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 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 대산세계문학총서 15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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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출근시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비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페소아의 시집을 펼쳤다.
평생 동안 한권의 책 만을 낸 시인, 무역통신문 번역가라는 눈에 띄지 않은 직업으로 살다가 사라져간 시인, 70여개의 이명으로 시를 쓴 시인, 고독한 삶을 살았지만 고독을 사랑했던 시인.
그의 시는 차 소리와 빗소리, 그리고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고독한, 이 도시에 가장 어울리는 시집이었다. 페소아는 고독을 노래한 시가 많기에, 그의 시를 읽고 우울하거나 불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우울함과 불편함은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 가식 하나 걸치지 않은 순수한 우리의 본질과 마주쳤기에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중으로 멀어져 혼자가 되고 싶을 때, 나 자신의 내면에 침잠되고 싶을 때, 페소아의 시는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변인이 되어줄 것이다.

아우토프시코그라피아

시인은 흉내내는 자.
너무도 완벽하게 흉내 내서
고통까지 흉내 내기에 이른다
정말로 느끼는 고통까지도.

그가 쓴 걸 읽는 이들은,
읽힌 고통 속에서 제대로 느낀다.
그가 느꼈던 두 가지가 아닌,
그들이 못 가진 한 가지만을.

그리고 그렇게 궤도를 따라 돈다.
우리의 이성을 즐겁게 하면서,
마음이라 부르는
이 태엽 기차가.

나의 두 눈 사이로 엿보고 있는
저 시선은 누구의 것인가?
내가 보는 걸 의식할 때,
내가 생각하는 동안
계속 보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나의 슬픈 걸음들 말고,
내가 나 자신과 발걸음을
맞추는 이 현실은
어느 길들을 따라가는가?

가끔은 내 방의
어스름 속에, 내가
내 영혼에서조차
희박하게 존재할 때,
우주는 내 안에서
다른 의미를 지닌다 -
그것은 사물에 대한 나의 생각을
스스로 의식하면서 윤곽이
선명해지는 얼룩.

촛불이 켜진다면
그리고 바깥 -
어느 거리 어떤 전등불에
켜져 있는지 모르겠는 -
희미한 불빛조차 없다면
나는 침침한 욕망을 가지리
온 세상 그리고 인생에서
나의 현재 인생인
어두운 이 순간 이외에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기를.

존재의 망각으로
영원히 흘러가는
강이 범람하는 순간,
의미라고는 전무한
황무지들과 아무것에게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
사이의 신비로운 공간.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형이상학적으로.


- <미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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