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강명구 옮김 / 나무연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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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에 세상을 떠난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앨버트 O. 허시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학자들의 삶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를테면 당시 유수의 학문 전당이었던 베를린, 소르본, 런던 정경대에서 수학하고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으며, 2차대전에도 참전 그리고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일하면서 마셜플랜에 참여하고, 남미 콜롬비아 정부의 경제 고문을 지내기도 했는데요. 시대의 뒤틀림과 파편에 스스로 몸을 던져 경험하고 중요한 직무를 맡으며 적지 않은 경험이 그가 일률적인 경제학자 수준에 그치지 않고 학문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적인 합리성을 찾으려고 했던 열망에 이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뭔가 약간의 가당찮은 헌사처럼 느껴지지만 구글과 위키 등에서 허시먼의 삶을 찾아보니, 거대한 전환기가 몇차례나 중첩된 시기를 살아갔던 한 사람의 삶의 족적이 보여졌습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지난 2015년에 출간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로 그의 이름이 알려졌는데요. 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의 이론서에서 허시먼의 글이 인용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허시먼이 지난 1970년에 출간된 ‘Exit, Voice, Loyalty’를 번역 출간한 것인데요. 아마도 1980년대에 판권 개념이 전무했던 것과 같은 당시의 관행으로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열심히 구글링을 해봤지만 딱히 자료가 나오지는 않아서 혹시 제가 잘못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으셨음 좋겠군요.

허시먼은 본디 경제학을 먼저 오래 연구했던 것처럼, 일종의 경제학을 배경으로 시장과 기업조직, 국가의 퇴보에 대한 소비자 및 시민 등의 이탈과 항의 그리고 충성도 개념과 이후의 이탈과 항의의 최적 조합과 이와 관련된 도표와 부록 등을 책 후반부에 제공하고 있는데요. 이를 제가 단순히 해석한다면 인간이 경제활동에 따른 시장과 그러한 이들의 조직된 기업 및 사회와 이것이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된 국가의 정부 부문의 퇴보와 후퇴에 대한 개개인들이 할 수 있는 즉, 그에 따른 인간 합리성 측면의 ‘공인된 권리’ 에 대한 분석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대체로 여기에 논의된 부분들이 경제와 정치 및 사회학 개념들을 차용하고 통합해 독창적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바탕은 경제학에의 원리이고 글의 전반은 시장과 기업을 통한 해석이 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시먼이 이와 같은 글을 쓰게 된 큰 이유는 아마도 “완전 경쟁 담론의 가장 큰 문제점인 경쟁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했고, 대다수의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이러한 밀도 높은 경쟁이 인간 사회의 내부 모순까지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자유 시장의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의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곤 있지만, “이러한 기업들간의 자유 경쟁 마저도 이들 기업이나 행위자들이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는데요. 사실상 기업의 내부 모순이나 수많은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이유들로 기업 자체가 시장에 최선을 다하지 못할 수도 있고 이것은 인간이 항상 합리적일 수는 없다는 측면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자유 시장의 원리가 만능이지 못하다는 것에서 출발해 비합리적이고 비생산적인 이유로 각각의 퇴보가 발생한다면 그것들에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소비자나 시민들이 이탈과 항의라는 수단으로 그 조직을 건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허시먼은 이에 시장에 국한된 측면의 기업에서 이러한 예민한 소비자와 덜민감한 소비자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설명하며, 마찬가지로 사회나 정부로 눈을 돌리면 이탈과 항의가 서로 동시에 발생하면 해당 부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허시먼은 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어느 정도의 무관심이 정치 체제에 보완적인 이점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안정성과 유연성에 기여함으로써 위기 상황에 대비해 정치적 자원을 ‘예비적 축적’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정치학에 있어서 전통적인 이론을 저자는 언급하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정체체제에서 날로 기득권의 이익이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정치적 불신을 시민들에게 심어주며, 현실에서의 전반적인 정치 불신을 방조하는 것은 사실상 여러 사례를 보더라도 현실 민주주의에서는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견고한 양당제 하에서 정치 모순이 발생하거나 한쪽의 부류가 반동을 초래하더라도 시민의 힘으로 혁명이 나오기는 힘들다고 짤막하게 인용하지만, 이 부분도 사실 얼마전에 시민의 혁명으로 정권을 퇴출시킨 경험이 있지요. 몇몇 이론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순수한 불합리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결국 허시먼이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이탈과 항의라는 수단이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의 상이함이 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한다.’ 말로서 우리나라를 등지고 이민과 같은 수단으로 떠나는 이탈은 남아있는 내부 시민들의 공공재와 공공익의 측면에서는 내부 변화와 개선을 일으키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분석으로 항상 만능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겠죠. 그와 관련해 거대 패권을 갖고 있는 미국이 내부의 시민들이 보다 작은 충성도를 갖고 있는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국내에서 허시먼의 이 책이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탈과 항의에 관한 한계가 한국사회에서는 매우 명확했던지라 그것을 실증적으로 분석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부분적으로는 미흡하고 실망스런 주장도 있긴 했지만(경제학과 관련된 인용해서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들과 같은 것), 대체로 합리적인 면으로 이해되는 허시먼의 특유의 통찰력이 엿보이는 글었습니다. 완벽한 도덕주의 입장에 있는 학자들은 허시먼의 이런 주장에 크게 반대할 수도 있지만 경제와 정치 및 사회의 면밀한 연구를 진행해 왔거나, 각각의 학문적 구조와 현실 연구에 어느 정도 도가 튼 학자들은 심지어 자신의 연구에 도움이 되기까지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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