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질문의 책 12
자크 파월 지음, 윤태준 옮김 / 오월의봄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벨기에 출신으로 영국의 요크 대학과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에서 수학해 정치학 및 역사학 학위를 취득해 현재 캐나다에서 방송을 통한 정치 토론과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실상을 알리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자크 파월의 가히 ‘기념비적인’ 저술,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를 일독했습니다. 이 책은 2002년경에 처음 출간된 뒤, 2015년에 개정판으로 재출간이 되었는데요. 개정 영문판 서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2015년판을 번역 출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출판을 맡은 오월의봄의 ‘질문의 책’ 이라는 연작 시리즈 중에 하나이고, 더불어 역자인 윤태준 번역가의 나무랄데 없는 번역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자크 파월의 이 글은 실로 제2차 세계대전의 놀라운 관점이 담겨져 있습니다. 저자 스스로는 일종의 ‘수정주의적’ 입장이라는 자기 겸손으로 평가하는데요. 이것은 글 서두에 “미국 시민들 역시 대다수가 이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지 못했다”고 언급하며 종래의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라는 악을 격멸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2차대전의 슬로건이 본질의 만분의 일도 표현하지 못한 것으로 “서사의 흐름대로 운명처럼 미국이 이 유럽의 대재앙에 구원자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미국의 이익에 따라 매우 치밀하게 준비하고 뛰어든 전쟁이라 저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얼마전에 이 곳을 통해 소개한 제임스 Q. 위트먼의 ‘히틀러의 모델, 미국’에서도 당시 헨리 포드와 같은 미국 기업 집단이 히틀러와 파시즘에 얼마나 열광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미국의 기업가들은 히틀러의 독일이 소비에트의 스탈린 모델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에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일견 파악이 되지마자 크게 안심한 것으로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습격 이후 히틀러의 오판으로 비롯된 나치의 미국에 대한 선전 포고 이후에서야 파시즘과 히틀러에 대한 전면적인 대응에 나섰고, 이러한 비슷한 태도는 전후 프랑스의 독재자 드골에 대한 승인에 미온적으로 나섰던 것과는 달리 우호적 판단 내지는 판단 보류에 가까웠습니다. 이것은 숨막히게 돌아가는 당시 유럽 전선에 독일 기업과 합작 또는 투자와 같은 형태로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포드와 GE와 같은 기업들과 정치 엘리트들이 다소 나치 독일에 대한 애매한 태도를 보인 것과 같습니다. 이에 헨리 포드는 “연합군도 추축군도 (전쟁에) 이기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 했는데, 그는 일전에 히틀러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이력으로 이렇게 양자 사이에 저울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유럽의 대전이 미국의 대공황을 탈출하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고 그것을 몸소 체험한 미국의 많은 기업인들이 이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 태도를 보인 연유이기도 합니다.

다른 새로운 관점중에 하나인 대 일본 참전과 관련해서도, 당시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일본에 대한 지극한 인종주의적 태도로 떠오르는 이 신흥국이 동남아시아의 자원을 발아래 두고 급기야 그것을 약탈하려고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며, 매우 확실하게 일본과의 전쟁을 준비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루즈벨트가 일본의 진주만 폭격을 유인했는지 안했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네덜란드와 손잡고 일본의 원유 등과 같은 중요 자원 공급을 막은데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 작센의 주도인 드레스덴에 대한 무차별적인 영미 항공기의 폭격과 관련해서도 이들 소위 ‘정의로운’ 연합군이 독일 민간인을 상대로 75만발의 소이탄을 투하하고 30만명의 희생자를 내게 만든 것이 사실상, 스탈린과 소비에트에 대한 경고였다는 저자의 통렬한 분석과 독일군이 점차 괴멸하고 있던 시점에서 서부 전선의 독일군의 항복을 받아내 이 잉여 독일군 부대를 재무장 시켜 스탈린의 소비에트를 치는데 이용하려고 했다는 근거와 그 자료들은 이 드레스덴의 재앙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탈리아와 그리스로 진격한 연합군이 당시 시민들이 지지하던 정부를 제외시키고 제2의 파시즘 정부를 노골적으로 세운 것은 후에 스탈린에게 학습효과를 만들어 그와 같은 개입으로 거의 동일하게 동유럽에 써먹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방측이 흔히 말하는 ‘얄타 트라우마’가 회자되게 되는데, 이에 자크 파월은 “영악한 스탈린이 크림반도의 휴양지에서 그의 서방 동지들로부터 모든 종류의 안보를 쥐어짜냈다는 혐의는 전적으로 거짓이다”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선 이유와 함께 이미 스탈린은 독일과 베를린에 대한 양보, 인접국 오스트리아에 대한 연합국의 권리도 인정했고 원칙적으로는 폴란드와 체코에 민주 정부를 세우는 데 동의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당시 미국은 트루먼 행정부의 그 즈음 개발된 원자폭탄을 이용하여 스탈린과 소비에트에 대한 협박과 같은 ‘원자외교’를 행했고 이 모든것은 대전 중 동맹이었던 관계에 태세를 바꿔 적대를 시작한 것으로 이 부분에 대한 어떠한 당위성을 제시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보이는 거의 대부분의 논점은 나라와 나라간의 관계나 국제 그룹의 외교가 절대 낭만이나 이상주의적 품격을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다만 이익과 그를 보장하는 술수들로 채워져 있는 것임은 자명합니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것으로 포장하는 것은 진실을 왜곡하는 결과로 비추어 질 수 있습니다.

이후 시작된 기나긴 냉전의 시기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파시즘에 호의적이었지만, 걔급 혁명의 가능성 때문에 스탈린의 소비에트를 적대로 몰아갔고, 이러한 매커니즘은 뒤이어 나오는 매카시즘과 자유민주주의의 자연스런 대적의 상대를 만듦으로써 분명하게도 그에 따른 숱한 과를 초래한 것은 부인할 수없을 것입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미국이 복지국가가 되지 못한 것은 핵심 권력들이 사회적 개혁의 압력을 피할 수 있는 방법, 즉 냉전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며, 이 점은 미국 시민의 타고난 개인주의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고 분석합니다. 정말 대단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이 냉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미 시작했으며, 20세기의 거의 대부분을 냉전으로 인한 명과 암이 수없이 혼재되는 세계의 편린들로 채우게 됩니다.

책의 맨 처음 부분에서 저자, 자크 파월은 종래의 2차대전에 대한 수정주의적 입장이라는 것을 다소 애매하게 밝히면서 여기에 인용된 근거 자료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나온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이 글 자체가 구조적으로도 그리고 학문적 연계의 측면에서도 치밀한 대응을 하고 있고, 각각의 주장들이 터무니 없거나 과한 인용이 아니라 그 시대의 시대상을 정확히 조명해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더불어 단순한 어느 사건의 전환된 시각이 아니라 두루두루 정확한 근거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2차대전사와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시에 우리는 어쩌면 이 글로 인한 적잖은 불편함을 목도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의로 포장된 전쟁의 진실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