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체에 대한 권리
에티엔 발리바르 지음, 진태원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근래 프랑스 학계를 비롯한 세계 정치사회학 분야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는 자크 랑시에르와 더불어 민주주의와 시민권에 관한 이해를 독자들에게 비교적 명확히 전달하고 있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최근 글 ‘정치체에 대한 권리’를 손에 들었습니다. 발리바르의 이번 글은 몇 가지 시론을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민주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입장으로 볼 수 있겠는데요. 외형상 각각 의 주제들이 상이해보이지만 그 속에는 일관된 주제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일찍이 미셸 투르니에는 “미국의 독립혁명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인민 주권에 입각해 봉건주의적 현실을 붕괴시키고 시민들의 손으로 공화주의 혁명을 이룩해 낸 전통을 다른 나라는 가져보지 못한 전통을 프랑스는 갖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벤담의 공리주의를 기초로 존 로크와 장 자크 루소의 시민과 정부간의 일종의 계약론을 바탕으로 한 ‘근본적인 공화주의’가 인간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은 부인할 수 없겠죠. 그것보다도 시민이 부여한 주권을 바탕으로 정당한 권력을 획득한 정부가 어떤 식으로 시민들의 공익에 부합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프랑스주의적 공화에 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치 운동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입니다. 발리바르는 과거 이웃 나라에서는 파시즘이 유럽의 악화를 불러일으켰지만, 프랑스는 그러한 부분에서 정치적 전통과 환경으로 인해 프랑스 내에서 파시즘에 대한 우려는 미약했지만 그것이 결국 현실로 나타난 것에 대해 프랑스의 학자로서 숨길수 없는 복잡한 심정이 글에서 묻어나고 있는데요. 근래의 독일에서 발생되는 과거 나치즘에 대한 향수는 젊은 계층들이 현재의 부패와 억압의 상태에서 일종의 탈출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전반적으로 유럽에 난민과 비유럽계 이민이 확대되면서 기존의 유럽인들에게 여러 차원의 불안감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일겁니다.

그래서 저자는 프랑스 내의 알제리계 시민들에 대한 사회적 해석을 시도하고 오늘날 민족적으로 비 프랑스인들의 이민과 사회내의 계층적 뿌리내림과 관련하여 비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르펜의 국민전선,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 식민지 시절부터 현재까지 프랑스와 알제리의 진지하고 이성적인 성찰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러한 질문은 결국 프랑스 뿐만 유럽의 시민들이 유럽에 유입된 비유럽 시민들의 복합적인 빚을 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권과 시민 민주주의를 강조했던 유럽인들이라면 이들에게 마땅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단순히 복지국가라는 평면적 개념보다 ‘국민사회국가’로 개념화하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인간 사회의 현실적인 통일이 아니며, 인간 집단들 사이의 제도적 매개들의 설립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공간 (우리가 동일한 재화를 소비하고 동일한 세력에 복종하는 공간) 에 대한 매체적 표상을 동반한 가운데 경향적으로 통합되어 가는 시장위에서 개인들이 서로 순수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라는 독창적인 분석을 내리고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민 불복종’의 개념이 민주주의적 시민권이 대항적 권력에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측면에서 파생된 셰계화에 대한 모순과 그로 인한 비이성적이고 파시즘적 사회 분위기에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결국 비타협적 인종주의적으로 해석된 원주민-비원주민 개념을 극복시키고 ‘국민국가’의 한 국민들로써 사회적 시민권이 이미 사회적 국가에서 기본권으로 널리 제도화 되고 있고 따라서 국민들이 지닌 사회적 기본권을 함부로 축소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단순히 이민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사회권을 축소하거나 제거하겠다는 주장은 시민들이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믿고 있습니다. 저도 여기에 동의하고 이민자들이 단순히 상대적으로 선진화된 사회 시스템에 편입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직간접적으로 그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애초에 이민자들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그것에 기반한 이론들은 곳곳에 비이성적인 논리 모순과 인종주의적 선입견을 내포하고 있어 이러한 움직임 자체가 과거로 회귀하는 행위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한정된 자원을 공유해야한다는 다소 억울한 주장을 기존의 시민들이 가질 수도 있으나 어차피 시민의 주권으로 위임받은 정부가 그것을 바탕으로 정당한 행정력을 발휘해야만 한다고 받아들여진다면 마땅히 정부가 자원과 여러 사회적 보장책을 다시 구축하는데 힘쓰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민주주의적 기초를 확대 재생산 하는 것이 우리 시민들의 마땅한 역할이고 이것에 편견과 배타성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역사적으로도 히틀러의 나치가 오늘날 곳곳에 발언되는 왜곡된 주의주장들로 600만의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낸 것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아마도 르펜의 국민전선과 같은 정치적 입장들이 궁극에는 이러한 패착을 다시 가져오지 않을까하는 발리바르의 사심없는 우려에 주권과 공화주의, 그로 인한 시민 민주주의 전체를 다시 통찰해보고 거기에서 해결책을 찾아 보고자 하는 이론적 과정들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저는 발리바르의 여러 비판에도 그가 프랑스와 프랑스의 민주주의에 여실히 드러나는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사회를 모순과 억압으로부터 재구축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끊임없이 있어 왔고,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글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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