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의 기원 - 패권 경쟁의 격화와 제국체제의 해체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논저) 612
박상섭 지음 / 아카넷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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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와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 명예 교수로 있는 박상섭 선생의 ‘1차 세계대전의 기원’을 일독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접해왔던 1,2차 양차대전의 글들은 주로 영미 출신 학자들의 주저였습니다. 대중적으로도 명성들이 있어서 일반 독자들에게도 익히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여기의 박상섭 교수의 책은 국내 연구자가 쓰고 종래의 전쟁사 기술과는 다른 1차대전 참전국 5개국의 외교, 정치, 군사적 상황을 바탕으로 이것이 어떻게 거대한 전쟁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치우치지 않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사실 이 책을 손에 쥔 이유는 며칠전에 서평을 쓴 로버트 거워스의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에 대한 다른 보론이 필요해서라고 먼저 밝히고 싶은데요. 이 책을 이틀 내내 읽는 동안 막힘 없이 수월하게 읽혀졌고, 꽤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이 책을 위해 준비한 박상섭 교수의 온전한 연구 노력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기존의 1차대전 연구들은 서부전선 당시 지독한 참호전과 독가스 살포에 집중하며 군사 작전에 보급과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의 사라예보 암살사건이 전통적으로 큰 분기점으로 이해되었지만 점차 이것은 여러 요인 중에 하나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즉, 동맹과 협상국에 따른 국제 관계의 불안정성과 각국의 잘못된 정보로 인한 판단 실책 등의 복잡한 정치외교적 행위가 거대한 확전을 불러 일으킨 중요한 근거로 해석되고 있는데요. 이에 저자인 박상섭 교수는 큰 틀에서 영국-독일, 오스트리아-러시아의 대립축이 대전의 원인이었으며 심혈을 기울인 독일 제국 재상 비스마르크의 이전 독일 중심의 비스마르크 체제가 독일 황제의 친정체제로 전환된 것도 여기에 일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실 비스마르크에 의해 보불 전쟁을 통한 독일 제국의 탄생은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지속하여 후발 제국주의적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어하는 독일 황제와 독일인들의 야망을 현실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독일 해군 건설에 따른 영국과의 갈등이 해결 불가능한 문제였고, ‘범슬라브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세르비아와 갓 보스니아 지역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빼앗아 편입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러시아에 대한 오판과 정치적 패착 등 이 두 개의 큰 골격의 첨예한 갈등이 전쟁을 터무니없이 확전시킨 이유가 되지 않았나 판단해봅니다.

물론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암살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최후 통첩을 내리고 나서 그 기간의 각국의 정치외교적 행위가 이해관계에 따른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이르고, 그것의 기름을 끼얹은 러시아 제국의 총동원령이 독일의 총동원령과 선전포고에 이르러 확전이 되었다는 기존의 학설 또한 충분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러일 전쟁 이후 러시아가 지역내에서 종이호랑이 취급을 받으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및 독일 제국이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러시아 제국이 극심한 수모를 당했다는 피해 의식과 관련하여 “러시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및 독일에게 겪은 수모감이 1차 세계대전의 반발과 관련된 수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덧붙입니다. 반대로 영국은 유럽 대륙 자체에 대한 기존의 중립적 태도가 일관될 것이라는 초기 독일 외교의 오판과 중립국 벨기에와 동맹인 프랑스의 안위가 걸려 참전했고, “1차 세계대전 주요 참전국 5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프랑스는 참전을 원하기 보다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발을 들여 놓은 나라이다” 라고 구분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런 초기 정치적 상황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를 손보고, 이 ‘범슬라브 민족주의’를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발칸에서 교두보를 마련하는 정도의 한정되고 제한된 전쟁으로 오판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원인일 것입니다. 영국이 러시아와 밀접한 동맹 관계도 아님에도 프랑스와의 동맹인 관계로 그 지원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것도 참고해야 될 부분이겠죠.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될 사실은 전장의 주요 무대였던 발칸 반도가 오스만 제국의 급격한 영향력 축소와 정치적 퇴출로 인해 힘의 공백이 발생했고, 이런 상황에서 이 지역내의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갖기 시작했으며,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를 거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종전 후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앞선 것으로 아마도 세르비아처럼 오래전 독립국가였던 국가의 민족이 이민족의 지배를 벗어나 ‘민족국가’를 세우고 싶어 하는 열망은 공감이 되나, 보스니아 지역의 사람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호에 들어가면서 오스만 제국 시절과는 다른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만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프랑스와 맞닿은 서부전선을 신속히 제압해 프랑스를 굴복시킨다는 ‘슐리펜 계획’에 대해 저자는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즉, 온전한 철도 기반과 보급 문제 해결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독일 군부와 정치권이 ‘리더쉽이 결여된 채’로 이러한 낙관적인 기대만으로 이 계획을 만들었고 다소간의 독일 제국 인사들의 터무니 없는 낙관주의가 전쟁을 오판하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개인적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독일 제국 황제의 전쟁에 대한 다소 우유부단하고 수동적인 태도도 병사들을 사지에 내몰면서도 이들을 지휘할 엘리트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했는지 독일 및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각 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전쟁 후반기의 극심한 소모전과 독일의 루덴도르프 공세가 실패로 끝나면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불러온 미국의 참전을 무시한 것도 독일 정치 엘리트의 무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1차대전은 귀족과 전제정치를 비롯한 구체제의 종말 뿐만 아니라 전쟁 자제에 대한 다소간의 낭만주의적 태도와 낙관주의를 일시에 제거한 사건이라고도 평가할 만합니다.

이 책에 결론에서 저자는 1차대전 종전 후의 전제정치와 귀족정치의 종말로 인한 국민국가 내지는 대중국가의 출현으로 인한 결과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요. 이 당시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식민지 지역의 유색인종들을 배제한 발칸반도와 동부 유럽에만 해당되는 제한적 주장으로 그 한계가 명확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뒤이어 대중을 선동하는 파시즘이 출현했다는 점에서 견고한 교육체계가 결여되고 정치의식이 전무한 대중주의 정치가 아무런 기반없이 출현한 것은 두고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대전으로 막대한 희생을 치룬 일반 대중들의 희생이 정치적 유연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이 대중들이 정치 전면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과 일반 투표권을 비롯한 참정권에 대한 한계가 영국을 비롯한 각국에서도 보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점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회의감이 듭니다. 끝으로 5장에 있는 보론은 특히 중요하게 읽어야되는 부분으로 여겨지는데요. 슐리펜 계획과 발칸 문제, 피셔 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5장만 보더라도 이 글을 향한 저자의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앞선 서두에 그동안에 소개된 1차대전 자료와 글들 중 영문으로 나와 있는 자료들만을 참고해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이후 연구자들이 좀 더 보완되고 가치있는 글이 나오기를 바라는 저자의 기대가 보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연구물이 시장 논리와 상관없이 계속 나왔으면 하는데요. 다행히 제가 구입한 이 책이 3쇄를 찍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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