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옥스퍼드 세계사
템마 카플란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하버드 대학 출신의 저명한 비교역사학자인 템마 카플란의 인류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미시적인 분석 글인 ‘당신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읽었습니다. 저자인 템마 카플란은 미국 의회의 (일종의)공로상과 구겐하임 재단에서 상을 받는 등 여류 역사학자로서 꽤 인지도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Democracy : A World History, First Edition 이며, 옥스포드 출판사에서 내놓은 역사 시리즈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우선 이 책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데요. “민주주의는 일종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여기에 모두가 동등한 법치주의적 관점의 발전과 세계 각지의 사람들의 민주적 요구는 서로 관계되어 영향을 끼쳐왔다는 의견으로 이러한 민주주의가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후의 인문주의와 계몽주의가 발전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권리와 자원을 둘러싼 사람들의 민주적 요구와 행동이 분명 있어왔다는 비교역사학적인 분석과 판단이 매우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이집트의 파라오가 물을 분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처럼, 한정된 자원을 균등하게 나누는 것에서 아마도 민주주의적 정치적 기초가 초래한 것으로 저자는 이해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짧았던 공화정 시기의 역사를 이처럼 해석합니다. 그리스 시대의 페리클레스는 “우리의 체제가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권력이 일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는 것은 이 시대의 법관들 또한 추첨으로 선출해 모두에게 기회로 부여된 권력으로 전무후무한 그리스 대중들의 직접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뒤에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일이 대의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뒷바침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저도 이러한 부분에 적극적으로 동감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를 좀 더 건강한 체질로 만드는데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는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괴상한 ‘시민은 생업에 신경쓰고 정치는 전문가들이 해야된다’는 논리는 우리의 민주주의에 과연 도움이 되었느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후, 12세기를 거쳐 유럽의 도시들이 도시화의 시기에 들어서자 시민 계급이 다소나마 형성되고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눈뜨게 됩니다. 호국경인 크롬웰이 영국을 통치하던 시기에 릴번의 사례와 비로소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초라 불리우는 식민지 신대륙의 보스턴 시민들의 예도 경제활동으로 매번 뜯어가는 왕의 세금 만큼이나 자신들이 누려야 되는 권리에 눈을 뜨게 됩니다. 더욱이 프랑스 혁명 이전과 그 즈음 이후에 프랑스 여성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에 눈을 뜨면서 조직적으로 행동하여 정치적 요구를 주장하고 갓 독립한 13주 미국의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당시 남성들이 이 여성들의 요구를 급진적이라고 격하했지만 4인의 여성이 ‘여성독립선언서’라고 불리우는 일종의 희극을 벌인것도 저자가 스스로 여자이기 때문에 여성들의 권리 운동의 미약한 역사를 여기에 담은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원초적인 신념을 그녀 역시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정치 운동 등 바깥에 밀려나 있던 여성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독자에게 알리기 위함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모든 혁명이 격렬한 비판과 반혁명에 직면하게 되는 전환점은. 먼저 정부가 단순히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독재적인 정책들을 차용할 용의가 있는지와 관계가 있다”는 저자의 언급은 세계 양차 대전 시기에 불완전한 민주주의 체제의 정부가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나 그것을 반대하는 민중들을 억누르기 위해 손쉬운 폭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공화제와 민주주의 자체의 존립을 떠나 파멸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경고와 가까워 보입니다. 이 시기에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적 세력이 터져 나오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대리 전쟁으로 불리우는 2차대전까지 터지게 되고 이러한 측면에서 종전 이후 많은 식민지들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 정치적 독립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매우 자명해 보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의 전제 권력이 구체제로 회귀시키려고 했던 것과 다리 2차대전 이후는 이와는 다른 양상을 띄게 된 것이죠. 즉,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멕시코와 쿠바의 혁명가들의 숱한 일화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애초에 구체제의 상황에서 정치적 자결과 자신들의 자원을 더 이상 수탈당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요구와 그 권리는 앞선 민주주의의 원리와 다를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역사의 고고한 흐름인지 혁명의 기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주의 체제의 수호를 부르짖었던 연합국의 이데올로기로서 이것을 뒤집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겠죠. 이에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치러졌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렇게 세계 대전을 치루고 첨예한 냉전 시기에서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내부 모습은 여성 참정권과 인종차별 문제 등의 시민 운동 시기였는데요.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질서를 유지하는 자들이 책임감을 갖고 모든 사람을 대한다고 확신해야만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시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명확히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피노체트 쿠데타에 의해 축출된 칠레 아옌데 대통령의 일례로 봤을 때도, 정당하지 않은 기득권 세력을 제대로 견제해야만 이 민주제를 지켜 낼 수 있는 것이고, 외세의 개입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CIA가 개입한 것이 정설로 알려진 이 사건은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맏형이라고 자임하는 미국의 어두운 그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1989년의 천안문 사태도 이와 같은데 여기에서 저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민주주의는 거저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입니다. 결국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과거에 쟁취했다고 생각한 권리들을 획득하기 위해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결론은 민주주의와 내 삶은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 해보게 되는군요. 어쩌면 이 책의 번역된 제목이 말하고자 바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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