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을 가다 -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
장 지글러 지음, 모명숙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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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출신으로 제네바 대학과 소르본 대학의 사회학 교수를 역임하고 한때 스위스 연방 의회의 의원으로 재직하는 등의 우리에게 실천적 사회학자로 이름을 높인 장 지글러의 ‘인간의 길을 가다’를 일독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유엔을 말하다’ 에 이어 지글러의 3번째 서평이 되는데요. 그의 여러 일화중에 가장 인상이 깊은 것은 스위스 은행의 갖가지 탈법, 불법 운영과 관련된 학자적 양심으로 쓴 글,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로 겪은 법정 투쟁과 그로인한 경제적 곤란을 겪은 일입니다. “지식인의 양심은 저절로 탄생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우리가 끊임없이 살펴볼 ‘지식인’인 장 지글러에게 명백하게 잘 들어맞는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원제는 지난 2014년 독일어로 출판된 “Andere die Welt”이며, 국내에는 위의 번역 제목으로 2016년 출간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의 구입은 작년 여름쯤이었는데요. 중간에 읽다가 중단하고 이제서야 완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국내 번역된 출판사가 임의로 만든 부제인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에 거의 들어맞는 주제와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불평등한 세계의 모습과, 이데올로기의 악의 측면, 자유 시장론에 의한 인간의 소외, 국민, 국가 권력 등을 각 주제에 맞는 현실 사례와 여러 사상가들의 주장을 연계시켜 스스로가 사회학자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역사 및 철학과 같은 인문학적 인용도 적잖이 소개되어 있어서 근래 세계화와 국민주의, 국가 권력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분들이라면 책을 통해 익히 좋은 결과를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지글러는 “사회학자의 임무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밝히는 것”이라 표명하며, 사회학 자체가 인간을 해방시키기도 하지만 억압하기도 한다는 이 양가적 측면의 판단을 앞의 인식과 함께 우리 인간 사회에 사회학과 사회학자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 당위성을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학의 쓸모를 더욱더 한정시키는 이 불평등이라는 악과 관련하여 ‘악의 중요한 근원은 불평등이다’는 장 자크 루소의 말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수용한 사회의 쳬계가 시장의 ‘자연적 상태’를 계속 중시함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에 의한 전반적인 정치사회적 계급 불평등이 심화 되어 왔고, 오히려 이런 상황을 각각의 시민들이 받아들이고 체념함으로써 특히 지식인들이 이러한 모습을 비판하지 않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책 3장의 주장인 이데올로기의 두 얼굴이 즉, 이데올로기가 악의를 증명하는 경우로서 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세계화의 강요’에 따른 시민 계급의 이 이데올로기 수용을 당연시했으며, 여기에서 도태되는 많은 시민들을 지그문트 바우만의 입을 빌려 ‘인간쓰레기들 (바우만의 부정적 인식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기득권과 권력이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는)’ 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글러의 표현대로 “선별과 인식적, 사회적 위계구조의 재생산은 논박되어야 하며, 인권의 가치는 결코 논박되거나 비판받아서는 안된다”고 밝혀집니다. 마찬가지로 5장의 인간 소외의 목적은 바로 “인간을 순전히 상품사회에 기능하는 것으로 축소하는 것”으로 해석되게 합니다.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인간이 노동을 제공하여 바라는 것은 자유이며, 일정 소득으로 인한 그 결과는 인간 기본적 삶의 보장과 그로인한 삶의 자유일 겁니다. 이런 토대를 뒤흔드는 것은 점차 확대되고 고착화되고 있는 인간 불평등의 심화이며, 이것은 작게는 각각의 사회 문제로서 크게는 대륙별로 발생하는 차별과 극심한 빈곤의 문제로까지 연결됩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은 더욱 강조되고 있으나, 6장에서 밝히듯이 중세시대 이전의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로 작용했던 국가가, 프랑스 혁명 이후 공화주의와 국민국가 개념을 덧붙이면서 정교 분리와 삼권 분립과 같은 권력으로부터 인간 자유를 보장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자리잡혔지만, 일전의 이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와 그와 관련된 이데올로기는 ‘선출되지 않는 기득권’ 개념으로 옮아가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이와 관련해 “사회가 기득권에 의해 그 계급 구조가 고착화 되는 것은 실로 시민의 자유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주장했고, 이런 기득권 장치나 기득권 이해관계를 교묘히 언설하는 것은 그것의 의도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우리 스스로가 되짚어 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다만, 지글러는 6장에서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괴테의 인용을 앞세워 약간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요. 유럽의 민족국가개념과 전제정치에 대한 반대급부로 변혁을 일으킨 점은 크게 인정할 만하나, 나폴레옹 자신이 과연 그러한 것을 염두해 두고 대륙 전쟁에 나섰는지는 곰곰히 살펴봐야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7장은 근대의 국민이야 말로 기적이라 불릴만하며, 이와 반대로 오늘날 인종주의적 주장을 하고 있는 정치 세력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인종주의는 무조건 범죄이고, 증오의 최고 형태이며, 국민을 형성하는 것을 최종적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세계의 민영화에 방치된 국민은 소멸할 우려가 있다”고 동시에 진단합니다. 일찍이 에릭 홉스봄은 “자발적으로 가장 중요한 공공 서비스를 축소하고, 일반적 이해 관계에서 생기는 과제를 사적 영역으로 옮김으로써 이윤의 최대화라는 법칙에 굴복한 국가는 파탄 국가 Failed State” 라고 언급했습니다. 자본의 이익에 민감한 이 신자유주의화를 계속 이론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은 시민들에 자유와 권리에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조금이라도 숙고해본다면 그 답은 명확한 것이죠. 신자유주의의 숨겨진 의도는 바로 지글러의 소름끼치는 표현 즉, ‘의식의 균질화’로 모든 사회를 신자유주의적 멸균 상태로 만들어 얻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 동일합니다. 레이건과 대처가 주장했던 소위 낙수효과가 어떻게 판명났는지는 그 결과가 명확하지 않던가요.

끝으로 지글러는 앞으로 세계의 시급한 문제로 세계 금융 자본의 활개와 악랄한 독재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의 독재 정권을 꼽고 있습니다. 후자와 관련하여 지글러는 자원에 대한 개입으로 아프리카 독재 국가에 대한 프랑스와 벨기에의 용병 지원 등을 언급하고, 또한 극도의 굶주림 상태에 놓여 있는 아프리카 국민들에 대한 설명을 적잖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라늄과 같은 희소 자원의 안정적인 관리라는 미명하에 전세계 독재 정권을 지원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비도덕적 개입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익히 알려진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비인간성의 현실일텐데요. 전세계의 진정한 민주주의화는 이 상황을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에 의한 권력 위임을 정치인 스스로 자임한다면, 그렇지 않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이 나서서 불식시켜야 합니다만 이해관계가 달려있는 정치인들에게는 아마도 꿈같은 일이겠죠. 즉, 이러한 분위기의 진정한 해결책은 서로 인류애로 가득찬 ‘거부전선’의 행동으로 달성될 수 있다고 지글러는 보는 듯 한데요. 스스로 사회학자의 소명을 인지하고 있는 저자가 결국에는 이상주의적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뭔가 마음이 아립니다. 동시에 시민적 계몽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지만, 이렇게 ‘강요된 불의의 시대’를 개인의 삶과 인생으로서 건너가야 문제도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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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19-01-0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구입과 관련된 약간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린다면, 저는 작년 여름쯤에 이 책을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구입을 했는데요. 구입할 당시 모르고 있다가 얼마전에 책 앞장에 출판사 이름이 도장으로 찍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무료로 기증된 책에 찍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책을 구입해 다시 되파는 것은 조금 문제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알라딘 중고 서점 직원분들의 좀 더 꼼꼼한 검수를 부탁드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