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7
자크 프레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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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 떠오르는 시.
절망은 우리의 일상 속에,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으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손짓한다. 그는 달콤하게 속삭인다. 좋아했던 사람들과의 추억, 지금은 떠나간 사람들의 소식을 들려주겠다고, 혹은 지금 내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그의 속삭임에 그의 옆에 앉을 때마다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게 된다. 일상이 흑백영화 같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버린다. 하지만 나는 그 속삭임이 가져올 결과를 알면서도 매번 그의 달콤한 속삭임에 마음이 설렌다. 이번만은 그의 말이 사실 일 것이라고 믿으면서...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작은 광장의 벤치에
어떤 사람이 앉아
사람이 지나가면 부른다
그는 외알 안경과 낡은 회색 양복 차림으로
가느다란 잎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다
그리고 사람이 지나가면 부른다
아니 그냥 손짓을 해보인다

(중략)

그가 당신에게 손짓을 할 터이니
당신은 그의 곁에 가 앉을 수밖에
그러면 그는 당신을 쳐다보고 미소 짓고
당신은 참담하게 괴로워지고
그 사람은 계속 웃기만 하고
당신도 똑같은 미소로 웃음 짓고
미소를 지을수록 당신의 고통은
더욱 참담해지고
고통이 더할수록
더욱 어쩔 수 없이 웃게 되고

(중략)

당신은 거기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당신은 안다 당신은 안다
이제 다시는 저 아이들처럼
놀 수 없음을
이제 다시는 저 행인들처럼
조용히 지나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이제 다시는 저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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