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의지 2.0 - 루소, 프로이트, 구글
아즈마 히로키 지음, 안천 옮김 / 현실문화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도쿄공업대학 세계문명센터 특임 교수이자 와세다대학 문학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리고 동시에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아즈마 히로키의 뭔가 민주주의 2.0 이 떠오르는 제목의 글 ‘일반의지 2.0’을 일독했습니다. 저자인 아즈마 히로키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으로 일본과 해외에 관심을 이끈바 있습니다. 국내에도 그의 몇 권의 책이 번역되어 판매되고 있는데요. 일본에서는 특히나 주목받는 젊은 논객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국내 출간 당시 어느 평론가가 이 책을 ‘히키코모리 민주주의’의 가능성이라고 소개했던 것은 글의 내용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한 한줄 평가로 여겨지는데요. 저자 본인은 이 책이 온전한 정치사상서라기 보다는 한 편의 에세이 정도로 봐달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는 충분히 가치있는 글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부제로는 루소, 프로이트, 구글이라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선 저는 이전의 몇편의 서평을 통해 오늘날 ‘집단지성’에 대한 관심을 밝혀 꾸준히 밝혀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즈마 히로키의 이 책도 그런 측면에서 구해 읽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이 글을 요약해본다면, 루소가 그의 세기의 저서 ‘사회계약론’과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밝힌 일반의지에 대한 저자 고유의 해석이 먼저겠는데요. 루소의 이 ‘일반의지’는 개인 의지의 집합체로서, 주권은 일반의지에게 있으며, 정부는 그의 종복이라는 설명과 루소가 이 일반의지를 애매하게 설정해 놓은 것은 시민들이 그들의 정부를 갈아치울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밝힙니다. 즉, 기존의 독자들이 루소에게 보이는 공화주의적 대부의 인식을 흔들어 놓고 있는데요. 앞서 글에서는 이 점과 관련하여 루소가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분명한데, 경우에 따라서는 일종의 극단주의를 긍정한 듯한 일면도 보인다고 해석합니다. 예를들면,“국가가 죽음을 명할 경우 시민은 그 법적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단언한 것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 ‘일반의지’에 대한 약간의 오독으로 비롯된 결과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루소의 일반의지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숙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찰하고, 이를 집단지성-총표현사회-총기록사회로 인식의 연계를 통해 집단지성과 관련된 공공성의 성립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인 한나 아렌트의 세계와 위르겐 하버마스의 규범, 숙의 민주주의의 선호의 변화를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정치란 어쩌면 아즈마 히로키의 표현대로 인간의 이성적 측면을 물음표로 놔두고 오늘날 구글의 사례와 같은 대중들의 수많은 파편화 된 데이터를 무의식으로 규정하고 옹립해 ‘온전한 숙의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한 이론적 근거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렌트와 하버마스는 시민 사이의 충분한 토의가 정치에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을 원칙적으로 인용하고 있지만, 루소가 정당 민주주의, 의회제 민주주의에 회의를 보인 것과 같이 “무의식과 관련하여 정치의 원천을 이성적인 의사 소통에서만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저자는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글에서 가장 난해한 개념이 이 ‘무의식’이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인간 이성의 견고한 측면까지 칸트와 스피노자를 통해 학습한 우리가 ‘대중 욕망의 무의식’, ‘대중 선호의 무의식’ 등과 같은 관념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글 후반부에 의원들이 어떤 안건에 대해 의회의 표결을 앞두고 스크린에 큼지막하게 일반 대중의 선호도에 따른 여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그래프로 표시하게 만들면 어느 정치인이라도 민심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해석에서 이렇게 행동에 나서게 되는 시민의 마음가짐이 일종의 무의식에 기인한 것으로 밝히는 점에서 어느 정도 적게나마 그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집단지성과 관련 깊은 이 무의식은 구글의 검색어 자동 생성 기능과 마찬가지로 이성이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수집되는 데이터의 측면으로서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집단지성이라는 단어보다 ‘총기록사회’라는 개념을 많은 부분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치적 선량주의’를 피력하고 있는데요. 선량한 정치인들이 대중의 무분별한 욕망을 제어시키고 정치적 이상의 기여한다는 점, 이들 선량주의자들이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욕망을 긍정하는 것은 포퓰리즘으로 이어진다”는 측면의 해석, 이러한 총기록사회에 대중의 의지가 효과적으로 투영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선량한 정치인, 선량주의가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이 더 숙제로 여겨집니다. 더군다나 정치 참여 목적으로 투입되는 ‘프로 시민’의 여부도 오늘날 “한가지로 조망하기 어려운 현대사회와 개인적 관심에 몰두하는 시민들의 상태로 봤을 때” 더욱더 존재 여부를 규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처럼 위의 이론에 기반한 이 ‘무의식 민주주의’가 포퓰리즘과 유사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사상이라고 밝히는 점은 그 형식의 난해함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결국 이를 통해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숙의를 인민의 무의식에 노출하라”는 제일의 명제입니다. 구글의 출현과 집단지성의 이론은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고 이것에 기반한 총기록사회가 모든 숙의를 시민의 무의식으로 투입되는 일종의 민주주의 2.0 시대의 정치적 내면화로 최종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13장의 리차드 로티를 통한 특정한 정치적 신념의 배제에 관한 꽤 광범위한 해석은 조금 부족해 보이고, 오늘날 만연된 시민들의 사생활과 즐길거리에 노출된 상황에 대한 개선이 만약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또 지나친 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루소는 전반적인 인간 자유의 보장을 주장했고 스스로 고독하게 사색하는 것에 인생의 가치를 두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회의를 갖고 살았던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소극적 사색 인간’의 전형일 것입니다. 우리의 현대 생활에 있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회적 관계가 매우 중요시 되고 있는데 구글과 sns를 통한 개인들의 데이터 축적이 온전한 개인의 사생활적인 요소로 보고 이를 ‘총기록사회’의 원천으로 봐야할지에 그 개념화가 적확한 것인지는 우리 독자들이 한번 숙고해봐야 할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세밀함과 친절한 글쓰기는 아즈마 히로키의 이 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번역도 꽤 신중하고 수월한 일독이었는데요. 그의 정치적 상상력에 대해 충분히 기대할 만한 부분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이성적 측면의 재고를 해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독서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미래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과연 어떻게 될지 참으로 궁금하게 생각되는데요. 결국 앞으로의 대안도 ‘고도화 된 숙의 민주주의’이며 이것을 어떤식으로 실행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시민들의 고민이 새삼 필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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