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의 경제학
헨리 조지 지음, 전강수 옮김 / 돌베개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절망적인 가난속에서 살았지만 독서와 토론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지식을 꾸준히 습득해 링컨 대통령 암살 당시 인쇄공으로 근무하던 신문사에 투고한 글이 명성을 얻으며 그후 기자로 발탁된 이 글의 저자 헨리 조지는 자력으로 경제학자 반열에 올라 수많은 사상가들과 학자,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요. 위키 백과 등에 올라와 있는 그의 일대를 조금 찾아보니 제가 익히 들었던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삶과 많은 부분이 겹쳤습니다. 지극히 책을 좋아한 것이나, 정규 학력을 밟지 못했지만 평생 스스로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높은 위치에, 큰 명성을 얻은 것은 두 사람의 공통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개해 드릴 이 책은 1883년 초판이 발행되었는데요. 책의 역자는 이 책과 ‘진보와 빈곤’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를 헨리 조지의 3대 역작이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러 매체에서 인용하고 있는 헨리 조지의 ‘토지 가치세’, ‘토지 공개념’은 ‘조지주의’라고 일컫는 경제학 분야의 한 사조로 받아들여졌고, 많은 경제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에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아주 적극적인 ‘헨리 조지 추종자’가 된 것은 매우 유명하죠. 이 책과 관련하여 국내엔 지난 2013년 대구가톨릭대 교수인 전강수 선생의 번역으로 최초 국역 출판이 되었습니다. 출판사인 돌베개 측은 적잖이 감명을 받았는지 따로 국내 최초 번역이라는 띠를 붙여서 판매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여러 신문이나, 시사 잡지에 소개된 것을 얼핏 본 기억도 나는군요.

총 22장으로 구분되어 당시 서유럽과 미국의 정치 및 사회, 경제 시스템과 이론에 대한 헨리 조지 특유의 논리적 간결함과 명료함이 특색으로 특히 번역도 제법 잘 되어 있어서 이런 류의 글치고는 술술 읽혀지기도 합니다. 남북전쟁 이후 짧은 호황기와 그로 인한 미국의 개척이 진행중인 시기의 토지에 대한 조지의 개념을 오늘날 우리의 부동산 개념과 연계해 받아들이면 꽤 흥미로운 독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유럽의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런던과 파리의 소유주들이 자신들의 땅에 방목을 하기 위해 그 일대에 거주하고 있던 하층민들을 미국으로 보낸 배경’으로 그와 같은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미국에서는 미연에 방지하고자 토지 가치세와 같은 토지를 공공 소유로 하자는 이론을 창안합니다. 글의 후반부에 ‘진보와 빈곤’에서 주장하는 토지에 대한 그의 생각이 여기에도 살짝 언급되어 있는데요. 중간에 ‘간접세가 정부에는 해악과 다름없다’고 밝힌 바와 같이 아주 직접적인 과세로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 증대와 가난한자들에 대한 소용되는 혜택으로 귀결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도 ‘부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뜯어내는 것’에는 선을 그었는데요. 그렇지만 “우리가 놀라운 진보를 이룩했음에도, 아무런 잘못도 없이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이 아직도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요. 우리의 수치다”라고 말하면서 전체적으로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기본권이고, 사회 경제적 생산 수단에 대한 재해석과 앞선 토지 소유 개념에 대한 혁신적 관념, 또한 정부의 단순한 일처리를 포함한 단순화에 달려 있고 이것을 좀 더 확대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고르고 비교적 평등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이라고 여기는 듯 했습니다.

개인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노동과 타인의 증여, 강탈’ 밖에 없다고 밝힌 것과 그 중요한 노동의 문제와 관련하여 남북 전쟁 시기 이전의 노예제를 설명하면서 제도상에서 노예제는 미국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각 개인들의 노동 상태로 봤을 때 엄밀히 노예 시스템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그는 밝히고 있습니다.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가난한 사람들도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소비재와 같은 것도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는 노동과 관련된 수입에 대한 현실화가 있어야 하며, 당시의 로스차일드가와 비슷한 미국의 부자들이 어떤 식으로 부를 쌓았는지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자들은 ‘사법부아 의회로 상대로 조직적인 로비를 벌이는데, 부자들의 기대 뿐만 아니라 두려움에도 의존한다’는 측면에 부유한 자들에게 노동이 마땅히 합리적인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여기고 있는데요. ‘일을 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과 한가로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너무나 큰 격차가 존재할 경우, 보통 사람들 눈에는 양자가 서로 다른 존재질서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히는 것에는 당시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는 정의롭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많은 노동자들이 노예 상태에 있었다는 것으로 헨리 조지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성서를 인용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꽤 도덕적이고 이상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다만 성서에서 말하는 신자들의 천국의 도래로 현실 상황을 오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것으로 그의 이성적 균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산업의 변화는 사회 변화를 수반하기 마련이고 결국 정치적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산업 발전과 자본주의 시장의 초기 도입에서 시장 독점에 따른 문제인 부의 불평등이 심화 되는것에 원칙적으로 반대를 하지만, 개인의 자유적인 측면에서 ‘부의 취득에 한계를 둬서는 안된다는 입장’ 과 ‘부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뜯어내서는 안된다’ 것으로 다수가 일견 그를 오독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그가 완전히 사회주의를 신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사상은 전체적으로 부의 불평등 상태를 개선하고 부자나 가난한 이들과 상관없이 누구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고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고 정부가 이를 뒷받침하는 형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분명 진보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가 주장하는 바들은 거의 이성적이고 명료하며 설득력이 높고 특유의 균형감각이 엿보입니다. 헨리 조지를 의도적으로 오독하는 학자들이 제법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일부 의견들 특히 군과 관련된 인식과 같은 것들은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나 시스템 보다는 고유한 인간의 권리를 강조했고, 오늘날처럼 일부 국가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봤을 때 헨리 조지가 얼마나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었는지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간단히 제가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전강수 선생의 번역도 나무랄데가 없었습니다. 뭔가 매일 읽어도 즐거운 기분을 들게 하는 건 이 책이 아닐까하는 아주 개인적인 소감이 문득 들었습니다. 부족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