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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의 나라 - 천황제와 침략 전쟁의 심상지리
정창석 지음 / 이학사 / 2014년 2월
평점 :
일본 근대사를 중심으로한 일본 사상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동덕여대 일본어학과 교수인 정창석 선생의 이 책은 일본의 근대에서 왜곡 변질되어 온 일본의 일왕제와 파시즘적 침략 행위의 정당성 완성이라는 측면의 일본 국체에 대한 다각도의 비판적 분석을 담았습니다. 매번 이런 일본과 관련된 과거 역사에 대한 글들을 볼때마다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운데요. 식민사관이 아직도 뿌리깊게 박혀있는 우리 역사학계에서 오늘날의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역사 인식과 맞물려 과거를 제대로 된 종지부를 남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여기 글의 전체적인 구조는 매튜 페리가 이끄는 미국 흑선이 일본을 강제 개항시키고 이후 1868년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면서 그에 따라 일본의 통치구조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에 일왕에 대한 여러가지 왜곡되고 과도한 의미부여와 상징화를 거쳐 그것이 또 어떻게 일본 제국주의의 모순된 이론화가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과 대응하는 많은 자료들을 통해 밝혀내고 있습니다. 일목요연하게 단순화를 시킬 수는 없지만 저자는 “나아가 일왕에 대한 일본인의 가치관을 이민족에 대한 시혜 의식으로 포장하여 ‘황국신민화’ 로 대표되는 동화 정책과 민족 말살 정책을 전개하는 등 가능한 모든 측면에서 합리화, 은폐, 변명, 인격분열, 책임전가, 허세, 비겁함, 잔인성, 결벽증, 교언영색, 황당무계, 아전인수, 곡학아세, 자가당착, 견가부회 등을 되풀이한다.” 고 보기에 따라 다소 격앙되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위 문장의 어조는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다수의 일본인들에게 대입하여 이해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나 싶은데요. 제가 이렇게 언급하면 배타적 민족주의자 내지는 인종주의자로 비판하실수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당시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실패한 민족주의 국가라는 인식을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앞의 수단들이 어떻게 그러한 결과에 기여했는지 명백히 파악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 글 후반부에서는 일왕과 더불어 일본 제국이 급격한 군사 파시즘적 시스템으로 왜곡되고, 대외적으로는 ‘대동아공영’과 특유의 아시아에 대한 시혜의식을 강조하지만 일본인들 자신을 제외한 아시안들을 이등국민이라고 격하시키고, 당시 조선을 철저하게 병참기지화 시켜 일본에 대한, 일본을 위한 몰수지배적 체제를 더욱더 강화시켰습니다. 얼마간 도로 건설하고 항만이나 사회 기반 시설을 적절히 당시 근대에 맞게끔 처리한 것이 식민사관에 근거해 ‘근대 이전의 조선’을 근대화시킨 공로를 일본이 갖고 있다는 식의 얄팍한 주장은 후에 누적되고 쌓여온 조선에 대한 포괄적인 착취 지배와 자원의 방출, 인력에 대한 강제적 차출 등 후자의 폐해가 말할 수 없이 극심하여 더군다나 조선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진 결과가 어떠했는지 조금이라도 살펴보면 명백하게 나오는 것이죠.
이런 것을 초래한 일본 제국주의의 일왕제가 근대의 초입에서 서양에 대한 열등감으로 비롯된 소위 초극의 의지로 만들어졌던 어쨌든 간에 그 시기의 일본의 체제에 대한 환상이 사상의 왜곡과 반지식으로 귀결되어 결국에는 오늘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맞은 핵폭탄 만으로도 자신들이 피해국가로 자임하는 것은 일왕제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왜곡되고 은혜된 상황 인식과 1945년 도쿄전범재판에서 일왕을 징치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분리시킨 결과 오늘날의 일본 국민들이 역사를 제대로 보지 않는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일왕이 법적으로 또는 군사적으로 아무런 댓가를 치루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밑에서 통치를 받았던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국가가 어떠한 짓을 했는지 크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물론 저자는 이러한 것을 침략주의적 인식인 ‘팔굉일우’와 ‘황도주의’로 내내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보다도 혼네와 다테마에로 설명되는 일본인들의 정신 의식이 권력층과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응을 요구해왔고 그것을 선이라 믿었다는 해석이 개인적으로는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2차대전에 2천만이 넘는 아시아인들의 희생을 초래한 일본 제국주의의 ‘선명한 악’은 어떠한 식으로든 해석하기 힘든 것이며 그것은 오로지 일본 제국주의와 일왕으로 비롯되는 국체를 보존하기 위한 댓가로 보기에는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파시즘의 본질이 악의 일상성과 특성을 같이 한다고 해도 인간이 또 다른 인간들을 그런 지옥으로 이끄는 것에 대한 효과적인 이해를 도울 길은 아무리 고민해봐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한나 아렌트나 E.H. 카가 언급한 전체주의에 대한 인식을 고찰해봐도 당시 일제와 일본인들의 역할 관계 내지는 행위는 가늠하기가 힘들군요.
그러한 측면에서 5장과 6장이 일본인들의 철저한 자기변명에 대한 여러가지 자료를 소개하고 있고 반성없는 역사 문제에 대해서 또한 밝히고 있습니다. 일전에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피해 당사국이 이해와 용서를 할 때까지 독일은 끊임없이 사죄해야 한다.” 고 밝혔듯이 과거사 문제를 보는 독일과 지금의 일본은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 역사문제는 지난 일본의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를 무력화 하려는 시도를 고이즈미와 아베가 했듯이 일본 정치와 일본인들의 인식 체계의 밑바닥까지 들어가봐도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간극의 차가 아직도 존재합니다. 저자는 참으로 마땅하고 올바른 주장들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저자도 인정하듯이 일본이란 국가는 그냥 단순한 이웃국가 내지는 바다 건너 국가 정도로 취급하는개 오히려 속편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의 이런 결론이 일견 대책 없어 보이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도 일본 내부의 ‘혐한론’과 독도문제 정한론에 대한 후쿠자와 유키치가 재조명 받는 것과 소세키 같은 문인들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옹호를 배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것을 더이상 어떻게 차이를 좁혀 나가야하는지에 대해 자문하기 어려운 것이죠. 끝으로 이 책이 일본에서 번역 출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인들도 이 책을 널리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