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과 저항을 넘어서 - 이승만과 박정희의 대미정책
신욱희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미관계 및 미국과의 외교에 있어서 권위를 갖고 있는 이삼성 교수와 한중관계에 천착하고 있는 성균관대 이희옥 교수, 주재우 교수와 더불어 국내 국제정치학계에서 의미있는 연구와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서울대 신욱희 선생의 과거 우리의 독재 권력이었던 이승만과 박정희 시기의 한미 외교 관계 분석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 ‘순응과 저항을 넘어서’를 일독했습니다. 신욱희 선생의 글은 번역한 책까지 포함하면 이번이 3번째 서평인것 같은데요. 신 교수의 번역은 최근에 리뷰한 베리 부잔의 ‘국제 안보론’입니다.

요즘 국제정치학계에서 많이 인용되는 학자들로는 월츠와 월트, 코헤인 정도가 될텐데요. 아시겠지만 위의 학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국제정치학 관련 학자들의 유명한 주저들이 국내에 번역이 안되고 있습니다. 전공자들은 원서를 구입해서 직접 일독하거나 과거 지도 교수들이나 관련 국내 학자들의 논문들을 찾아보는 것이 일반적일텐데요. 이런 측면에서 저와 같은 일반 독자는 전반적인 접근의 문제가 있습니다. 모쪼록 국내에 이들 도서의 번역 출판이 이루어졌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개해 드릴 이 책은 총 4장의 분량으로 되어 있고 2장과 3장이 주요 네용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장은 한미 동맹과 같은 대표적인 비대칭 동맹 관계에서 양자 관계가 어떻게 순응과 저항이라는 매개로 한국과 미국의 외교 관계를 분석하고 이에 따른 학자들의 몇가지 이론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코헤인의 비대칭 동맹 연구라든지 후견-피후견 관계, 동맹의 무임승차론 등의 한미동맹 초기부터 대체 한국에 있어서 이 한미동맹은 어떠한 의미이고, 정치외교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현실적 분석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우리는 한국 전쟁을 치루고 냉전이 심화되는 시기에 안보적 불안을 갖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의 후견국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던 미국과 그 이 한미 동맹 관계를 여러 방면에서 이용 및 차용했던 약소국 한국의 입장을 이승만 독재 시기부터 상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3장은 바로 그 역사와 사례를 살펴본 부분인데요. 트루먼 행정부 이후 아이젠하워가 집권하면서 미국의 국외 정책이 시시각각 변화되면서 ‘제국의 변방에 속해 있는 위성국과 같은 위치에 있던 한국의 상황’과 그 위성국의 통치자였던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기 보다는 냉전체제에 있어 자유진영의 지도자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고” 또한 ‘북진통일론’ 수시로 언급하는 일종의 예측불가의 갈등 소지자로 한미 동맹 자체가 현실주의적 시각에 기반하는 동맹 이론과 한미 동맹 자체의 특수성이라는 양자의 상충적인 측면을 안고 있는 것에서 꽤 양국에게 불안요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승만의 국내적인 상황은 차치하더라도 전쟁 이후, 자국의 안보 상황에 기초해 일본에 더 집중하려는 미국과 한국에 주둔하던 주한미군을 감축시키려는 시도 자체를 외교 관계 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에 있어서도 불리했던 것은 확실해보입니다. 더군다나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이 일본과 수교를 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진전되는 회담을 바랬던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탐탁치 않았던 이승만 정권은 면밀한 관리대상이었겠죠. 한가지 이해가 안되는 점은 이승만 스스로가 친일파 및 친일부역자의 지지로 탄생한 독재 정권인데,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는 부정적이었다는 입장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군요. 과거 하와이나 미국 본토에서의 독립 운동 및 상해 임시 정부에서의 정치 활동은 이미 드러난 사료가 많아서 이승만 스스로가 과연 정말 패망한 조국의 독립이 목적이었는지는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4.19 이후 전면적인 경제 발전 정책을 요구했던 미국은 이 때 탄생한 장면 정부가 박정희에 의한 군사 쿠데타로 붕괴되고 이후 박정희 독재 정권 또한 이승만 정권과 유사한 대미 외교 체계를 보이게 됩니다. 주한 미군을 정권의 안정을 위한 담보로 여기고 국내 정치적으로는 반공 독재 체제를 강화하여 미중간에 데탕트의 분위기가 고조되지만 당시 박정희 정권은 북한과의 대화를 거의 전면적으로 거부, 공산진영인 중국과의 관계에서 유연한 대처를 하고 있던 닉슨 행정부와 키신저의 다소간의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닉슨 독트린 발표 이후 주한 미국 감축과 관련된 불안을 불식시키고자 미국은 제스처를 보내지만 박정희 정권도 마찬가지로 주한미군 감축을 용납할 수는 없어서 결국 핵개발과 같은 무리수를 두게 되죠. 1970년 당시 “미국은 이미 북한과의 직접적 협상을 꺼리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고” 어떻게 보면 북한의 통미봉남 술책에 이 시기에는 자초한 경향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국 측은 북한의 김일성이 단독으로 남침을 다시 시도하기란 어렵다고 봤으나, 이미 김일성은 두 차례나 중국 측에 남침을 할 때라고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

독재 정권이었던 박정희 시기의 대미 관계 및 관련된 외교 정책들이 너무나 미국 의존적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1973년 이후 차츰 남한의 국력이 북한을 초월하기 시작해 한국 스스로 북한에 대한 자위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미국산 무기를 비롯한 막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 등이 수행되면서 한미 동맹 자체가 변화해 왔습니다. 앞서 이 글의 도입부에서 한미 동맹 자체가 대표적인 비대칭동맹이어서 양자가 방기와 연루의 위협에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한국 전쟁 이후 두 나라의 외교 관계가 이를 증명하는 과정이었다고 여겨집니다. 특히 우리에게 있어서 미국에 대한 의존성이 심화되었고 이런 상태가 북한과의 종합적인 관계에 있어서 스스로 능력을 제한하게 되는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오늘날의 시점에서도 국격의 상당한 상향을 달성했지만 한미 관계에 있어서는 아직도 비대칭적인 동맹 관계이기도 합니다. 워싱턴은 한국의 번영을 미국의 시스템하에서 이룩한 훌륭한 업적이라고 자부하기도 합니다. 분명 이것은 일정 부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당면한 북한 핵문제와 중국의 대두 시점에서 우리의 한미 동맹이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될지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리라 여겨집니다.

약간의 논외로 이제 북한의 핵개발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로 첫 삽을 뜨긴 했는데요. 이 시기 역시 한국 정부의 냉정하고 현실적인 대응이 요청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북대화는 매우 필요하고 적대관계 해소 또한 민족적 당위성입니다만 정확한 상황 인식은 전제되어야 하지 않나 싶군요. 이런 상황에서는 미국 측 또한 한미 동맹이 매우 중요하며, 북한의 핵문제 나아가서는 중국의 노골적인 지역 패권국 지위 획득 시도에 우리의 한미 관계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여겨집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터라이프 2018-08-30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우 기간 중 배송 업체의 문제로 인해 주문한지 7일만에 책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혹시 구매하실 분들이 계신다면 참고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