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의 사상공간
오사와 마사치 지음, 서동주.권희주.홍윤표 옮김 / 어문학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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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오사이 마사치 교수는 교토대학교 대학원 인문, 환경학연구과 교수로서, 본디 사회학을 전공한 사회학자인데요. 이 ‘전후 일본의 사상공간’ 이라는 글을 읽고 나서 문득 드는 생각은 오사이 마사치 교수는 각각의 개념으로서 내셔널리즘과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두 가치의 연계성에도 큰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회학자라기 보다는 인문학자와 같은 접근 방법 등을 취하고 있기도 한데요. 예를들면 시대별 문학 작품 등을 통해 사상의 분석을 하고 있다던지, 철학과 역사 등을 또 같이 아우르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일본의 ‘전후’를 오직 하나의 시선으로만 분석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전후라는 개념은 그만큼 중요하고, 시간이 흘렀기에 가치의 망각이 진행되기도 하였으나 아직까지도 여러 측면에서 ‘전후’의 개념은 아직도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글의 처음에서 마사치 교수는 오늘날 많은 일본인들은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고, 종군 위안부 기술을 사제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일본인이라는 공동성으로 다시 동일시 하는 것이며, 그래서 타국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종군 위안부의 능욕 사실 자체를 말소하고 싶은 일종의 욕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역사에서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성공적인 개항을 통해 열강의 반열에 올랐던 과거의 국가, 즉 ‘천황의 국가’ 가 그러한 파렴치한 짓을 했다는 것을 전면 부정함으로서 그것을 통해 일본인 본연의 동일성을 회복하겠다는 뜻으로 보였는데요. 과거의 역사는 적극적으로 망각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것과 동시에 부정을 통해 일본의 본질을 찾겠다는 것은 저로서는 너무나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현실과 수많은 극우적 국가주의자들이 일본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매커니즘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적 합리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적 가치 토대에 비슷하게 어우러져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일견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런 일본의 욕구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면, ‘영속패전론’의 시라이 사토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의 다카하시 데쓰야와 같은 학자들이 줄기차게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전후를 ‘근대의 초극’과 같은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 시키는 모든 개념들로부터 일본이 과거에 벌인 전쟁 범죄와 2천만에 이르는 아시아인들의 희생을 제대로 직시하기 위한 노력들이 얼마나 일본 내에서 미미한지 깨닫게 해주는 배경 내지는 조건 상황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사와 마사치 교수의 이 책은 이러한 비상식적인 분위기가 근저에 자리한 그 조건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전후 미군이 일본의 행정을 주도하고 일왕제를 존속시킴으로서 일본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 종국에는 미국에게 선의를 바라고 미국 자체를 옳다고 믿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외형적으로는 경제적 번영을 이뤘지만 내면에는 수많은 결여가 존재해 사상적인 측면에서 거대하게 불완전한 일본이 되었다고 마사치 교수는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의 ‘전후’는 역사의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해 일종의 허위로 자신들의 국체를 보호하는 셈인데요. 그 국체는 ‘천황제’와 일본 그 자체일겁니다.

일본의 ‘천황’은 마루야마 마사오가 지적한 대로, 일본의 천황제 국가와는 달리 서양의 국가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수하고 중립적이고 그 입장에서 구체적인 제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천황제’는 그 존재감 만으로 일본의 국체라 여겨지고 있으며, 또한 종교적인 의미로도 해석되고 있어서 우리가 정치학에서 배우는 ‘입헌군주제’와는 아주 상이한 본질을 갖고 있는 것이죠. ‘천황’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감추려고 함으로써 더 나아가 일본의 정체성에 경제적 성공으로 바탕으로 한 오늘날의 국가적 위치만을 수렴해 자신들이 과거 일본 제국이 벌인 최악의 행적들을 지우고 잘못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 기저에 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내면의 결핍 등으로 인한 옴 진리교 사건이라든지 일본의 1970년대를 ‘결여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문제들이 국민들이 과거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그것의 실체가 드러날때 마다 허위로 가리는 것이 오늘날의 일본이 ‘결여된’ 채로 있게 한 근본적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완독하고 나서 뒷부분의 역자 후기를 보며 일본이 그들의 전후를 대하는 태도와 접근이 왜 이 지경이 되었냐는 배경으로서의 조건으로 나쓰메 소세키라든지, 다자이 오사무,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시대 문학과 여러 사상의 배경 등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이 책은 일종의 지성학적이고 문학적인 측면의 일본 전후 세계에 대한 분석 글이지만 이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는 냉정하게 볼 때 긍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또한 전체적인 글에서 ‘허위’와 ‘결여’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등장하는데요. 그래서 ‘근대의 초극’ 같은 개념으로 일본이 정상국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어불성설인 것 같습니다. 저자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분명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침략전쟁에 관한 과거의 치욕이자 부정적인 자기상인 종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 국가 자체의 성적인 투영으로 바라보고 있는 점이나, 종전후 미국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였으나 그 자체는 비민주주의적이었고, 자본주의의 이행과 결과도 뭔가 일본의 전통적인 가치와 사상을 얼마간 배제했다는 식으로 여기고 있더군요. 특히 이 글의 여러 문장들 중에 ‘전쟁이 전후에 배제된다, 패전이라는 사실을 억압한다’는 표현은 절로 소름끼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저자 자신의 주장으로 삽입된 문구는 아니지만 이것이 제가 오독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일본 학계나 일본 학자들에게서 종종 느껴지는 명백한 귀기가 이런 종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좀 더 깨닫기 위해서는 정말 역사를 겸허하고 진실되게 바라보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나서야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확장해 볼 수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끝내는 역시 일본과 일본인들은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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