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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공화국 - 트럼프는 어떻게 권력을 사용하는가
데이비드 프럼 지음, 박홍경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에 대통령 연설문 작성자이자 특별 보좌관을 역임했던 데이비드 프럼은 현재 언론인으로서 MSNBC의 토론자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그는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임기가 절반을 지난 지금 꽤 의미있는 글을 내놨는데요. 이 책의 원제는 Trumpcracy : The Corporation of the Amercan Republic 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원제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즉, 내용과 거의 다를바 없는 제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하게 된 이유와 그 현상은 포퓰리즘과 반지성주의가 결합해 생성된 미국 민주주의적 정치에 첨예한 극단주의가 배경일텐데요, 더 쉽게 표현하자면 시민의 분노와 좌절에 기대어 이것을 자양분 삼아 전체적으로 한 개인의 영달에 이용한 것이 본질입니다. 보통 정치인들은 미디어나 공개 석상에서 드러난 화법이 앞으로 있을 행동에 혹여 걸림돌이 될까봐 모호하고 알맹이 없는 발언을 정치적 수사라고 일컬어 왔습니다. 그에 비하면 도널드 트럼프는 그야말로 ‘날 것’ 그 자체로 볼 수 있을텐데요. 저자인 데이비드 프럼은 이렇게 정화되지 않은 트럼프의 여러 매체와 연설상의 발언들을 자료삼아 이 대통령을 분석하는데 쓰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정치적 평론글과는 조금 다른 형식의 글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이것 자체 만으로도 읽는내내 흥미로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불유쾌한 감정도 마찬가지로 딸려 왔습니다.
저는 여러 트럼프와 관련된 글들을 접하면서 그가 아버지로부터 인종주의적 편견을 물려받고 여성차별주의적이고 나르시즘적 자기 만족과 기만과 거짓말을 수단 삼아 일생을 살아온 인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임대 사업을 하면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들에게 임대를 주지 않았고 트럼프 자신도 거리낌없이 내색할 정도로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입니다. KKK단에 대한 매우 애매모호한 태도, 연방 대법원에 판사 임용과 관련하여 “흑인이 합당한 판결을 할 가능성이 적지 않냐”는 식의 발언 등은 그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인종편견에 틀에 갇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틀을 일부러 안 벗어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트럼프가 지금의 백악관을 차지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저자인 데이비드 프럼은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발표하기 전부터 미국 정치는 극단주의와 불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고 평가하며 거기에다 경쟁자였던 힐러리에 대한 여성차별주의적 기만 전술과 전임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 의혹과 바티칸 교황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거짓 주장까지 일삼으며, 유권자인 미국 시민들을 허위로 선동했다는 측면에서 ‘포퓰리즘적 정치인’의 대표젹이고, 이러한 토대는 미국인들의 ‘반지성주의적 배타성’에 흐름이 더해진 결과라고 요약하는 것과 같은 내용들을 책에 담고 있습니다.
이런 일화들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2015년 FOX 와의 인터뷰 이후 사회자 메건 켈리에 대해 “그 여자는 입만 열면 웃기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눈이 충혈되어 있던데 아마 다른 곳에서도 출혈이 있었을 겁니다”라고 트럼프는 CNN에서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발언을 하는데요. 여성에 대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자가 어떻게 대통령 후보에 나서고 유권자들이 마땅하게 이런 인간을 걸러내야 함에도 ‘정상적인 정치적 여과’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국내 정치 문제 뿐만 아니라 저자는 트럼프를 국제 시스템에서 현재까지 미국이 추구해 온 글로벌 체제를 붕괴시키려고 하는 위험한 인물로 실증하고 있는데요. NATO에 대한 전통적인 미국의 방위 선언을 모호하게 처리하고,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러시아에 의해 자행되었던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에 ‘정치적 봉쇄’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부적절하게 푸틴과 러시아에 근접하고 있는 행동도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좋지 않은 신호를 안겨주는 것으로 분석합니다.
데이비드 프럼의 이 책은 과거 공화당 행정부에 각료로 참여했던 인사가 어찌됐든 공화당 간판을 달고 미 대선에 당선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는 측면애서 여느 다른 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한국과 관련된 내용에서도 사드 배치와 관련된 10억 달러 분담 강요와 한미 FTA재협상 압박 등으로 동맹국에 모욕과 좌절을 안겨줌으로써 한국 대선에서 선출된 신임 대통령이 사드 재배치와 북한과의 대화를 선결 과제로 발표함으로 아마추어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고 있는데요. 미국과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고 순순히 협조해야만 하는 한국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도 안되는 입버릇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식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요. 공화당 인사의 전형적인 한국을 보는 시각이라 저는 느껴져서 입맛이 꽤 씁쓸했습니다. 약간의 이 부분을 제외하면 트럼프와 트럼프 일가의 속성을 외부의 독자들이 좀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데 큰 조력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각주를 제외하면 320여페이지 정도이고 본문의 활자와 구성에도 제법 여유가 있어서 보다 쉽게 일독하실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한 국가의 정점에 있는 정치인이 속을 잘 드러내지 않고 모략과 술수에 국한된 것도 문제겠지만 현 자유 세계의 리더와 같은 거짓말과 기만에 아무런 가책이 없고 오로지 믿을 만한 건 자신밖에 없다는 인식의 다소 괴랄한 정치인의 탄생은 시대의 요구인지 정치의 종말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군요. 다만, 이 정치인에게 우리의 안보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우리로서는 정말 난감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