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 - 다시 쓰는 <내셔널리즘과 젠더>
우에노 지즈코 지음, 이선이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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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쿄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2011년 도쿄대 명예교수에 이름을 올린 우에노 지즈코 교수의 글입니다. 지난 1998년 ‘내셔널리즘과 젠더’라는 글을 2012년에 일본에서 몇몇의 논문을 추가하고 수정하여 증보판으로 출간한 것을 2014년 국문 번역을 통해 한국에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 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되었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를 통해 국내에 출판된 것을 인지하고 꼭 구입해서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개인적으로 이제서야 실현하게 되었네요.

전체적으로 글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은 일본인 특유의 세밀한 사고체계와 원리원칙주의가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한국인이라면 저자의 이론적 체계와 주장을 백퍼센트 동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의 도입이라 볼 수 있는 1장에서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여성계와 여성주의 행동에 대한 고찰과 이를 젠더사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체계를 뒤에 나오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 여성으로서 민족과 국민을 초월하여)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오늘날 한일협정에 의해 일본 정부는 위안부 배상과 관련하여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한국정부도 동조하고 있다. 1991년 위안부 생존자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없었다면 피해자들의 숨죽임에 동조하는 한국, 일본 양국 정부의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테고, 위안부 강제 동원과 관련하여 군의 개입에 대한 실효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의 살육이 히틀러의 싸인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는 등가적인 측면에서 비판”은 하고 있는데요. 위안부의 핵심적인 문제는 한국인, 한국 민족, 조선 여성의 순결 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공창 제도를 유지하고 있던 일본 제국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인격을 가진 창부들을 오히려 원칙적으로 차별하는 것’으로 ‘역사/수정주의’의 다카하시 데쓰야는 전후에 태어난 일본인들은 전쟁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 이전의 세대는 다르다’고 언급한 반면, 우에노 지즈코는 국가가 벌인 과오에 개인들이 어떤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으로 보였습니다.

즉, 젠더를 해석하며 상반된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을 다루고 있으며, 여성사적인 측면에서 상당 부분으로 위안부를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다만 역사 문제와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이미 1925년에 일본은 추업협정, 추업조약, 부녀자매매금지 조약에 가입. 1932년에 ILO 29호 강제노동조약에도 가맹함으로서, 위안부 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공차제 자체가 이미 조약 위반”이라고 사료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국제연맹과 워싱턴 군축을 탈퇴한 당시 일본 제국에게 이러한 국제법 위반이 대수롭지도 않았겠지만, 명백하게 이러한 위안부 문제가 법률상 위법이었으며 지금도 군에 의한 개입 가능성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개인 의사로서 자원에 의한 여성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들이 거의 강제적인 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점, 당시 일본 제국에 복무해 위안소를 경험한 생존해 있는 수많은 일본인들이 한명도 증언하지 않는 것은 앵무새 같은 일본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떨어지는 지 보여주는 증거라 볼 수 있겠는데요. 이처럼 저자는 위에 해당하는 사료들을 적지 않게 책에 인용하고 있습니다.

앞 전에 제가 이 책의 소감을 잠시 밝힌 바대로 위안부 문제를 민족과 국적의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을 저자는 반대하고 있고 인류 역사의 평등한 여성의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민족주의 안에서 자신과 민족을 동일시해 ‘우리’와 ‘그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집단적 동일시는 강자의 민족주의든 약자의 민족주의든 우리를 함정으로 안내한다”고 이처럼 주장하는데요. 여기서 맹점은 현재까지도 일본 정부는 매번 사과는 커녕 지난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무력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역사적 수정주의를 거의 국가의 정견으로 채택으로 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는 점, 동시에 2차대전 당시에 거대한 민족주의의 실패 국가가 과거의 과오를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과거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민족, 탈국가를 주장하며 시민 개인의 입장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몰이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민간 차원의 위안부 국민 기금과 다음 세대의 재심을 완곡하게 기대하는 것과 같은 주장은 일본 정치권의 일방적인 잘못된 인식을 더 부채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학자로서 오랫동안 대학에 몸담은 학자라면 독일과 일본의 사례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는 것이고, 최근의 일본 정치권의 역사 수정주의(재심)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이뤄져 왔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저폭탄 만으로 자기들이 피해자 인양 받아들이고 단 한번도 진정으로 허위뿐인 대동아공영으로 희생된 2천만의 아시아인들에 대한 사과조차 없는 이 엄혹한 상황의 본질을 가리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사실상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인들이 일본인들과 진정한 협력과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가 큰 이유인 것이죠.

끝으로 어쩌면 저자의 분야가 젠더와 여성 문제이고 진정한 젠더 평등을 위한 활동에 매진했던 것만큼 아마도 다른 일본인 학자와는 다른 입장의 상이함이 글에서 느껴졌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원칙적으로는 동등하게 일본인 위안부에 대한 입장도 중요할 텐데요.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황국 신민인 일본인과 제2국민인 조선인과 중국인의 처지가 같은 것은 아니었겠죠.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서 민족과 식민주의를 바탕으로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위안부 문제 뿐만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에 합장된 한국인 부역자 문제와 그 궤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2차대전에 일제에 의해 강제 노역과 부역을 당한 많은 조선인들이 대부분 ‘자발적인 의사’로 해석하는 것은 인식상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저자 또한 진지하게 고려해 봤으면 하는 생각을 글 말미에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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