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란 무엇인가 - 기원과 구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평화인문학 기획총서 - IPUS 평화인문학총서 4
이문영 엮음 / 아카넷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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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평화인문학 기회총서 시리즈중의 한 권인 이 책은 이른바 ‘평화 및 평화상태’에 대한 인문사회학적인 탐구를 통해 시대의 진정한 평화 담론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그와같은 연계로 평화와 대응하여 결코 따로 이해될 수 없는 ‘폭력’에 관한 사회철학적인 의미론과 현실론적인 입장을 이 책에 잘 담고 있는데요. 서울대 이문영 교수를 비롯한 집필진들의 주의 깊은 폭력론에 관한 이 글이 아직까진 국내에 처음 시도되는 학문적 연구가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목차를 봤을 때, ‘3장 탈폭력적 폭력 : 신자유주의 시대 폭력의 유형’이 새삼 관심을 끌었는데요. 더불어 근래 서평을 쓴 지그문트 바우만의 ‘레트로토피아’에서 소개한 근대적 폭력과 폭력주의에 대해 좀 더 면밀한 이해가 필요하여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습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글을 논의하게 앞서, 폭력의 기원과 의미를 담은 1장과 2장을 접하고 나서 꽤 놀라고 말았는데요. 왜냐하면 최근까지 읽었던 아감벤, 슈미트, 벤야민, 아렌트, 데리다 등의 책이 폭력론과 관련하여 책 도입에 소개되고 있어서 뭔가 저만을 위한 책이 아닌가 하는 소감이 들었습니다. 예외상태, 정치신학, 법의힘, 폭력의 세기 등이 여태 제가 소화한 글의 목록인데요. 이 책을 읽기 위해 앞선 책들이 무대가 되어 준 느낌이랄까요. 조금 허무맹랑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와 관련하여 지그문트 바우만은 “홀로코스트의 폭력은 문명화의 예외적 일탈이 아니라, 바로 그 문명화 자체의 산물이자 악의 근대적 합리성의 가장 충실한 재현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마치 파시즘의 그 원초적 기원에 붕괴한 민주주의가 있는 것처럼 후기근대론의 선구자가 특유의 이와 같은 통찰력을 보이는 것은 우리의 근대가 어느 정도 폭력에 기반한 결과 위에 있다는 것을 교훈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폭력의 의미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문영 교수는 벤야민을 필두로 데리다, 지젝, 아렌트, 아감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신적 폭력이라는 개념을 만든 벤야민과 폭력의 양가적인 측면에서의 지젝의 논의 즉,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체제적 폭력이 존재”와 같은 인식과 권력과 폭력을 구별하기 위한 학문적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은 한나 아렌트의 성과, 카를 슈미트와 비교하며 분석해 내고 있는 조르주 아감벤의 폭력에 관한 해석은 과거 나치 독일과 근래의 9.11 사태 이후의 부시 정부를 비교하며 그의 ‘예외상태’ 개념에 폭력론을 끄집어 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폭력과 폭력론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를 우리는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반으로 이문영 선생은 데리다, 아감벤, 발리바르를 재해석하고 있는데요. 특유의 해체철학이 모태가 된 폭력과 비폭력의 외부적인 경계에 대해 데리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언어적 폭력을 기본으로 인식하여 ‘법의힘’에 이르러 “합법적 폭력과 불법적 폭력 사이의 차이를 정의하고 그 위계를 제도화하는 ‘법의힘’일 것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벤야민과의 불화를 의미하는 데리다의 ‘법의힘’은 매우 중요한데요. 즉 오늘날 폭력의 합법과 불법을 규정하는 것에 이 법의힘이 관여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뒤이어 데리다와 아감벤의 논의 이후, 이 폭력은 “폭력, 비폭력, 대항폭력 사이의 상호구성성”에 관해 의미를 확장시키고 이러한 구분에 발리바르의 대응과 폭력의 필연성에 관해서도 논박을 하고 있는데요. 결국 1장과 2장의 논의는 폭력의 합법적이고 불법적인 속성을 지나서 권력의 정당성이 법의 유무에, 그리고 에티엔 발리바르가 경고하는 ‘폭력상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시민의식을 우리가 쟁취해내야 한다는 점으로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폭력 상태 자체의 경계화와 외부화 등과 같은 생소한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이들 ‘경계의 경계’에 대한 깊은 고찰이 앞선 해결책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이어 3장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폭력은 자기 자신이 가해자이며 피해자라는 탈폭력에 관한 논의를 4장은 종교근본주의의 폭력적 구조에 대한 분석으로 ‘이 종교적 근본주의’가 얼마나 많은 폭력을 포함고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기독교 근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역시 양자가 매우 해악하고 오늘날 미국의 현실에서 기독교 근본주의가 과거 프랑스 공화주의의 전통인 종교와 정치의 분리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고 평가 내리고 있습니다. 5장은 폭력의 효과, 즉 ‘공포’를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려는 테러와 테러리즘에 대해 설명하며 ‘폭력과 권력의 밀접한 관계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렌트에 의하면 ‘오히려 폭력이 권력을 파괴한다’는 인식을 덧붙이고 있는데요. 이 5장은 여러 의미로 주의깊게 읽어야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6장은 한국전쟁 시기의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와 동일한 제노사이드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인식으로서, 해방 이후의 한반도에 미군정과 좌우 대립으로 인한 경찰 권력의 조선인들에 대한 사상 검증과 제주의 4.3 사건과 보도연맹 사건을 폭력을 넘어 제노사이드적 멸절 상태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살처분 (extermination)이라는 표현으로 이 당시의 인간 멸절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 살처분이라는 표현은 오늘날 기르고 있는 가축에나 해당된다는 점에서 이승만 정권의 불법적으로 자행된 폭력 행위가 어떠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여기의 이 글은 우리가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 폭력과 폭력론에 대해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 사회철학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접근으로까지 이와 관련한 확장을 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1장과 2장 그리고 5장은 몇번이고 읽어봐도 좋은 논의였는데요. 이처럼 이문영 선생의 해석과 논지에 대해서는 깊은 공감을 받을 수 있었고 데리다와 벤야민, 아감벤, 아렌트를 넘나드는 이론적 도입과 해석은 폭력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크게 넓혀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근대와 근대성의 어두운 폭력주의와 권력과 폭력의 이론적 구분을 원하는 분들에게도 좋은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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