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슬라보예 지젝 특강
슬라보예 지젝 지음, 민승기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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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사유, 깊은 통찰력으로 한때 세계 철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슬라보예 지젝이 지난 2012년 경희대에서 했던 강연을 책으로 엮은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지젝의 글은 두 번째 리뷰입니다. 약간의 여담이지만 저는 이상하게 지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경희대 이택광 교수가 문득 생각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연이 끝나고 약간의 질의응답을 담은 마지막 4장은 이택광 교수가 사회자를 맡았는데요. 이 교수가 지젝에게 많은 학문적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 보기도 합니다. 뭐 지젝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전세계에 한두명은 아닐테지만요.

이 책은 전체적으로 10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3장의 주제와 4장의 약간 열린 토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전지구적 자본주의화에 대한 문제와 이를 바탕으로 한 과학 기술의 통제 없는 진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보다 큰틀에서는 각 사회에 변질된 자본주의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양면성의 형태로 나타날지에 대한 고민과 이에 대한 통찰력있는 지젝의 사례와 전망이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익히 아시다시피 지젝의 글쓰기 내지는 사상의 전달은 매우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스스로도 달변으로 잘 알려져 있죠.

버틀란드 러셀은 과거에 인간은 이데올로기의 동물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주의주의를 강요하는 동물도 인간이고, 그런 이데올로기를 대의라 지칭하며 삶의 지표로 삼는 개인들도 많지요. 오늘날 전세계 아니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어떤 이데올로기들이 대적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현실은 아프리카와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극빈의 모습으로 잘사는 곳과 못사는 곳의 격차가 심각한데요. “자신이 삶을 변화시키지 않더라도 얼마간의 돈을 지갑에서 꺼내어 여러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것만으로 심리적 만족과 동시에 현실의 망각을 받아들여 위안을 삼는 것”은 이러한 고착화를 불러 일으켰다고 봐야 할 텐데요. 지젝은 이것을 얄팍한 도덕적 위안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서구의 선진국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 있는 많은 개인들이 대량소비를 하면서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한번이라도 통찰과 숙고가 없는것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죠. 지젝은 여기 글에서 스타벅스와 여러 사례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입장을 내비치고 있는데요. “이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비롯한 일련의 체제들이 우리가 숨쉬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일종의 미신이라고 믿겨지는 것 같다”는 말을 지젝은 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이 체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 말이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익히 알려진 역사의 종말이라는 것을 통해 민주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주의가 이데올로기의 승자가 되었다고 부르짖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를 보다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좌파들의 끊임없는 비판과 견제, 성실하고 실용적인 목소리가 필요했는데, 그런면에서 좌파는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할텐데요. 지난 그리스의 위기에서 어디에도 좌파가 없었다고 지젝은 평가하며, 그야말로 좌파는 실패했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입니다. 사실상 기득권층의 후위대라고 봐도 충분한 보수 우파들에 대해서 이런 좌파들의 실패는 결국에는 포퓰리즘까지 머리를 들이밀게 되는 이유가 된게 아닌가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서 어딘가에 기부를 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커피로 인해 착취당하는 산지의 농부들이나 노동자들을 또 도덕적으로 잊게 되는 것은 곳곳에 교묘한 장치들이 있어서 이런 것들은 개인들의 힘만으로는 본질을 찾게 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은데요. 결국에는 많은 곳에서 진보와 좌파가 생활정치에서 멀어진 것과 생활속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전염성이 높은 자본주의화에 따른 결과가 아닌가 떠올려봅니다.

뒤이어 나오는 4장의 열린 토론에서도 지젝의 놀라울 만한 사고는 이어지는데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한 것을 재정립하고 꽤 열린 자세로 질문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현재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어떤 상태에 있으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해답을 이 책을 통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이상하게 지젝의 이 책은 고 노회찬 의원이 눈앞에 떠올랐는데요. 그래서 우리의 진보는 더 불행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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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31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31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터라이프 2018-10-31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녀님 비밀댓글로 남기신 것에 저도 비공개로 글을 썼는데요. 혹시 보이지 않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소녀N 2018-10-3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댓글 감사드립니다. 물론 장문의 댓글이 날아간 것은 아쉽지만요^^;; 베터라이프님 글을 읽다보니, 확실히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의 현위치를 공고히한 데에는 2차세계대전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확신이 드네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중국의 높은 성장률이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추천해주신 카지노 자본주의는 꼭 한번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 ♥

베터라이프 2018-10-31 21:46   좋아요 0 | URL
제가 쓴 댓글을 보니 서평 2탄이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 약간 더 참고로 말씀드리면 브레턴우즈 체제도 현재 달러 지위에 적지않은 공헌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전후체제에 1차대전 종전 이후에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주저했던 반면에 2차대전 이후에는 서유럽의 기반 붕괴로 미국이 나설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었나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루즈벨트는 이미 종전 처리중에 소련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으므로 냉전 시기의 소련 봉쇄가 결과적으로는 자유 진영의 생존을 지켜낸 것만은 분명해보이네요. 미국의 패권에 대한 우수리로 얻은 결과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 세계를 유지시킨 것만은 다행이리고 생각해요. 물론 CIA의 무수한 검은 공작들이 소위 반미 국가들에게 행해진 그늘도 있지만요 ㅜ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 따위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치적 안온주의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소녀님의 질문을 통해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