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자유인가
필립 페팃 지음, 곽준혁.윤채영 옮김 / 한길사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필립 페팃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미국 프리스턴 대학 정치학과 및 호주국립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를 겸임하고 있는데요. 간략한 이력 뒤로 평생 공화주의에 대한 연구를 해왔고, 특히 정치철학의 필요성과 존재 이유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여 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지난 2012년 번역 출간된 논저 ‘신공화주의’로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앞의 ‘신공화주의’에 대한 보론으로서의 역할과 ‘비지배 자유’의 이해를 돕는 특별판으로 여겨졌습니다. 책 도입에 앞서 저자는 초반에 이 글이 사람들에게 점진적인 측면에서 논쟁적일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철학의 존재 이유는 ‘교조적 생산’이 아니라 ‘가능한 최선의 실현’에 달려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사상가들 및 학자들의 이론적 권위가 도처에 깔려 있으면서 논박 가능성에 대해 여지를 두지 않으려는 태도는 이론의 입장과 현실의 건전한 활용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비지배 자유’에 대한 해석을 돕고 있는 이 책은 ‘Just Freedom : Moral Compass for a Complex World’로 지난 2014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올해 한길사에서 번역 출판을 맡았습니다.

저자인 필립 페팃이 밝히는 ‘비지배 자유’는 타인의 자의적인 의지로부터의 자유로서 “이 비지배 자유는 정치사회적 조직에서 희망하는 진보의 밑그림을 제공하는 매우 도전적인 이상”이라고 정의합니다. 저는 공화주의와 비지배 자유라는 부제를 보면서 ‘피지배 자유’를 요즘에 와서 새로 번역한 것인가 여겼는데요. 정치철학에 있어서 정확한 의미 구분으로는 많이 상이한 개념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 비지배 자유는 공화주의의 토대에서 몇가지 필연적 기반을 바탕으로 보장될 수 있는 개념이었으며, 흔히 소극적 자유를 포함한 자유방임주의자들의 자유 원칙과는 매우 다른 입장이었습니다. 책의 5장까지 이어지는 논증에서 결국 이 비지배 자유가 민주주의적 시민의 기본적인 ‘시민권’과 유사했고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삼권분립, 주권자들의 정부에 대한 감시 및 통제, 폐쇄적 권위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사법제도에 대한 견제 등의 소위 ‘민주적 통제’에 놓여야만 우리의 민주주의가 건전해지듯이 마찬가지로 지배적 자유 역시 동일한 토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이 글을 통해 확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좀 더 개념적으로 상세한 논의들이 존재합니다만 개략적으로는 양자가 일맥상통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비지배적 자유는 일반 시민이 겪게 되거나 원치 않는 지배적 관계에 대해 먼저 시작됩니다. 타인의 의지에 의해 내 선택이 강요되는 경우를 바탕으로 그러한 구체적 사례에 대해 저자는 몇가지를 논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경찰과 사법제도에 더 밀착한 옆집 이웃과 나와의 차이가 그러하고 정말로 리베르 liber 혹은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을 첫번째, 당신이 선호하는 선택지를 취할 수 있는 여지와 자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두번째, 당신이 선호하는 바가 무엇이든 선택지에 있어야 한다. 세번째, 타인의 선호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는 세가지 조건을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저자는 앞의 두 가지 조건은 자유방임주의자들의 주장과 유사하지만 세번째는 퇴조한 공화주의적 입장에서도 중요하고 저자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진정한 비지배적 자유의 핵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글의 1장과 2장에서 역사의 공화주의의 장면을 언급하며, 홉스가 앞선 첫번째에 집중하고 그 이상을 나아가지 못한 것을 그의 사상적 한계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소 논란이 있겠습니다. 즉, 맨 처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떠한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과 뒤이어 개인에게 필수적인 선택의 자유를 조건과 환경 등 여러 면의 초점으로 살펴보고 이 선택의 문제를 결국 오직 공화주의 내에서만 보장할 수 있는 관점으로 저자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공화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정부란 자유 증진을 위한 필수적 수단”이라고 말하며 “자유를 단지 불간섭으로만 이해하면, 자유를 단순하고 다소 덜 부담스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라는 우리의 일반적인 관점의 재고를 요구합니다. 결국 ‘쳬계화 된 비지배자유’ 자체가 공화주의적 이상과 같고, 이것은 일찍이 장 자크 루소가 중요시 했던 공화주의와 비슷하죠. 여기에다 “자유인으로 여겨지려면 다양한 형태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만 하며, “단순히 법에서의 보장된 자유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 저자의 요점입니다. 이 부분은 심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런 공화주의적 이상을 공감하는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동등한 시민권을 갖고 있는 많은 시민들이 몇 가지 (스스로 허락되지 않은) 지배에 노출되어 있고, 그가 강조하는 중요한 전제조건인 ‘기본적인 사회적, 의료적, 사법적 안전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정리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을 통해 저자가 말하는 ‘비지배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다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기본적 자유가 확고히 자리 잡는 일은 자연적으로 달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부분과 관련하여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형사 사법 제도를 정치판에서 독립된 곳에 두기보다 선출직 관리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두고 있다”는 설명에는 동의 및 비동의 문제라기보다 단순히 말하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요. 사법 기관이 대체로 삼권 분림의 가치에 놓여 있고, 일반적으로 사법제도 자체를 많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는데, 선출된 관리의 직접적인 통제라는 것은 무엇인지 몇번을 봐도 이해가 되지는 않더군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비지배 자유의 구별되는 뚜렷한 두 가지 주제 논의는 사적, 지배적 권력에 따른 지배의 가능성에 대항해 어떻게 사람들에게 자원과 보호를 제공할 것이며, 이러한 보호를 제공하는 공적인 권력 또는 통치 권력 자체가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도록 시민이 어떻게 그 질서를 형성하고 그 형성된 질서를 수정하느냐 의 문제인데요. 이 점은 명확히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 즉 시민들의 통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론과 시민단체의 면밀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며 소수의 이익 단체들의 정치 개입을 불식시키고 “모두가 동등한 영향력을 공유하는 정치체제의 확고화”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선 공화주의의 중요한 가치들에 언급했지만 결론에 이르러 “공화주의적 사양에 부합하는 국가가 정당한 이유는 그것이 시민에게서 자유를 빼앗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공화주의와 비지배 자유가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이 비지배 자유와 공화주의이 쇠퇴에 대해 저자는 두 가지 실례를 들고 있는데요. 그것은 나날이 강해지는 시민들의 투표 제약과 종신으로 임명되는 대법관의 권력입니다. 저자는 이것 말고도 글 중간에서 시민들이 갖는 사법 체제의 공포 등의 예를 들고 있는데요. 그가 사법 제도를 불신한다기 보다는 권위주의와 관련하여 특히 사법 기관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과 법 위의 평등이라는 아주 중요한 가치가 현재 미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평가하는 등 대중주의라고 윤색한 포퓰리즘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부분은 우려할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저는 퇴근하고 바로 이 책을 잡고 나서 기필코 다 일독해 내야겠다는 감정에 사로 잡혔는데요. 아마도 잠이 들면 나쁜 머리로 인해 홀라당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은 상태가 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책을 펴기에 앞서 신자유주의자들의 자유 운운하는 글인줄 알았으나 이렇게 중요한 정치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 저의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머리 나쁨을 핑계로 저의 얼토당토 않는 선입견을 끄집어 내어 희석시키고 있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책도 꽤 오랫동안 저의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가지 일침을 해야겠는데요. 책의 182페이지에 오자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국내 유수의 출판사라는 곳이 이렇게 편집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역자와 편집자의 노고라는 것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갓 출간한 책이 독자들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면 그 마무리가 제대로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담아 주제넘게 질책을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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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8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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