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이해 경희대학교 국제학연구원 학술총서
우승지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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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외교원 교수를 거쳐 현재 경희대 국제학부 우승지 교수는 지난 15년간 남북관계 연구를 해 온 학자입니다. 이 ‘남북 관계의 이해’는 11편의 논문 형식의 글인데요. 지난 1948년부터 남북 관계의 고찰을 통해 고찰해보고 현재의 남북 문제와 남북 대화 전반의 방향타가 되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져 있기도 합니다. 현존하는 국제 정치 이론으로 독자들을 주눅들게 만드는 글은 아니어서 일반 독자가 보기에도 꽤 수월한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튼 흥미로운 부분들도 적잖이 있어서 일독을 하고 나서 책의 내용에 대해 잠시 고민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자는 지난 남북관계를 해석하는 수단의 틀로 북한의 체제적 성격을 김일성 정권이 시작되는 1948년의 ‘48체제’ , 김일성 숭배체제가 확고화 되는 1968년의 ‘68체제’ 그리고 김정일 정권의 형성인 1998년의 ‘98체제’ 등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점은 68체제 기간의 남한의 박정희 전 대통령 시기의 ‘유신’체제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시기’를 한반도의 정치적 및 군사적 대립이 첨예했던 시기로 분석하고, 이것의 이유에는 남북한 양자의 군사정권이 강고화 되면서 그만큼 양자간의 불예측성과 불안정성이 심대하게 증가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꽤 설득력이 있었는데요. 굳이 ‘민주평화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배타적인 군사독재 정권이 서로 맞붙어 있으면 어떠한 불안감이 조성되는지에 대한 탁월한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도 미국 닉슨 대통령에 의한 미중간의 데탕트로 한반도에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어 갑작스런 화해 무드가 짧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만 이것은 정말 우연에 가까운 것이었죠. 약간의 논외로 저자는 박정희 정권 시절의 한미 관계에 대해서도 얼마간 평가를 하고 있는데요.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체제 안정과 정권 유지를 위해 미국을 이용할 줄 알았고, 하나를 내주면 하나를 얻는 식의 거래 정치에 탁월해 이 시기의 한미 관계가 일종의 ‘밀월’의 시기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다 우리에게 ‘한국 전쟁의 기원’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시카도 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언급을 덧붙이고 싶은데요. “1970년대에 미국 국무부 장관은 한국, 필리핀, 일본 외교 장관들을 거느리고 국제 회의에 나타나기도 했다”는 점은 사실상 자유 진영의 맏형인 미국이 당시 아시아 지역의 ‘동맹 위성국’을 당시 소련의 동유럽 위성국들을 영향력하에 둔 것과 마찬가지로서, 일본의 요시다 독트린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영향력에 의해 정권의 안정이 유지된 것과 비슷하게 한국도 동일한 위치의 시기였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각 정치 세력이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의 헨리 키신저가 당시 국무부 외교 기조에 ‘두 개의 한국 정책’을 제안하고 강조한 것으로 봤을 때, 현실 국제 정치가 이처럼 명백하게 현실주의적이고 미국도 동맹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과 행동 반경이 먼저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즉, 이렇게 이상주의적으로 여기는 국제 외교 내지는 국제 정치는 정말 공상에 불과한 것이죠. 특히 이 글의 저자도 서두에 밝혔듯이 “북한이 핵을 협상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논지를 비판”하며 “북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핵무장”임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는 것이죠. 남한의 각 정치 세력은 북한의 핵무장 시도와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극렬한 남남 갈등을 보이고 있는데, 후자의 경우는 본질을 벗어날 위험이 있다손 치더라도 전자의 북한의 핵무장 시도는 매우 명백하고 이것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협상용으로 쓰이기 위해 시도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우리의 대북 정책 전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저자는 이러한 이론적 접근을 통해서 남북 관계를 소위 ‘숙적 관계’로 분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숙적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 관계에서나 쓰일 수 있는 것인데, 조금 냉정히 평가해 본다면 1998년 이후 진보 정권의 짧은 대북 포용 시기를 제외하면 숱한 직간접적인 남북 대결이 있어왔고, 앞서 설명해 드린대로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은 거의 4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러시아와 중국, 파키스탄을 통해 핵무기 기술을 얻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표면상 이러한 수식은 합당해 보입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한 온정적인 관념인 같은 민족이자 같은 역사적 동질감을 갖고 있는 대화와 포용의 상대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과거 냉전 시기에 한국의 민주 정치와 국가 정체를 위해 대결에 나섰던 것은 분명합니다. 집토끼를 먼저 간수하고 나선 이후에 외부의 집나간 토끼를 품에 안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상대를 명확히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책의 9장인 ‘북한은 현상 유지 국가인가?’ 라는 주제는 상당 부분 동의하기 힘들었는데요. 이 ‘현상 유지 국가’라는 잣대는 현재 중국에 대한 분석틀로 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미국과 서구 유럽이 만들어 놓은 국제 체제 시스템에 대해 중국이 이것을 받아들이고 존중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참여해서 일조한 것이 아니므로 거부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중국 경제에 대한 위협론으로 대두된 일종의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북한에 적용해 이론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듭니다. 우선 북한은 체제 속성상 자신들의 안전에 일순위를 두고 있는 국가로서 핵무장과 핵무기를 통해 현실 타파를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멸망에 직결되니까요. 그리고 국제 정치 이론에서 ‘비대칭 동맹’에 대한 부분을 후견국과 피후견국 관계로 미국-남한, 중국-북한을 개념화 했는데요. 연루와 방기의 문제를 언급했을때부터 좀 더 정확하게 ‘비대칭 동맹 관계’로 설명하는 것이 마땅해 보였는데요.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는 용어를 후견-피후견 개념으로 사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끝으로 일전에 이삼성 교수는 파키스탄의 물리학자 압둘 아디드 칸의 북한 핵무기 개발 관여 여부에 대해 그의 자백 번복에 따라 다소 불확실하다고 밝힌 것이 기억이 나는데요. 우승지 교수의 이 글에서는 이 파키스탄인 물리학자가 북한에 13차례 방북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파키스탄과 북한의 미사일-핵기술 거래는 거의 기정사실이라고 봐야 할 것 같고, 이집트에서 일부 도입한 스커드 미사일의 분해 및 역설계와 관련된 내용을 봤을 때도 이 부분이 사실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결론에 대한 보론이라 볼 수 있는 11장의 ‘제3의 길 : 북한 문제와 창조적 관여’는 대체로 귀담아 들을만 하지만 한반도 주변부의 강대국들의 한반도에 의한 이익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현재 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미국과 북한에서 치열하게 중재 외교를 펼치고 있지만, 중국에 대한 영향력이 사실상 전무하고 러시아는 주변 지역의 경협을 통해 이끌어 낼 수도 있지만 일본과의 관계는 이미 상당히 틀어진 부분이 많아서 이러한 주변 4대 강국의 정치 과정이 우리에게는 녹록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과 북한과의 중재 만으로도 우리 외교 당국이 이렇게 진을 빼고 있는데 우리의 영향력이 전무한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또 어려운 길이 있는 것이죠. 트럼프와 김정은을 움직여 궁극적인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기초를 만든다는 설정은 크게 지지할 만하고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 각 정치 세력과 국민들의 응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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