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고고학 한국고고학회 학술총서 5
한국고고학회 엮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을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책 주제는 흥미로웠지만 이 책을 펴낸 한국 고고학회에서 쓴 <한국 고고학 강의>는 매우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한국 고고학 강의> 같은 경우 "XX를 발견했다. YY라고 생각한다" 식의 판단 명제만 나열되어 있을 뿐,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에 대한 근거 명제는 전혀 없어 책의 흥미도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2012년 제 36회 한국고고학 전국대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모아 만들어진 책이다.

제일 첫번째 장은 "한국 농업기술의 발전과정과 연구성과"로, 그 동안의 연구 성과들을 매우 간략하게 요약해 놓았다. 2번째 장은 "농업 연구와 식물자료"로, 3장 "식물유체로 본 시대별 작물조성의 변천"과 함께 이 책에서 제일 흥미로운 부분들 중 하나이다. 이 장은 식물 종들로 어떤 고고학적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서술한 장으로, 유전학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장이다. 3번째 장인 "식물유체로 본 시대별 작물조성의 변천"에서는 종실유체의 분석을 통해 각 시대별 한국의 농업 환경이 어떠했는지를 그리고 있다. 이 장에서 제일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한국에서는 밤과 복숭아가 상당히 흔한 식품이었다는 사실이다. 청동기 시대부터 고대 유구들에서 밤과 복숭아가 상당수 출토되고 있다. 밤과 복숭아가 각각 고대한국의 주요한 견과류, 과실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요즘엔 수많은 과실들에게 밀려 한국의 주요과실에서 복숭아가 차지하는 위상이 좀 하락했다는 느낌이 들지만...)

4장 <농기구와 농경>은 말그대로 고대에 어떤 농기구를 쓰였을지를 추적해본다. 이 부분은 농기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 최소한 괭이, 따비, 쟁기, 호미 등이 뭔지는 알아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세대 중에는 구분 못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5장 "경작유구를 통해 본 경지이용방식의 변천연구"도 역시 이 책에서 흥미로운 논문 중 하나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지이용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나를 추적해나가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랑밭 조성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본인 같이 농사일에는 무지한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6장 "토양을 활용한 고대 농경 복원"은 토양을 분석해 과거 한반도의 기후가 어떠했는지, 어떤 종이 자라기 좋았는지 등을 분석한다. 이 장에서 관심이 갔던 부분은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등에 자주 보이는, 경지들의 폐기 원인을 지력 상실 때문이라고 본 가설을 반박한 부분이다. 실제로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수전층에서 상당량의 인(phosphorus)가 검출되고 있으며 청동기 시대부터 한반도에 윤작, 교차경작, 휴경, 화경 등 지력회복 수단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근거를 들며 지력상실설을 반박하고 있다. (사실 지력상실설은 폐기된 경지들을 발견할 때마다 제일 먼저 제기되는 가설이다. 이 가설이 매번 제일 먼저 제기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제일 쉽게 떠오릴 수 있는 경지 폐기 원인이라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들은 다양한 원인들이 있을지 모르는 경지 폐기 원인을 하나로 압축함으로써 다양한 탐구 가능성을 좁히는 원인 중 하나이다.)

7장 "한반도 선사, 고대 동물 사육의 역사와 그 의미"는 소, 돼지, 말, 개를 중심으로 한반도에 그 동물들이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용도로 사육되었는지를 추적해 본다. 식물이나 토양과 달리 동물을 다루는 장인 만큼 해부학적 접근도 다루었으면 했지만 그런 접근은 보이지 않아 다소 아쉬움이 남는 장이다.

 

 

이 책은 친절한 설명 덕분에 농업에 무지한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농기구 부분은 제외) 무엇보다 과거 한국의 농업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매우 유익했다. 농업은 국가의 가장 근본이 되는 산업이지만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아직 부족한 편이다. 무엇보다 과거 산업혁명 이전의 사회는 농업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농업의 비중이 컸다. 농업을 이해하지 않으면 과거 인류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은 단순히 과거 한국 농업의 유적들을 살펴보는 것을 넘어, 과거 한국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담겨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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