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민주주의 - 시장, 평등, 정의
조안 C. 트론토 지음, 김희강.나상원 옮김 / 아포리아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이자 돌봄 (care)과 관련된 최고의 권위자이자 여성주의 정치학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학자인 조안 C. 트론트의 유명한 주저 ‘돌봄 민주주의’를 읽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Caring Democracy로 지난 2013년에 출간 되었습니다.

우선 이 돌봄 (care) 이라는 용어에 대해 고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자는 이 돌봄이라는 용어를 도덕적 및 정치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일반적으로 알려진 책임이라는 단어를 이 돌봄에 의미 부여를 하고 더불어 적지 않은 정치사회 이론가들의 저서와 주장을 여기에 뒷받침 하는 형태로 독자의 이해를 구하고 있는데요. 이는 소극적으로 알려져 있는 개인적 차원의 돌봄을 궁극적인 전사회적인 단계인 함께 돌봄 (caring with)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저자의 희망적인 당위성도 포함합니다. 물론 이런 결론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 및 국가적인 측면의 해석으로까지 확장하는데요. 여기에 논의되는 주장들이 매우 설득력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많은 공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정치사회학을 비롯한 기존의 학문들이 ‘정치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을 해왔고 어쩌면 그것은 너무나 대의적인 측면의 이데올로기로서 현실적으로 약간 동떨어져 있었다고 저자는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그래서 더 면밀한 접근으로 이제부터라도 민주주의 이론이 ‘실질적으로 누가 보살피는가 라는 질문을 다뤄야 한다’ 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그동안 민주주의 사회에 뿌리 내린 신자유주의는 시장과 개인의 책임 이데올로기를 강조해왔고 이러한 의의를 해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 비판을 가해왔습니다. “정치는 단순한 선거 경쟁이 아니라 제때에 올바른 방향으로 국가를 인도해 갈 수 있는 집합적인 행동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봤을 때 신자유주의가 국가의 역할을 제한하려고 했던 것은 정치의 본질적인 의미와 국가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일종의 부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신자유주의가 왜곡한 정치에서 “함께 돌봄의 핵심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사회를 가능한 한 민주적으로 만듦으로써 최대한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으로서의 정치 본연의 회귀 및 회복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즉, 트론토의 이 돌봄이라는 당위적 맥락은 우리가 스스로 건설한 민주주의를 좀 더 건강하고 건실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 어느 사회나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는 강한 성역할의 이데올로기와 성차별, 당연히 결핍된 자는 도태되어야만 한다는 생태학적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어떤 과외 비용을 들여서 이러한 돌봄을 대체하거나 무임승차론에 편승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기본적으로 이 글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돌봄이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 국한시키는 의도, 성차별주의자들의 케케묵은 주장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난립 등은 신자유주의의 그 애매한 태도로 인해 점차 힘을 얻고 우리 정치의 불신과 부정의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민주 사회가 해주어야 할 최소한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평등하고 포괄적으로 누릴 수 있는 돌봄을 만드는 것”이고, 사회의 외곽에 있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사회적 돌봄의 배려가 그것이 불평등한 처사가 아니라 마땅히 정치적 평등에 입각한 행위라고 시민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도 실려 있습니다. 책의 4장까지가 신자유주의와 시장에 상황에 놓여 있는 민주주의와 돌봄에 대한 내용이라면 5장은 시장의 논리가 전파되어 있는 시점에서 시장이 돌봄을 행할 수 있느냐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 될 것입니다. 대범하게 우리에게 인간성을 삭제하라고 강요하는 시장의 논리가 공공재를 민영화하려는 의도도 숨기지 않고 있기에 그것에 대한 성찰이 분명 필요해보입니다.

끝으로 마지막 두 장은 민주적 돌봄과 돌봄 민주주의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상세한 해석으로 돌봄을 받은 시민이 과연 앞으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에 대한 예측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측은 결코 일회성이 아니며 정부와 시민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지고 정부 스스로는 시민들에게 일종의 ‘영감’을 계속 제공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어쩌면 이상주의적일지도 모르는 입장을 저자는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자의 이 글은 돌봄 결핍과 민주주의 결핍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주장으로 시작되었다고 글에서 소개되어 있는데요. 결국 이러한 돌봄은 세상을 바꾸게 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확신을 보여 줍니다. “신자유주의자는 선택이라는 깃발 아래 자유시장에 대한 간섭일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정부 활동의 제한을 추구한다”는 이 무차별 이데올로기를 부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마땅히 ‘돌봄의 가치’와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고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을 당위로 행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트론토의 이 글은 바로 앞선 이런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나 감히 판단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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