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각자가 어느 것이 먼저 우선해야 하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력을 누가 잡고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의 논의는 꽤 복잡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개념적으로는 서로 상충되는 부분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만 양자는 동등하게 양립할 수 있는 기반위에 서 있어야 하며, 아마도 그것이 절차적 정의를 갖고 있는 민주주의적 토대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앞선 해석과 관련해서도 우리가 직면한 여러 담론의 문제들은 사회학적 기반의 문제라기 보다는 해석의 차이와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하는 거듭된 주장들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도 사회적 모델을 비판의 전략이라는 주제를 통해 이를 먼저 언급하고 있는데요. 다만 이러한 담론들이 “종류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든 형태의 담론들은 공동의 비판적 검토를 거쳐 공동의 문제해결을 모색한다는 점에 그 기능적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서로 공동의 문제 해결을 찾는데 먼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규범적 비판 모델과 달리 현시적 비판 모델은 우선 우리 사회가 병리적 사회 현상을 안고 있다는 것을 각자 모두가 인지해야 하며, 이 병리 현상은 “사회 성원들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추구 방식이 왜곡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실상 어떤 연유이든 간에 이 왜곡된 병리 현상이 시민들을 병들게 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사회 성원들을 학력과 경제적 조건으로 광범위하게 배제하거나 불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수 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등의 요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역시 획일적인 경쟁의 압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이는 앞선 저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회 구성원의 문제라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결국 이런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귀결되는 결과에는 이 글의 제목과 동일하게 배제와 무시 그리고 물화가 지배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비판하고 소멸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으로 파악됩니다. 이 점은 크게 동의할 만한 부분이라 여겨졌습니다.

다만, 반대로 약간 동의하기 힘든 부분들은, 개인의 권리를 다소 소극적으로 이해하거나 인정의 문제로 여기고 이를 권력과 비교 연계하는 것과, 특히 사회 갈등 일반을 경제적 불의나 분배 불평등 문제로 환원해서는 안된다고 밝히는 것은 ‘현대사회 비판을 위한 몇가지 지침’이라는 항목 아래 나와 있는 것치고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문화적 무시라는 의미로서 사회 구성원간의 불의와 무시의 문제가 이내 경제적 불의로 환원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미 왜곡된 사회 조건으로서 만연된 경제적 불평등 시대에서 인정과 무시라는 개념이 경제적 불의를 초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큰 의미가 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독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미 두껍고 깊은 사회적 테두리가 이미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경제적 불의를 따로 도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저자는 많은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 해결의 당위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은 동의하면서도 “오늘날 경제적 배제의 주된 원인은 여전히 자본주의 시장 체제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전반적으로 재분배와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약간 미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저자만의 책임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이를 명쾌하게 해결하기란 어려운 과제니까요. 수많은 개인들의 노동력을 수단화 시키고 문화적 차별, 인정하지 않는 범람한 무시와 배제의 문제 등이 우리의 자본주의 하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결국 선언적인 해결론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확대와 농밀화’와 시민들 스스로의 이성적이고 좀더 도덕적 가치에 가까워지는 길 밖에는 딱히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생활 세계가 사전적으로 합리화되는 것도 기대하기는 어려우므로 마냥 “민주주의 발전이 정치적 안정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불완정성을 제공하는 역설”이 마땅히 이해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저자는 분배와 인정의 문제와 특히 타인을 도구화하고 지배하는 사회적 관계 등과 좀 더 권력 불균형의 문제에 주목하면서 앞선 논의의 전개 과정들에서 특별히 위의 목록들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생활 세계의 내부의 정치적 투쟁을 통해서 구체적인 경제적 불의에 대응”해야 한다고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에서 대략 인정과 배제 및 문화적 차별이 좀 더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일종의 문화가치적 재설정으로 사회의 무분별한 시장화로 비롯된 일련의 문제들과 경제적 불평등을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문득 의문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5장과 8장에 이르는 내용들은 지극히 당연하고 보편적이지만 특별히 새롭거나 독창적인 논의나 주장은 딱히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인식의 전개 과정은 꽤 설득력이 있었고, 매우 일관되게 느껴졌습니다. 굳이 하버마스를 통해 도출한 것은 아니겠지만 시민들의 논의와 토론을 보장하는 시민들의 공론장과 같은 제안에 개인적으로 꽤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정치 투쟁을 효과적으로 또한 모두가 인정할 수 있게 시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일면적인 서술로서가 아니라 매우 심도 있는 방법론들이 학자들에 의해 도출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개 독서인으로서 고민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더불어 이 책의 1장과 2장 및 4장은 면밀하게 읽어봐야 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리고 이 글의 마지막은 꽤 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인간적인 인간다운 삶이 과연 규범화 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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