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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트라우마 - 소득 격차와 사회적 지위의 심리적 영향력과 그 이유
리처드 윌킨슨.케이트 피킷 지음, 이은경 옮김, 이강국 감수 / 생각이음 / 2019년 3월
평점 :
영국 런던정경대 출신으로 노팅엄 의과대의 사회역학, 요크대 초빙 교수 등을 맡으며 불평등과 시민들의 정신 및 신체 건강의 관련성을 연구하고 있는 리처드 윌킨슨과 캠브릿지와 코넬대에서 역학을 전공한 케이트 피킷이 함께 공저로 참여한 ‘불평등 트라우마’를 일독했습니다. 아마도 두 공저자의 이력에 포함되어 있는 이 ‘역학’이라는 학문은 ‘예방의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이 책은 두 공저자의 다른 논저인 ‘평등이 답이다’의 후속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도 보여지는데요. 서문에서 이와 관련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현재 앞서 언급한 ‘평등이 답이다’는 절판이 된 상태로 나오고 있습니다. 원제는 번역된 제목과 약간 관련이 없는 ‘The Inner Level’ 이며 2018년에 출간되었습니다. 국내에는 올 3월에 번역 출판이 이뤄졌습니다. 본격적으로 논의에 앞서 번역은 딱히 나무랄데가 없었으며, 따로 감수를 두고 편집에 나선 것으로 보아 출판사의 노력이 적잖게 들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우선 이 불평등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식은 개인의 능력의 문제이며, “유능하고 강직한 사람은 위로 올라가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빈곤과 궁핍에 빠지게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는 다소 내면화된 문제를 끄집어 내면서 전자의 문제가 현재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문제가 교육 불평등이 초래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양자는 닭과 계란의 문제일 정도로 서로 밀접하고 어느 것이 이 사태의 원인인지 가려내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렇게 일면적인 불평등의 상황을 이 정도로 짚어 보고 나서 책의 논의에 들어가는 것이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느꼈는데요. 이 두 학자의 연구물은 다른 불평등을 다룬 논저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정신 의학과 인간 본성의 측면에서 오늘날의 불평등이 어떤 식으로 시민들의 건강과 마음의 불안을 초래하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 OECD 자료들과 유럽 국가들의 통계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불평등 문제가 사회 불안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이 연구서의 논법처럼 인간 자체의 정신 불안과 자기 혐오, 자기 비하, 굴종적인 의식 등을 초래한다는 결과는 꽤 설득적이고 인간 본연의 근본적인 문제로까지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이와 같이 민주주의 체제하에 시장 자유주의가 매우 가파르게 사회 구조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꽤 강제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 발전을 연계하여 시장 자유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회 전체에 대한 주입은 개인 능력의 문제라든지, 개인의 수용 여부에 따른 아주 사소한 지엽적인 부분이 절대 아닙니다.
“불평등이 클수록 최상층에 있는 사람은 대단히 중요하고 최하층에 가까운 사람은 거의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거의 필연적으로 증가한다”는 주장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미국의 도금시대부터 개인의 사리사욕 추구를 전면적인 자유의 문제로 여기게 되면서 이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 하고자 사회진화학과 진화심리학 등이 여기에 가세했습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나고 각 개개인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14세기 이후 휴머니즘과 계몽주의를 통해 인간의 기본권을 중요한 가치로 삼아 역사의 진보를 거의 과거로 회귀시켜 버리는 반사회적 입장과도 같습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오랜 역사를 통해 이룩했던 인류의 민주주의 가치와 평등 사상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소하게는 정신적인 문제와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을 만들어내고 사회구조적으로는 사회 불안과 긴장, 갈등, 계급적 지배 체제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토대의 논증 과정을 이 책은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시민들 모두가 우리의 현재 상황에 대한 면밀한 인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또한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들중에 미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된 지역이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결과를 낳았다고 보는 것은 이 불평등이 하위 계층을 오도하는 포퓰리즘의 양태로 나아갔고, “도널드 트럼프는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주에서 더 높은 지지를 얻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즉 이것은 “소득 불평등이 포퓰리즘 대두의 원인으로 지목 받았다”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각 사회가 평등의 문제에 좀 더 골몰하고 평등적인 사회가 곧 나은 사회라는 도식을 매우 겸허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이 평등의 문제와 관련해서 유독 현실을 도외시한 도덕 이상주의적 접근이라는 가치이론적 폄하가 만연했는데요. 더 이러한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좀 더 실천적인 태도와 행동의 전환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불평등이 만든 물질주의와 소비 지상주의와 관련해서도 “물질주의는 인간이 타고난 소유욕의 징후가 아니라 불평등으로 심화된 지위 경쟁에서 자극을 받아 타인에게 자신의 자존감을 알리는 아주 기이한 소통 형태”로서 이것이 시민 사회에 만연됨으로서 불평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가리고 경제적 만능의 태도를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책은 이러한 논증 과정을 통해 ‘이기심, 소유욕, 자기중심주의, 출세주의 등을 반사회적 경향’이라고 단언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배적 위계체제’를 시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이 글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전에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가 바로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 것이며, 모든 시민을 ‘불평등에 의한 지위 불안’에 빠트림으로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결국 이르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불평등으로 인한 시민의 정치 참여가 더욱 약화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를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영속성을 해친다는 것을 필히 유념해야 될 것입니다.
주를 포함한 글의 내용이 400여페이지가 넘는 이 연구는 시민들 자체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불평등을 다루면서 이 논증 과정 만으로도 꽤 높은 설득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존의 교육 불평등을 비롯한 사회와 경제적 및 소득 불평등에 관한 연구는 요근래 계속 되고 있지만 애초에 앞선 언급과 같은 접근을 보이는 논저는 거의 이 책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번역 작업과 함께 고정된 책의 제목이 다소 이해 안되실 수도 있지만 책을 전부 일독하시면 글의 목적과 제목이 동일함을 파악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어떤 사례와 주장은 논란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크게 봤을때는 글의 일관된 논점을 해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질적 격차의 영향력을 인식하기 어려운 이유는 지위 격차나 어떤 사람의 사회 계층을 드러내는 표지가 실제보다 더 근본적으로 사람들간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