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이유 -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10가지 원리
노엄 촘스키 지음, 유강은 옮김 / 이데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어학자이자 사회철학자, 역사가, 정치운동가인 노엄 촘스키는 오늘날 진보주의 학자 가운데 가장 현실참여적인 지식인입니다. MIT교수로서 왕성하게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면서도 시민들을 위해 정치와 사회 및 경제와 관련된 통렬한 글들을 수없이 써오고 있고, 반대편의 지식인 및 정치인들이 직간접적으로 그를 끊임없이 불편해 하는 것에는 매우 직접적인 표현 방식과 신랄한 비판 의식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의미로 불평등과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분석한 이 책 ‘불평등의 이유’도 그의 학자적 양심이 녹아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은 70년대 이전부터 꽤나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아메리칸 드림을 몇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요약해보면 개인에게 주어진 충분한 자유를 바탕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해서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풍요를 획득하는데 미국인이면 (혹은 미국 시민권자) 누구나 가능하다는 일종의 성공 이데올로기일 텐데요. 사실 이 점을 명확히 분석해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에게나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그 개인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자신의 성공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기 마련입니다. 헌법상의 시민에 대한 권리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열린 사회, 경제적 풍요로움이 70년대 후반 이후부터 미국의 가치가 어떠했는지 잘 알려주는 수식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레이건 집권 이후 미국과 미국사회는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요. 아마도 촘스키는 전면적인 정치 및 사회경제적인 급격한 변화에 이은 현재의 미국 정치와 사회에 대한 비판을 여기에 담고 있습니다. 국역된 이 책의 제목인 ‘불평등의 이유’는 불평등과 그것에 한정된 담론으로 여겨지게 만들지만 본질은 불평등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적인 전반을 두루 다루고 있다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원리라고 나오는 총 10가지의 분류는 벤담의 최대 다수의 행복에 반하는 전체 시민들의 삶과 현실 정치 및 경제적 상황과는 반하는 여러 현실들을 독자들에게 낱낱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기득권과 부유층의 극대화 된 부의 집중과 나날이 쇠퇴하고 있는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 시민 연대가 정치적으로 갈수록 무력화되고 있는 점, 역사상 두 번째 파급을 일으킨 금융화 금융업에 대한 규제 전무, 노동 조합에 대한 왜곡적 인식, 하층민과 중간층의 몰락, 국민의 정치 참여가 점차 배제되고 주변화 되는 과정 등을 각각의 인식과 결부되는 자료를 통해 촘스키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논증으로 명료하게 분석되어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는 무엇보다 미국 엘리트 계층의 대중 인식이 어떠한지 소개되어 있는데요. 전 FRB의장이었던 앨런 그리스펀은 “노동자들을 계속 불안정하게 만들면 순순히 통제된다”는 것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복지란 흑인 남자가 정부 사무실에서 당신의 돈을 훔치는 것을 의미한다”는 등의 표현은 엘리트 계층 대부분이 대중의 경제적 안정과 평등 및 이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확대에는 관심이 없거나 기피하며, 애초에 대중들은 소수의 엘리트 지배 정치를 따라와야 한다는 점의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뒤에 선거와 관련하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의 분노와 불만에 기대어 선거에 당선된 것처럼 그와 같은 기존의 엘리트 정치, 정치 기반을 부정하는 포퓰리스트적 정치인의 기반이 대중의 지배층에 대한 격렬한 분노와 불만에 기대어 반대급부를 얻은 것은 우려할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엘리트들이 민주주의를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평가에 오히려 반대로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의 확대와 정치 참여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기득권’과 점차 계급화에 나서고 있는 지배 엘리트에 대한 충분한 견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더 덧붙인다면, 여기에 논의되어 있는 촘스키의 분석은 사실상 미국의 많은 학자들이 연구해 왔던 것으로 특히 토마스 프랭크와 마틴 길렌스가 이에 속합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 임기 시절의 무색무취의 정책을 비판한 많은 지식인들도 레이건 이후 시장에게 모든 것을 운영하게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기조에 따라 부유층의 부의 집중이 날로 집중되어 현재의 사회시스템적 병적 고착화가 견고해져 이것을 노동자들의 권리와 시민들의 의식이 강했던 뉴딜 시기의 사회적 공감대 시절로 되돌리기는 매우 어렵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러한 것에 공감을 하고 있었는지는 확실치는 않으나 정치적으로 심각한 난관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것의 결과로 지지 계층의 이반과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대통령 스스로의 정치력 발휘가 임기 후반에 어려줘졌지만 이것 말고도 미국 기득권 층의 정치사회적 반대가 진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오바마 정부의 전방위적인 좌절이 이어졌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촘스키가 불평등과 관련해서 어느 정도 불평등이 있어야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한 점이었습니다. 이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인지 아니면 헌법이 보장하려고 하는 시민들에 대한 정치조건적 펻등에 대한 그 반대인지는 약간 불명확하지만, 금권 정치와 극심한 빈부의 격차가 만연되어 있는 현재의 미국 현실에서 어느 정도 불평등이 성장에 대한 조건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설사 그것이 원론적인 측면의 인식이라고 하더라도 약간 이해하기는 어렵더군요. 물론 촘스키도 현실의 불평등 심화에 대한 우려를 마찬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늘날 금권 정치에 대해 평가하고 있는 것은 명쾌하다고 여겨졌는데요. 정부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고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바인데, 사실상 정치인들이 대의를 말하면서도 교묘히 사익 추구에 나서고 있고 이들 뒤에는 수많은 로비 단체가 있다는 점, 공화당 의원들이 정부를 점차 축소하자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금권 정치의 기반을 강화하고자 하는 원인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복지와 관련해서도 개인의 선택과 자유라는 잣대를 더욱 강화하면서 복지는 그것에 반하는 것으로 확대 재생한 하는 것도 시민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만들어 사설 보험 등과 같은 민간이 시민들의 돈을 쥐어짜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그야말로 이득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점은 촘스키보다 토머스 프랭크의 글이 더 명확한데요. 전체적으로 이러한 현실 상황이 민주주의의 쇠티를 가져오고 시민들이 자신들의 기본권을 점차 영위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정치를 외면하지 말아야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는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끝으로 촘스키의 이러한 결말은 미국의 현실 디스토피아를 어떤 매개물 없이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번역도 딱히 나무랄데가 없었고, 챕터 마다 촘스키 자신의 주장에 대한 독자들의 설득력 강화를 위해 주장의 근간이 된 원전을 소개하고 독자들의 재차 이해에 큰 도움이 되겠더군요. 참으로 ‘지성인의 의무’와 걸맞는 삶을 살고 있는 촘스키 교수가 현시대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3쇄가 찍힌 책을 구해 읽었는데 모쪼록 이 책이 더 많이 독자들의 손에 들어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