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 퇴락한 반동기의 사상적 풍경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나무연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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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저자인 서경식 교수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로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한 후, 현재 도쿄게이자이 대학 현대헌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지난 2006년에는 우리나라 성공회대학에 2년간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한국과도 적잖은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지식인으로 특히 저에게는 지난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출판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비판과 일본내에서 양심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와다 하루키 교수와 지난 2017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 양측의 졸속 합의된 ‘위안부 합의’ 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지면을 통해 논쟁한 것으로 기억납니다. 이 두 가지와 관련된 부분도 이 책의 2장과 3장에 자세희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다 일독하고 나서 정말 비통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재일한국인(한국인이라는 디아스포라적인 입장에서) 으로 그동안 일본에서 60년간 삶을 살아오면서 서경식 교수가 체험했을 인종적인 차별과 전후 및 일본 제국의 식민지주의와 관련된 대다수 일본인들의 예의 ‘침묵’을 고스란히 느끼며 상처받았을 개인의 양심이자 그의 학자적 양심이 어떠했을지 추측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압도적인 주류가 되어버린 역사수정주의자들과 한국, 북한, 중국 및 다른 아시아인들에 대해 전후 역사 문제 및 식민지 지배에 대한 그 애매한 입장과 더불어 그들에 대한 적극적인 적대적 발언과 혐오는 서경식 교수의 표현대로 겉으로는 예의바르고 의식있어 보이는 얼굴에 이 문제 만큼은 적극적으로 ‘애매함’을 내세우며 내면에 침잠해 있는 일본인들의 침략주의적 근성입니다. 이를테면 한반도에 유사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적극적으로 미군과 함께 자위대를 파견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헌법 개정과 집단 자위권 확정과 같은 내외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 정치권과 이것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거나 혹은 내심 동조하는 일본인들의 의식 구조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느꼈습니다.

저자인 서교수는 이 글의 도입에서 ‘일본 극우 세력과 헌법 개정주의자들 및 역사수정주의자들’에 대한 본질은 한국에서도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고 비판 또한 활발한 편인데, 이들 이면에 아무런 의사 표명없이 ‘애매함’으로 침묵하고 있는 일본 ‘리버럴들’을 서슴없이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리버럴들도 일본 국가 자체에 대한 국가주의 및 애국주의적인 입장에 동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이 글을 읽은 후에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이런 일본의 국내 상황이 한국의 비판 세력과 연대나 동조도 어렵게 되었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반식민주의 세력과의 연대도 무너져 국제 무대에서 일본 정부가 매우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입장인 “종군 위안부와 관련된 당시 일본 정부의 연관설을 부정하고 이는 국가가 저지른 전쟁 범죄가 아니며, 법적으로도 일본이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종하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저자 역시 일본이 지난 포츠담 선언으로 일본이 조선과 대만 등의 식민지를 포기하겠다는 것을 수락했다고 여기는 것과 전후 처리 과정에서 당시 워싱턴과 맥아더가 일왕제에 대한 존속을 결의하고 그 직접적인 전쟁 책임자를 단죄하지 못한 애초의 ‘목에 걸린 생선 가시’ 지금의 동아시아에서 역사 갈등과 전후 책임 문제의 근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은 저와 같은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입이 아픈 주제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인들과 일본 언론은 바로 이런 일본 정부의 식민주의적인 입장과 역사수정주의 및 관련된 정부의 입장에 맞서 싸워야만 했으나 그러지 않았고 이렇게 된 배경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결국 일본인들의 그 ‘애매한 태도’에 본질이 있다고 서교수는 밝힙니다. 사실 2차대전 당시에 일본인들이 자국이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된 것을 알고 일본 제국 시민으로서 전쟁에 참여해 그것에 기반한 이득을 쟁취하겠다는 사적인 이기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분명 있었고 그런 분위기를 이해하는 많은 일본인들이 있었음에도 전후 처리 과정에서 자기들은 ‘그때는 정말 우리는 그런줄은 몰랐다’고 발뺌하는 것은 정말 유치한 장난에 지나지 않다고 봐야겠죠. 이것은 불행하지만 일관되게도 일왕을 단죄하지 못한 혹은 일왕제에 대한 존체에 따른 제반 이익으로 미국 정부가 그런식으로 처리한 것이 일차적인 원인일 것 입니다.

결국 동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명백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결여된 채 종전 처리가 졸속으로 이뤄져 이런 결과로 위안부와 관련된 박유하 교수의 그런 글이 아무리 한국에서 출간되어 이슈가 되고 또 일본에서는 침묵하는 다수의 일본인들과 그것을 기반으로 더욱 날뛰는 일본의 우익 세력, 역사수정주의자들, 헌법 개헌론자들의 판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애초에 저는 이러한 일본 국내의 현상에 대해 많은 부분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하는 교육 기관의 역사 교육 문제로 여기고 있었는데요. 서교수의 이 글을 보고 드는 생각은 이것은 오로지 역사 교육의 결여로 발생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일당 체제로 견고화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시민의 기본권과 언론 출판의 자유가 공고히 있었는데 그동안 출판된 관련 서적이나 공개되어 있는 수많은 사료들과 자료들을 조금이라도 찾아보면 개인의 양심에 따라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들인데 결국 이익에 따라 다수의 일본인들이 눈을 감은 것이겠죠. 저는 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일본 재특회에 대한 주장입니다. “재특회의 멤버들이 재일 한국, 조선이들을 고키부리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학살해야 한다”는 사례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러한 심각한 인종 차별적인 주장 마저도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일본 사회가 양심을 길바닥에 내다 버렸는지 알 수 있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종전과 그 전후 처리 과정은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몇세대가 지나더라도 이 역사 문제, 일본 제국에 의한 식민주의 그로인한 우리나라와 중국과 갈등은 해결할 수도 없으며. 이미 미일 동맹과 일본의 국제적인 국가 지위를 감안하고 여기에 침묵하는 일본 대다수 국민들과 마찬가지의 상태인 일본 리버럴 지식인들과 변절한 사회당 정치인 등의 현 상황이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상황에서 무슨 ‘동아시아 공동체론’ 이라든지 ‘동아시아 연대론’을 주장하는 (실명을 밝히고 싶지 않은) 국내 학자들이 얼마나 몰지각하고 현실을 망각한 무분별한 탈역사주의에 빠져 있는지 진심으로 자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경식 교수가 여기에 밝힌 현재 일본과 일본인들의 정치적인 내면 세계와 사고가 너무나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체감되어 어떻게 보면 더 일본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체념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서교수의 문제가 아니라 전혀 바뀔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한 사람의 개인적 차원의 생생한 습득 체험이어서 그럴 겁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보셨으면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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