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일본 - 사이에서 근대의 폭력을 생각한다 아이아 총서 7
요네타니 마사후미 지음, 조은미 옮김 / 그린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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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를 졸업하고 도쿄외국어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인 요네타니 마사후미씨는 과거 일본 제국 시기의 식민지 경영과 중국과 한국에 자행했던 근대 폭력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여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 포럼’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그런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글로서 지난날 아시아 지역에 무수한 고통을 안겼던 일본 제국주의와 그 연원의 사상에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요. 저는 꽤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역사를 통한 진정한 화해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고, 그 역사가 정치 논리에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1854년 2월, 일본은 흑선이라 불리우는 중무장한 함대에 의해 강제로 개항하게 되는데요.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이 끝나고 자신들이 ‘문명화’라 부르는 서구식의 개화를 도입하고 확대하게 됩니다. 그 이전의 일본이나 바다 건너 조선, 청나라는 각각의 정체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왕조 국가로 통치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통적인 중국 중심의 조공 통치 체제로 당시에 조선이 종속되어 있다는 식으로 일본측에서는 조선의 자주적 통치를 폄하했는데요. 사실 명백한 것은 3국이 서로 적절하게 관여하지 않고 각자 스스로의 정치를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봉건주의의 왕조 국가라는 한계와 특수성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주되게 밝히고 있는 1854년을 기점으로 일본은 소위 ‘문명화’가 되었고, 아직도 문을 닫아 걸고 있는 청나라와 조선은 일본에 비해 미개하다는 식의 시각은 소름끼치게도 유럽이 아프리카를 보는 관점과 동일해 보였습니다. 저는 서양의 자연 과학을 바탕으로 사회 전반에 큰 전환을 갖고 온 산업혁명과 그 이후의 기술 문명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문명이라는 것은 비교하여 미개하다 그렇지 않다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봉건적인 국가 시스템을 유지했지만 동시에 고유의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킨 것이죠. 왕조 문명 자체를 격하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처음에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흥아론’에서 나중에는 ‘탈아론’으로 급격히 변질되는데요. 그것은 여기에 저자도 언급하지만 당시 조선의 김옥균이 일으킨 갑신정변이 청의 개입으로 인해 무위로 끝나고 그것은 곧 청과 조선이 함께 개화 문명이 되기는 어려운 것이며 그로인해 일본이 독자적으로 청과 조선을 개화시키고, 결국에는 서구의 개입과 침입으로부터 아시아를 쟁취하는 것으로 일본은 아시아의 한 국가이기 보다는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대한 나라로 스스로 격상시킵니다. 이처럼 일본이 주도하는 강제적 시스템에 조선과 중국 대륙 일부가 편입되지만 실상은 역사가 보여주는 그대로 입니다. 일본 제국 시절 조선인들은 2등 국민의 처지가 아니었습니까. 만주 진출의 교두보였으며, 각종 수탈과 매우 계획적인 병참기지화 전략이 조선의 실제 모습이었죠.

이러한 일본의 사상의 근원에는 조선과 중국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했던 그 자신이 불평등조약에 벗어나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었으며, 그것에 그치지 않고 ‘정한론’을 들고 나와 당시 전통적인 조공 질서를 개변시켜 새로운 국제 질서를 창출하려는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습니다. 조선을 비롯한 오키나와와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은 것은 병합했던 지역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럽의 제국주의를 그대로 답습해 자신들도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위치에 있는 아시아 유일의 문명국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했습니다. 동아시에 대한 유럽의 진출은 더욱더 받아들이기 어려웠겠죠. 이것은 선점의 문제로 그렇게 폭력과 차별, 억압을 통해 주변 민족을 지배하게 됩니다.

앞의 인식은 1903년 오사카에서 열린 1903년 오사카 내국권업박람회의 학술인류관에 아이누인, 타이완 선주민, 류큐인, 조선인, 중국인, 인도인, 자바인을 재현한 주거 내지 풍속, 관습과 함께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을 전시 및 진열하여 관객의 시선을 끌고자 했던 ‘인류관 사건’이 글에 인용됨으로 나타는데요. 어처구니 없게도 당시 이 일본인들은 주변 민족들을 아프리카 원주민과 다를바 없이 여겼던 것 같습니다. 유키치의 ‘탈아론’이 어떤 의미인지 저는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즉, 일본이 주변 민족에게 혜택이 되었다던 근대화와 개화는 결국 폭력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요네타니 마사후미 교수의 일관된 목소리입니다.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가 협동해 잘 살아보자는 것은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았고, 진실은 일본을 위해 너희가 마땅히 희생하라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국 시절의 일본의 통치는 철저했고, 가혹했으며 ‘대동아공영’이라는 미명하에 2천만명이 넘는 아시아인들을 희생시킨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모두가 다 아는 이 사실을 일본만 인정하지 않는 꽤 ‘불유쾌한 시기’를 우리는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끝으로 ‘일본의 근대’가 어떠했는지 사상사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아마도 학자의 양심이라고 생각됩니다. 난징대학살과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부정하는 일본 학자들이 많은데요.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요네타니 마사후미 교수 같은 연구는 ‘진실의 접근’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시각과 어조는 더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글들의 출판이 앞으로도 더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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