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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선의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
이소영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5월
평점 :
우리는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내 손에 못 박은 채로 살아갈 수는 없다. 연민은 쉽게 지치고 분노는 금세 목적지를 잃는다. 이 책은 취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와 공감의 순간들을 그러모은 것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거요.
이 고요함, 산딸기와 우유, 저녁놀에 물든 당신들의 얼굴,
수레 안에 곤히 잠든 미카엘, 류트를 타는 요프,
그리고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를 기억할 테요.
신선한 우유가 철펄 넘치는 그릇처럼 내 두 손에 조심스럽게
간직할 것이오.
이 기억은 나에게 커다란 충만함 그 자체가 될 것이요.
이 책을 읽는 그대가 책장을 넘기다 어느 구절에선가 자기 삶에 누군가가 새겨 넣었던 혹은 누군가의 삶에 자신이 선물해주었던 그런 반짝이는 한순간을 복기할 수 있다면 기쁘겠다. p9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만 고유한 의미를 갖는, 내가 살아 있음을 충만히 느끼게 해준 어떤 선율 어떤 장면, 어떤 냄새나 맛을. 생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찾아들 때 그 기억이 수호천사처럼 그대에게 깃들어 다음 걸음을 떼어놓게 해주기를 빈다. p62
어느 일본 애니메이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가시 많은 고슴도치는 가까워지고 싶어 다가가다 상대를 찌르고 자기도 마음에 피를 흘린다고, 성장한다는 것은 찌르지 않을 안전거리를 가늠해 유지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가시 많은 자는 상처 주지(받지) 않기 위해 평생 데면데면 평생선을 유지 해야 하는 걸까. 마음 닫고 입 꼭 다물어야 할까. 그렇지 않음을 아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렇게 쓴다 하여 달라지지 않으리란 것 또한 안다. 내일과 모레 어제와 그거께 그랬듯이 엎어져 눈물을 터트릴지도 모른다. 질리게 만들어 자책하고, 반복 되어 마음 부서지고, 그러고도 다시 웃으며 마음을 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쯤엔 주름진 얼굴의 할머니가 되어 있더라도 세상에 머무는 동안 서로 사랑하는 삶이 나에게 허락되기를 기도한다. p151
어두운 터널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깨닫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 터널이야말로 찬란했음을. 그리움에 사로잡혀 뒤돌아보던 우리 머리 위로 반짝이는 순간들이 하늘의 별처럼 가득했었다는 사실을. 이 역시 훗날 또 다른 그리움으로 남을 것임을.
나는 안다. 끝이라 생각해온 어느 지점은 끝이 아니다. 거기에 빛나는 것들이 새로이 채워 넣어질 것이다. 두근거리며 기다릴 무엇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은 시기에도 우린 저마다 아름다운 시절을 하나 더 통과하는 중일 수 있다.
어쩌면 오늘도 그럴지 모른다. p241
별것 아닌 선의
새로 나온 신간을 살펴보다가 눈길이 멈춰선 제목,
아니 이 책은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 온 듯 하다.
어둠이 찾아온 시간,
낯선곳에서 길을 잃고 두려워 하는 내게 누군가 다가와
소리없이 다가와 내 갈 길을 밝게 비춰주고 있는 것 같은 그림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두고두고 고마워 할꺼야 하는 마음과 함께...
착한척...
모태신앙인 나는 주일이면 제일 깨끗한 옷을 찾아 입고
예배시간을 마치고도 온종일 교회에서 보내며
나도 모르게 말씀 속에 또 율법 속에 살았던 아이였다.
그래서일까?
난 이 책을 읽던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꼭지가
'조금 질리게 하는 데가 있어도'이다.
늘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착한 척하느라 마음이 힘들었던
애어른 어린시절의 나와 마주했다.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까지 살아오게 해준 건 가족들 외에도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음을...
어느날 갑자기
내 든든한 버팀목이자 나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해 주시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 상실감과 허전함에 꽤 오래 힘들해 하던 시간이 있다.
추운 겨울날 나 혼자 세상에 남겨진 것 같은 두려움...
창밖에 하얀 눈만 내려도 펑펑 눈물이 나고
수강생이 따뜻할 때 드시라며
어머님이 손수 만드셨다는 만두를 내밀어도 눈물이 나고
심지어 교실에서 멀리 보이는 굴뚝의 연기만 봐도
왠일인지 눈물이 나곤 했다.
별것 아닌 선의...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수강생 중 하나가 검푸른 바다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산책을 하고 올테니 울고 싶은 만큼 여기서 실컷 울어도 좋다고...
파도 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동안 목놓아 서럽게 울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좀 편안해진 듯 했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이 마음이 힘들어도
홀시아버님의 밥상은 차려야했고
상을 치루자마자 직장으로 돌아가
강의를 해야만 했던...
그동안의 어쩔수없이 겪어내야 했던 힘들었던 마음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그제서야 파도소리속에 잦아들었던 것 같다.
얼마후 돌아온 D는 차 뒷자석에서 포장해온 유부초밥과
따뜻한 캔커피를 내밀었다.
그날의 음식은 고마움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그해 겨울 입시학원 교무실이 생각난다. 〈반짝반짝 작은 별 변주곡〉이 귓가에 맴돈다. 가난했던 나는 그 미소한 배려들이 얼마나 세심히 마련되었을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주는 대로 받아 가졌다. 받아 가진 자로서 무얼 하면 될지, 은혜 갚은 까치의 시점에서 골똘히 생각해본다. 생의 여정 중 맞닥뜨릴 고단한 이들에게 몸을 누일 열차 칸을 그때그때 내어놓는 것, 그리고 주는 대로 받아 갖는 누군가를 만나거든 나 또한 ‘그럼에도 재차 뭘 내미는’ 것. 이는 일생을 두고 행해야 할 작업이므로, 일단 오늘 밤엔 하늘의 별처럼 많은 고마움들 가운데 하나를 글로 옮겨 사람들과 나누기로 한다.”p26
'나 답게 살고 싶다'에 이어
베푸는 삶을 살고 싶어졌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은혜 갚은 까치의 시점에서 고민했던 시간...
"착한 척한다고 비난하면 달게 받겠다.
나는(도)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