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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모델, 미국 - 미국의 인종법은 어떻게 나치에 영향을 미쳤는가
제임스 Q. 위트먼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예일대 법대 교수이자 비교법과 법역사 분야에 권위를 갖고 있는 제임스 Q. 위트먼은 의외로 유럽사와 관련된 석사 학위를 갖고 있는데요. 비교법과 역사는 예상외로 서로간에 궁합이 잘 맞는 분야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 책은 주를 제외한 분량이 약 170여 페이지인데요. 번역이 잘되어 있어서 그런지 제법 글이 술술 읽혀졌는데요. 내용도 흥미로워서 딱히 나무랄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1936년과 1937년 등에 당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나치 독일의 히틀러를 “담대한 실험”에 나선 인물로 평가하고 심지어 1939년 까지는 미국 정부와 언론이 히틀러를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화는 1945년 2차대전 종전에도 얼마간 독일에 대한 모호한 태도가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자유 세계의 수호자를 자임해 세계의 파시즘을 제거했지만 이면에는 복잡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즉 미국과 나치 독일간의 관계가 애초에 적대적이었거나 선과 악의 대결론적 입장의 모습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서로의 위치에 대해 소극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순수한 백인이 주도하는 완벽하고 거대한 국가로서의 미국”을 인정합니다. 그러한 인식에서 1930년대 초에 ‘백인 남성 국가’ 미국을 연구하면서 자신들이 써먹을 수 있는 미국의 인종법을 국내에 법률 전문가를 통해 상세히 살펴봅니다. 그런 연유에는 아리안인의 순수한 인종적 우월성과 독일 민족만의 국가를 위해 소위 암적인 존재로 여겼던 유럽의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배제하고 제거하기 위한 초석으로 흑인과 아시아인을 법률로서 상당히 성공적으로 분리하고 있던 미국의 사례를 주목하게 된 것이죠. 이 점을 저자인 위트먼은 “1930년대 초 나치 저술가들이 ‘니그로 문제’와 자신들의 ‘유대인 문제’에서 명백히 양국은 유사성을 느꼈고”, 당시 미국은 “20세기 초에 흉악한 인종주의 법률을 보유했다”고 자평하며, 이러한 히틀러의 독일이 미국의 인종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역사 자체를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독알 인종주의자들은 미국이 혼혈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니그로, 유대인, 남유럽인, 잡종, 황인종, 그외 규정하기도 어려운 밀크커피색 인종들로 구성된 민족 혼합의 맹습”에 처해 있으며, 이를 “미국의 우수한 혈통” 들이 나서서 막아내지 않으면 멸망할 확률이 너무 높다는 식으로 묘사했는데요. 여기 글에는 수차례 ‘니그로’와 ‘잡종’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흑인에 대한 인종적 멸칭인 공개된 글에 써도 되는지 조금 우려가 되긴 했는데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표현이라고 이해는 됩니다만 그만큼 당시의 미국 사회의 차별적인 인종주의 분리 정책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위기는 1957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리틀록 고교에 연방 육군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기까지 아마도 예상기로는 사회 곳곳에 흑인들과 유색인종에 대한 이러한 차별과 제외가 당연시 되고 있었던 듯 합니다. 영국이 근대 시기까지 ‘고학력의 백인 남성들에게 1인 2투표권’을 부여한 것처럼 미국 역시 ‘백인 남성들만의 주도권’을 부여하고 조직적이고 공식적인 인종 차별을 당시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일본 제국이 조선인과 중국인에게 2등 국민으로 취급한 것이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하면서 흑인들을 버러지 취급한 것에서 당시 시대의 화두가 얼마나 인종적인 편견과 인식에 젖어 있었는지 알 수 있더군요.
더욱이 미국은 “뚜렷하게 백인의 외모를 지닌 잡종 마저 니그로로 간주하는 경우처럼 특정 사례에서 인간적인 가혹함이 초래되더라도 백인과 흑인의 철저한 사회적 인종 분리는 미국에서 필수인 것으로 드러났고, 일반 미국 여성이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과 혼인할 시에 즉각적으로 시민권을 박탈하는 등의 차별이 문헌으로 나오는데요. 다만 이와 관련해서 저자의 주장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요. 히틀러의 독일은 중앙이 나서서 직접적으로 유대인 말살에 나섰지만 미국은 “직접적으로는 인종주의를 내새우지 않았다” 고 밝히며, 미국과 독일의 인종주의의 과정과 결말이 사뭇 다르다고 언급합니다. 물론 그 결과는 자명하게 다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1930년대에 나치가 미국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은 지금 느끼는 인상과는 달리 이상하지 않다” 고 고백하는 것은 크게는 학자적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1691년 버지니아 주에서 미국 최초로 인종주의 혼혈 금지법을 채택한 이후로 노예 해방 전 링컨이 “미국의 유일한 희망은 흑인을 다른데로 이주시키는 것 뿐” 이라고 드러내고, 남북전쟁 이후 재건기에 흑인에 대한 사회 및 법적인 처우 문제와 해결 방안이 남부 주를 비롯한 여러 연방 주에서 지지부진 한 것은, 인종 문제에 대한 실제적인 해결의지를 떠나서 이러한 상황을 크게 바꾸지 않겠다는 당시 미국 정치권과 다수의 미국인들의 용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1850년대에 미국으로 밀려드는 아일랜드 이주민들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 유입을 제한할 의도로 미국 당국이 문맹 테스트를 실시한 것은 교묘하면서도 기만적인 행위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이러한 분위기가 미국 사회의 주류였다고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멸종”을 목적으로 삼았던 히틀러가 이처럼 미국의 법체계와 사회체제 연구에 인력을 투입하며 몰입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미국의 직간접적인 인종주의적 방침과 그 사례가 나치 독일이 주목하게 될 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바로 이 점을 오늘날 미국인들이 결코 부인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역사의 선명성이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이를 부정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이성적이고 양심적인 저자의 토로라고 여길만 하겠죠.
끝으로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미국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법조항의 비교 열거 보다도 당시의 미국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4세기의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인류가 그동안 처해온 중세의 계급적 억압에서 휴머니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줬지만, 이후 프랑스 혁명과 양차대전을 거쳐 냉전시기를 지나서야 지구의 전세계인들이 각자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여정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