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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 박준의 시를 읽는 마음
박준 지음 / 난다 / 2026년 8월
평점 :
시인 박준의 새 책을 선보인다. 2017년 출간한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이후 9년 만에 난다와 손을 잡고 만든 그의 세번째 산문집이기도 하다.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책의 제목은 이렇다. 이대원 작가의 1956년 작품 <창변>을 표지로 한 그림을 한참 들여다본다. 이대원 작가가 둘째딸을 모델로 그렸다는 그림을 내가 보고 있는데 그림이 또한 창 너머를 보고 있으니 ‘보기’를 계속 새로 보게 하는 그림이다.
프레임 너머 ‘박준의 시를 읽는 마음’이라는 부제에서 어떤 힌트를 얻는다. 박준 시인이 시를 읽어주는 책이겠구나, 그때 일렁이고 출렁이는 마음의 파장이 책장 곳곳에 고유의 시심으로 번져 있는 책이겠구나, 기쁨일 때도 있고 슬픔일 때도 있을 것이나 그 색색의 물듦에 아랑곳없다 하니 언제나 곧은 자세로 혼자 서 있는 시를 닮은 책이겠구나, 이 산문집은 그렇게 ‘시’라는 ‘정의’와 한 방향을 바라보는 책이겠구나, 그리하여 여전히 어렵기만 한 시에 물음을 던지는 방식으로 시라는 물음표에 가까이 다가가는 책이겠구나…… 어쩌면 이 책은 시인 박준의 ‘읽고 쓰는 일에 대한 변론’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매일 시를 읽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럴 수 없다. 드문일이지만 기쁨과 희열을 느낄 때 시집을 펼치는 법이 없다. 밖에 나가 잔을 들거나 집에서 울어야지. 다 울고 나서는 웃어야지, 웃다가 말고 춤을 춰야지.
흔한 일이지만 마음에 들불 같은 슬픔이나 화가 일어 날때 시의 문장과 낱말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울음을 참거나 아니면 울어야지. 아무데서나 울어야지. 희뿌옇도록.
시를 읽는 순간은 문득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오를 때와 닮았다. 예감도 기색도 계기도 없었는데 딱히 골똘했던 것도 아니 었는데 내가 어떻게 이 생각을 떠올렸지? 하고 스스로 기특함이 들 정도의 생각.
이를 위해서는 잦아 들어야 한다. 비어 있어야 한다. 내가 나인 것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내 삶 주변의 숱한 거짓 사이에서도 진실한 마음 하나가 까치발을 들고 서 있어야 한다.
세상 아름다움은 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잊고 사는 날이 많았을 뿐.
아름다움에 한 발 다가가거나 손을 뻗어 당겨오는 것.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힘은 언제나 나의 안녕으로부터 온다. p80~81
"세상에는 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요. 배고프다, 심심하다, 새 신발이 갖고 싶다, 왼쪽 무릎이 아프다 등 등. 반면 세상에는 아무리 말해도 다 표현되지 않는 마음도 있거든요. 배고프다가 아닌 보고프다, 심심하다가 아닌 외롭다, 새 신발이 아닌 네 마음이 갖고 싶다, 왼쪽 무릎이 아닌 나의 오늘이 아프다 같은. 말로는 다 표현되지 못하고 남은 나의 마음을 어떤 사람들은 노래로 부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시로 씁니다." p140~141
누구나 예민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음이든 태도든 한껏 날카롭게 돋아 끝을 사방으로 겨누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힘껏 타인을 찌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리 없습니다. 상대에게는 상처와 반감을 스스로에게는 후회와 자괴감을 남길 뿐 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는 마냥 필요한 예민도 있습니다. 날카로움의 방향을 내 쪽으로 두는 것입니다. 나의 자격을 의심하고 진심을 되묻는 일, 이것을 다른 말로 겸허라 부릅니다. 무겁고 중요한 질문일수록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는 쉽게 답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p195
'우리는 이미 모두 감옥을 한 채씩 삼킨 존재들이다. 생각이라는 감옥, 마음이라는 감옥. 우리는 이 감옥에서 자유롭제 못하고 어쩌면 앞으로도 내내 그럴 것이다. 다만 이 감옥에서 무엇을 더 들일지는 선택할 수 있다. 혐오와 두려움을 들이면 나는 혐오나 두려움과 함께 갇혀 살아갈 것이고, 사랑이나 다정을 들이면 나는 사랑으로 다정으로 살아갈 것이다. 사실 이 감옥의 문은 열려 있다. 내가 나가지 않을 뿐이다.' p231
생각해낼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완전한 것, 이상이라 합니다. 이처럼 이상은 동떨어진 별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나의 감각속에서 태어나고 머무는 것입니다. 다만 생활과 현실 탓에 가장자리로 밀려날 때가 많습니다. 눈길을 주자니 마음이 아프고 발길을 잇나니 여유가 없기에 자주 이상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립니다. 가끔은 작정을 하고 나의 이상이 살고 있는 후미진 거처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잠깐 있을 요량으로 쪼그려앉지 말고 편히 퍼더버리고 앉아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그동안 내가 즐거워하고 사랑했던 것들이 몰려들지도 모릅니다. p249
“네가 기뻐할 때마다 나는 마냥 기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네가 슬퍼할 때마다 나는 매번 슬퍼했습니다.”
한국현대시사 백여 년의 아름다운 면면,
시인 박준이 다함없는 마음으로 함께 읽자 한
67명의 시인, 그리고 68편의 시!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박준 시인의 신간이 나왔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등 시집도 산문집도 너무 좋았기에
신간 알림소식에 얼른 데려왔다.
지금 덕수궁에서 전시중인 이대원화가의 작품이 담긴 표지가
또 묘하게 시집을 좋아하던 단발머리소녀였던 시간으로 이끈다.
그동안 어렵기만했던 시...
시인이 이야기하는 '시는 무엇인가?!'를 읽다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명작가의 사재기와 기소소식에 씁쓸한 기분이 드는 아침이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행복의 정의처럼
동떨어진 별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나의 감각속에서 태어나고 머무는 행복을
곁에 두고 감사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좋은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