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주의 좌파 -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다윈의 대답 시리즈 2
피터 싱어 지음, 최정규 옮김 / 이음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피터 싱어는 호주 출신으로 세계적인 생태윤리학자이면서 공리주의를 기초로 한 인간의 도덕체계를 정립하여 전반적인 사회 불평등 문제를 다루고 2012년에는 이러한 학문적 연구와 활동을 바탕으로 호주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훈장의 주인공이 된 바가 있습니다. 인간 본성의 이해를 결여한 좌파를 비판한 이 ‘다윈주의 좌파’는 원제인 ‘Darwinian Left : Politics, Evolution and Cooperaton’ 으로 지난 2000년 출판 되었습니다. 국내에는 같은해 출판된 구판이 새롭게 2011년 개정판으로 출간된 것으로 보입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자리를 빌어 한가지 고백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지난날 저는 허버트 스펜서의 ‘개인 대 국가’에 대해 서평을 작성한 바가 있는데요. 피터 싱어의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앞에서 언급해 드린 스펜서의 글의 이해를 돕는 약간의 보론의 성격도 갖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저 역시 이와 관련하여 약간의 도움을 받았는데요. 일단 이 부분을 밝히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피터 싱어가 쓴 이 책의 취지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스펜서를 비롯한 우파적 사회진화론자들에 의해 사회 도태와 더 많은 경쟁이 선이라는 가치 체계로 당시의 거대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으나 반대로 좌파는 인간 본성은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임에도 이 본성이 변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이것과 연관이 높은 다윈주의를 배척하고, ‘인간의 사회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바로 좌파의 모든 것’인데 이념과 행동주의와 관련하여 동시에 실패해 왔다는 것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윈주의를 좌파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그 이론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피터 싱어가 쓰고자 하는 글의 요체입니다. 즉, “인간 본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에 다윈주의적 사고가 좌파로부터 배척당한 게 아닌가” 하는 저자의 추측도 담겨져 있습니다.

일찍이 다윈주의에 대해 많은 사상가들이 사회적 약자를 도태시키고 마땅히 강자가 그 승리를 취한다는 관점의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될 수 있음을 예측한 바가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을 받아들인 사람이 허버트 스펜서입니다. 제가 그의 논저 ‘개인 대 국가’에서 다뤘던 것처럼 전반적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도태를 광범위하게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거대한 기업가들과 부유층들이 자신들의 이기심을 정당화 시키는 논리로서 각광을 받아 왔고, 오늘날에도 그런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자들과 우파들에 의해 스펜서는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의 좌파는 이기적 인간의 본성을 포함한 본성 자체의 아주 치밀하고 철저한 이해를 선행해야 한다고 싱어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점이 선결되어야 다음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밝힙니다. 사실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이 우파들이 다윈의 논의를 자기들 것으로 만들 동안 너희 좌파들은 대체 무엇을 했느냐’로 바꿔 생각해 볼수도 있을텐데요. 앞서 제가 요약한 바대로 좌파는 사람들의 모든 고통을 절감하고 덜어낼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이것은 버트란드 러셀이 밝힌 ‘진보주의 및 좌파의 선명성’으로 어떻게 보면 원초적인 양심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일전에 다른 책의 서평을 통해 ‘신자유주의자들은 타인의 고통에 별반 관심이 없다’는 인식을 깨우친 바가 있습니다. 많은 우파들의 가치 체계가 경쟁과 개인들의 이기심 및 이익 추구가 선이라는 관점하에 불평등과 사회 하위층들의 삶의 고단함 등을 애써 무시한 바가 있고, 전반적으로 이러한 우파들의 이러한 가치관념적 기조가 1970년대 이후 루즈벨트와 케인즈의 사회 협력적 정책이 뒤안길로 사라지며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강력한 사회 가치적 주장이 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이제 다시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로 관심을 돌릴때다’와 같은 주장들이 어이없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피터 싱어는 “사회적 지위상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인간 사회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전제하고, 이것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항상 있어 왔다고 주장합니다. 과거 프랑스 혁명을 통한 나폴레옹의 짧은 신분 개혁이나 귀족 제도를 일소한 지금에도 항상 이것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계급 위상이 등장했고 이점은 앞으로도 증명될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주장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 계급적 인식의 날것’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바로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이것을 최소화 시키고 좀 더 다수의 이익에 수렴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에 바로 좌파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강력한 원리로서 작동하는 고착화한 체계를 견제하는 좌파 스스로의 ‘말하고 시비거는 양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상주의적 관점에 너무 경도되어 있다는 점도 명백한 패착이라고 볼 수 있겠죠. 더욱이 저자는 시장의 경쟁에 대한 관점에서도 다수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공리주의에 입각해서 보더라도 중상층 계급에서의 부의 증가가 극빈층에게 돌아갈 삶의 처참함을 보상할 수 있을 정도로 큰지 의심스럽다”라고 판단하며 글의 후반인 협력과 협조의 문제에서도 “부와 권력에서의 불평등이 커지면 그만큼 상호 부조를 할 유인이 없어지게 된다”면서 현실적인 측면의 인식과 고려를 하면서도 반대의 대안을 위한 필요성을 모색하는 등의 노력을 이 글을 통해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또 “약자, 빈자 그리고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섬으로써 좌파가 가졌던 전통적 가치를 (다시금) 옹호해야 하며, 다만 어떤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이들에게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곰곰이 연구해야만 한다”고 당위성과 그 노력을 좌파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결국 전체적으로 좌파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거품을 뺀 좌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과 유토피아적 사고를 버리고 실제로 어떤 것이 성취 가능한지에 대한 냉철한 현실적 비전으로 대체할 것”으로 결론내고 있습니다. 피터 싱어의 이 말은 진보주의와 좌파에 있는 많은 이들이 깊게 새겨야 하는 것으로 저는 느껴졌습니다.

오늘날까지 민주주의는 자유 시장경제라는 측면의 동반자를 데리고 발전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양가적 측면에서 이 자유 시장경제적 입장 또한 어두운 면을 초래해 왔는데요. 민주주의의 균형과 견제의 원리로서 노골적인 정치 투쟁이 아니라면 정치 세력의 좌우파의 균형적인 사회 이론적 경합이 사실상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좌파가 시대착오적인 주장으로 스스로 당면한 역할론을 걷어참으로써 전세계적인 민주주의 체제가 오로지 ‘자유’의 날개 하나 만으로 존재해 왔던 것이죠. 이제 다시 ‘평등’의 문제를 되살리고, 이러한 역할을 좌파가 자임함으로 많은 시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피터 싱어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쓸만한 이론적 체계를 이 책을 통해 좌파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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