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승리인가 자본의 위기인가 - 자본주의의 작은 역사
울리케 헤르만 지음, 이미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쓴 울리케 헤르만은 독일 함부르크 출생으로 베를린 자유 대학에서 경제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여러 미디어 등의 토론에 출현해 경제문제와 사회문제 등을 다루고 있는 언론인이기도 합니다. 저명한 경제학 논문을 발표하거나 동일 학계에 이름이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이 책을 통해 꽤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공감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고 밝히고 싶군요. 독일어로 씌여진 원제는 ‘Der Sieg Des Kapitals’로 번역하면 자본의 승리가 되겠습니다.

책의 도입에서 저자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사에 대해 소홀하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경제학자들에게 경제사는 특히 영국의 산업 혁명에 대한 본질과 애덤 스미스가 신고전 경제학에서 인용하는대로 개인의 자유와 이기심에 대해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크게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는 측면의 진실을 인정하기 힘든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과거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경제권이 붕괴되었어도 그것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려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라고도 생각됩니다.

일단 이 책은 전체적으로 4부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1부가 고대 로마시대에도 있었던 자본의 개념, 네덜란드의 상업 부흥 시기와 영국의 산업 혁명 시기를 서술하고 2부는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자본의 세가지 오류인 ‘자본주의는 시장 경제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국가와 적대적이지 않다, 세계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를 밝힙니다. 그리고 3부는 자본과 돈의 구별과 차이점을 열거하고 마지막 4부는 금융의 위기로 볼 수 있는 오늘날 자본의 위기에 대한 배경과 경제사를 함께 분석합니다.

우선 저자가 생각하는 자본과 자본주의의 기본적 인식은 “자본주의는 위기에 처하는 경향이 있어 정기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는 매우 유동적인 시스템”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자본주의의 진정한 원동력은 ‘임금’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으며, 오늘날 그리스로 촉발된 유로화의 위기에 있어서 EU의 거대 자본주의 국가 독일이 자신들의 임금을 상승시켜야 유로 가맹국들이 통화 발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자발적 제한’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이것이 위기의 출구 전략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은 경제사회적으로 복합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높은 부자 세금, 높은 임금, 강력한 감독 등의 자산가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사회주의가 도래한 것’이라 믿는데 워렌 버핏 등이 부자들의 증세에 동의하는 것도 이러한 정책이 오히려 경기 부양과 시장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분명 이 부분도 공감이 되는 것인데요. 무엇보다 현재의 신자유주의가 이미 본연의 ‘신자유주의’가 아닌 것은 2007년의 금융업계의 도덕 불감증이 국가의 도움을 자발적으로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앞선 인식들은 저자가 말하는 자본주의가 세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자본주의와 금융시장을 별개로 여기거나 분리 이해하는 학자들이 전세계에 아직도 태반이 넘지만 이것은 사실상 의미없는 주장에 그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분명 다른 것이라고 글에서 다루고 있는데요. 저자의 말대로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존재하고 이들사이에 일정한 매커니즘이 있는 것으로 오늘날 너무 ‘무슨무슨 시장’ 이라고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장 자체에서 ‘소수의 독점 이해자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는 이러한 시장경제의 측면이 과거 대공황 시기 이전에도 미국 시장의 소수 기업들이 독점화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이 있었던 것을 보면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는 언뜻 부정적 영향의 연관성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본주의가 시장 경제보다는 의미론 내지 분류론으로 봤을 때 좀 더 시장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틀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를 선도하는 기술의 발전은 국가 발전의 한 축이 될 수 있고 이렇게 본다면 자본주의와 국가는 적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 일부 증명될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 국가의 지속적 개입이 없다면 자본주의는 결코 작동하지 못한다’는 저자의 해석도 자본주의와 국가의 본질적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여러 사례들을 보더라도 국가와 자본주의와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고 이들을 따로 분리 생각해서는 맞물린 현상들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힘들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4부는 금융과 금융시장의 위기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신자쥬우의를 우회 비판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지난 1970년대의 미국 경제 위기와 2007년의 뉴욕 발 금융위기가 베트남 전과 이라크 전쟁이 큰 원인이었다고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부분인 것만은 확실해 보이는데요. 저자는 여기에 1973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가 신자유주의자들이 사실상 이것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이것을 의식적으로 뛰어넘어 금융시장의 문분별한 확대를 옹호하는 이들이 이러한 외적 팽창 시기를 자신들의 승리로 여긴다는 것을 비판합니다. 신용 대부를 통해 기업들을 사냥하는 행위가 과연 자본주의에 이롭냐 이롭지 않냐를 말하기에 앞서 ‘기업사냥꾼들’ 자체는 자신들의 잇속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후에 금융 시장을 통해 무분별한 증권화와 도덕적 해이는 금융인들 자신이 시스템을 통한 사익 추구가 너무나 만연되어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책임을 국가가 대신 치뤘다는 결과만으로도 저는 이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4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반대로 ‘인플레이션 시기에 노동 조합들이 높은 임금을 고집한 것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무분별한 저축이 초래하는 재앙들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은 이쪽과 저쪽의 어느 한쪽의 입장보다는 이론적 자본주의와 시장의 여러 현상 등에 저자인 울리케 헤르만 특유의 시각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경제와 관련된 여러 문제와 과제들은 흔히 이념적으로 오도될 가능성이 큰데요. 일찍이 노엄 촘스키가 말한대로 ‘신자유주의자들이 당면한 경제문제에 개인의 자유 등을 비롯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어 본질을 흐려 이 판을 흙탕물로 만든 책임이 있다’것이 이런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얼마 전에 리뷰했던 조지프 히스의 글에서도 ‘좌파들은 경제학적 이론을 갖고 치열하게 다퉈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지 않나 싶습니다.

끝으로 저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노동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벗겨내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기술 발전과 노동의 역할이 자본주의 발전에 큰 중요한 부분이라면 좀 더 건전한 발전을 위해 우리 시민들의 노력과 이 판 자체를 흙탕물로 만들려고 하는 일부 우파들의 오역된 주장들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과거에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그동안 너무 계급적으로 인식되어 좌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도 극복해야 될 문제일지도 모르겠군요. 경제사와 자본주의 및 시장경제를 과거와 오늘날을 함께 모색하며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의 일독이 저에게는 오랜만에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유가 된다면 조만간 한번 더 정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