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 - 제1차 세계대전부터 트럼프까지
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런시먼은 영국 내에 촉망받는 정치학자인데요. 주로 정치사상, 국가론, 대표제론과 특히 현대 정치문제와 민주주의론에 대한 것을 주제로 현재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정치적 이슈와 관련된 글을 여러 언론을 통해 기고하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런시먼이 이 글을 읽으면서 그가 토크빌과 관련된 연구를 오래 해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제는 The Confidence Trap : A History of Democracy in Crisis from World War 1 to the Present 로 지난 2013년 첫 출간 되었는데요. 국내에는 최근에 후마니타스에서 번역 출간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세계 제1차대전이 종전한 1918년부터 2008년 뉴욕발 세계 금융 위기까지의 시기로 저자가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여기는 각각의 분기점을 주제로 분석과 그 과정의 여파를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는데요. 덧붙여서 개정판에 수록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포퓰리즘 시대를 책의 마지막에 담고 있습니다. 책의 수록된 시기는 1918년, 1933년, 1947년, 1962년, 1974년, 1989년, 2008년 까지입니다. 각각의 해당하는 연도를 보시면 몇몇의 굵직한 사건들이 떠오르실겁니다.

런시먼은 여기 글을 통해 분석하는 민주주의는 인류 사회의 정치 체제로서 다른 체제들과 달리 무언가 뛰어나서가 아니며, 오히려 과거 기록된 전제 정치체제와 달리 그 행동력에 있어 굼뜨고, 나약한 일면이 있으며, 국가의 소리가 통일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데요. 토크빌은 ‘다수의 폭정’을 경고하면서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정치학의 일반적 진실 (만주주의가 진보하고 있다는 진실) 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개인적 믿음을 (시민들이)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잘 유지된다”고 밝혔는데요. 민주주의 자체가 내부의 불안 요인 즉, 시민의 불만 등과 같은 체제의 양면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역사상 다른 체제들과 달리 오히려 안정성을 더 갖고 있었던 측면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소제목들로서의 각각의 연도에는 그 당시의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불리울 만큼의 사건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민주주의 체제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몰락과 인류 멸망을 불어일으킬 뻔했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저자 역시 “현대 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의 순간” 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만, 뿐만 아니라 이 때의 미국 민주주의는 민주 정치의 합리성과 비합리성 사이의 아슬아슬함에서 기인하다고 런시먼은 덧붙이고 있습니다. 즉, 당시 케네디와 케네디 행정부가 민주 정부인 자신들이 국민들에게 나약하게 보일 수 없어서 겉으로는 강경하게 뒤로는 대화와 온건한 수단을 사용하며 ,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와 함께 그 와중에서도 당시 선거와 여론에 민감해 했다는 것은 민주 정치가 어떤 일면을 갖고 있는지, 민주주의가 어떤 식으로 위기에서 불안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마도 생생한 증거일 겁니다. 물론 런시먼 자체가 이런 해석들을 토대로 민주주의 자체를 불신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1989년의 동유럽이 붕괴되고, 베를린 장벽과 철의 장막이 무너지면서 공산주의의 붕괴로 인한 민주주의의 승리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대로 “역사의 종언”이 아니라 그 시기에 민주주의는 자제하지 못했고, 사회 전반에 있어서 소련의 붕괴를 통해 민주주의 자체를 돌아보지 못한 하이에크와 같은 사례들을 우리들에게 또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체로 런시먼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명확합니다. 시기별로 있었던 각 정부들의 부패, 커넥션, 뇌물 수수 등과 칠레의 합법정부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한 미국과 닉슨의 원터게이트 사건 등은 민주주의가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것은 케넌이 말한대로 “민주국가들이 어리석고 무모할 수 있다”는 평가와 뷰캐넌이 말한 “서구 민주사회의 현대인은 자기 운명에 대한 충분한 통제력을 만들어 내거나 정부의 제약을, 정부가 진정한 홉스적 주권자로 변형되지 못하게끔 하는 제약을 가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의 진정한 답이 앞으로 우리들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지향점을 나타낸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후 2008년의 전세계에 파급을 미친 뉴욕 발 금융위기가 결정적으로는 민주주의 체제에 악영향을 끼쳤고, 5개월여 임기를 남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대규모의 금융 지원에 대한 문서에 싸인을 함으로서 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와 시민의 삶에 강하게 작용했던 신자유주의를 사망에 이르게 하면서 그것에 국한되지 않고 민주주의와 결합된 자유시장의 ‘자유로운 손” 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해보지 않은 것은 불행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금융 세계화를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반성 없이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막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요. 런시먼은 이에 “2008년에 전개된 위기는 민주주의의 실패였다”고 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 대전과 냉전에 따른 민주주의의 경직화, 핵위기, 베트남전 개입, 냉전의 붕괴에 따른 여파, 세계 금융 위기 등을 순차적으로 서술하며 그 시기가 내포하는 의미를 비교적 실증적으로 저자는 잘 분석하고 있습니다. 다만, 2001년 이후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제한적인 전쟁’과 ‘대테러 전쟁’에 대한 평가가 부족한 것은 뭔가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입니다. “조지 W. 부시가 민주주의 체제의 확대를 통해 평화를 추구했다”는 짤막한 ‘민주평화론’ 과 더불어 언급되는 것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부족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의 거대한 포퓰리즘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기존의 체제를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이 인기 영합주의가 앞으로 민주주의에 어떠한 영향으로 다가올지는 오늘날 서유럽의 상황과 더불어 다같이 지켜봐야 되는 문제일텐데요. 결국 이 포퓰리즘에 맞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지는 토크빌과 홉스가 지적한대로 각자의 시민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죠.

책에 인용된 주를 합쳐 480여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은 모두의 인내심을 요구할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들은 꽤나 이해를 크게 도우며 설득적이고, 각각의 시기를 개괄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사실상 런시먼은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않았나 글 말미에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얼마간의 집중을 내내 요구하는 책이지만 읽는 분들께는 충분한 생각꺼리들을 안겨주는 고마운 글이 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