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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책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김연수 작가의 책 <청춘의 문장+>를 읽다가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김연수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라길래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페소아의 대표작 <불안의 책>을 빌렸다. 몇 페이지 안 넘겼지만 난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나를 공명(共鳴)시키는 문장들을 찾았다고... 도서관에 빌린 책을 반납하고 곧바로 책을 구입하였다. 이 책의 문장들을 소유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이 다음날 도착하자, 나는 곧바로 말없이 책을 들고 책장을 넘겼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가 나에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격으로 다가왔다. 페소아의 문장에는 진한 커피 같은 고독과 깊은 슬픔이 담겨있다. 이 문장들을 한번에 쭉 읽기는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10년 전 <데미안>을 읽은 이후로 문장이 내 마음을 감싸주는 기분은 처음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문장들을 마치 주기적으로 티 타임을 가지듯, 천천히 읽고 있다. 평소에는 왠만큼 두꺼운 책도 2~3일이면 다 읽지만 이 책만큼은 다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이 책은 고독을 느끼고 싶은 이, 그리고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고독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페소아의 이 책은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대변인으로써,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는 그들 대신 울어주는 시인으로써 다가올 것이다.
인간 영혼의 한평생은 고작 그림자 속 움직임에 불과하다. 우리는 의식의 여명 속에 살면서 우리가 누구인지, 혹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저마다 허영을 품고 살며, 실수를 하는데 그 실수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공연의 막간에 잠깐 진행되는 그 무엇이며, 가끔 어떤 문을 통해 기껏해야 무대배경에 불과한 것을 훔쳐본다. 세상은 밤에 들려오는 목소리처럼 혼란스럽다.
(중략)
나는 여기저기를 뒤지고 있지만,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고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 같다. 아무도 없는데 우리는 혼자 숨바꼭질을 한다. 어딘가에 이 모두를 초월하는 속임수가 있고, 우리가 단지 들을 수만 있는 가변적인 신성이 존재한다. 그래, 이 글들에 담긴 초라한 시간들, 작은 위안과 환상, 목적지로 가는 길을 잃은 커다란 희망들, 닫힌 방 같은 상처, 어떤 목소리들, 깊은 피로, 쓰이지 않은 복음서를 나는 다시 한번 읽어본다. 우리 모두에게는 허영이 있다. 그 허영 때문에 우리와 똑같은 영혼을 가진 타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나의 허영심은 몇 장의 종이, 몇 구절의 글, 몇 가지 의구심이다.
언제나 똑같고 변화 없는 내 삶을 지속하는 무기력, 결코 변화 없으리라는 사실을 덮고 있는 표면에 붙은 먼지나 티끌처럼 남아 있는 이 무기력을 나는 일종의 위생관념의 결여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몸을 씻듯 운명도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듯 삶도 갈아줘야 한다. 먹고 자는 일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리해야 하고, 그것을 우리는 위생이라고 부른다. 스스로 위생적이지 못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 둔감하게 늘 똑같은 상태로 사는 이유가 그것을 원해서도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어 순응했기 때문도 아니고, 지성에 내재된 역설로 인해 자의식이 무뎌졌기 때문인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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