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장강명 지음 / 글항아리 / 2026년 3월
평점 :
크고 복잡한 사유를 구축하는 사상가, 학자, 작가들은 까다로운 설계를 마다 않고 두터운 분량의 원고를 써내곤 한다. 도스토옙스키나 제임스 조이스 등 오래된 작가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21세기 현재에도 서가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책의 상당수는 벽돌책이다.
책이 ‘두껍다’는 것은 분류의 한 가지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분량 역시 기준이 될 수 있다. 어떤 사유들은 그것이 펼쳐질 수 있는 드넓은 서식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고는 수평으로 널리 뻗어나가는 가운데 수직으로도 내달린다. 수평과 수직이 교차할 때 갖는 폭발력은 벽돌책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벽돌책들은 어휘나 이야기의 구조, 논리나 해석의 다면성, 이야기의 중층성, 주제에 대한 통달성, 견고한 연속성으로 대체 불가의 깊은 독서를 경험케 한다.
저자 장강명은 여러 해에 걸쳐 읽은 벽돌책 100권을 소개하면서 크고 튼실한 서가를 독자들 머릿속에 설치하는 일을 돕고자 한다. 우선 벽돌책의 기준을 700쪽으로 잡고, 이 책들을 일곱 유형으로 나눈다. 그리고 그 한 권 한 권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이 글들은 소설가로서의 필력이 발휘된 에세이 100편이라 할 수 있다. 혹은 논픽션 작가로서 사물/사태를 유형화하는 사고방식이나 비평 능력을 보여주는 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각 장의 도입부 글들을 읽으면 독자는 왜 얇은 책은 안 되고 벽돌책이어야만 하는가, 200쪽짜리 책 네 권은 왜 800쪽짜리 책 한 권과 같을 수 없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게다가 완독한 사람만이 거두는 내밀한 만족감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시도의 첫걸음을 떼면서 그 취향을 가능한 한 오래 품도록 독려한다. 이미 벽돌책을 꽤나 읽어본 독자라도 자기 경험을 되짚으며 머릿속 책장을 재배치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더라도 한번은 체험해봐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산다는 것 자체가 그렇지요.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무생물 상태로 돌아가는 게 우리 삶의 결론입니다. 삶의 진수는 무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덤으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p19~20
여기서는 벽돌책 완독이 다른 행위로 대체하기 어려운, 독자의 사고 체계에 가해지는 일종의 충격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700쪽이상인 책을 한 번이라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이후 모든 텍스트를 대하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경험이 있는 아마추어 러너가 달이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p21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합니다. 제게는 사람보다 책이 편해서, 책에 대한 책을 읽을 때면 마음이 배로 편안해집니다. 책 이야기하는 책 중에서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책 두 권은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와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입니다. p40~41
어쩌면 벽돌책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이 단순하고 명쾌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 인터넷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한 쪽짜리 지식은 대개 엉성하거나 의미가 훼손된 상태임을 아는 것. 지적으로 겸손해지고 신중해지는 것. p100
그럼에도 이 책은 '암흑의 핵심'에 있는 것을 언어로 최대한 붙잡고자 할 때 가장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목적의식이 없는 상태, 관점 자체가 없어지는 기분, 부식되어가는 자신에 대한 증오와 환멸, 그 상황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감. p127
책 속 인물들 중에는 제가 끝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좋아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혐오스럽기만 한 사람은 없더라고요. 한 개인뿐 아니라 그런 개인들의 집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감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쉽게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벽돌책 독서로 얻는 교훈이라 생각합니다. p206
벽돌책 독서가 치료제는 될 수 없을 지 몰라도 예방 백신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사실들, 어려운 질문들이 있습니다. AI와 숏폼 미디어들은 그런 문제들을 이해했다는 환상을 줍니다. 그런 서비스들 속에 있다보면 똑똑해지는 것 같고 세상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흐믓하지요. 정치에, 경제에, 국제정세에 훈수도 두고 싶어집니다. 버거운 벽돌책 독서는 그와 딴판입니다. 읽으면서 점점 혼란스러워집니다. 읽는 동안 사진도 찾거나 용어를 검색해야 할 일도 잦습니다. 물론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던 책의 내용을 완독 즈음 파악하게 된다면 성취감은 굉장하겠지요. 하지만 끝내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 역시 소중한 깨달음입니다. 난해한 책과 제대로 겨루고 그 앞에 무릎을 꿇어 보십시오. 이후에 보이는 풍경은 전과 같지 않을 겁니다. p337~338
4월은 잔인한 달...
T.S. 엘리엇의 시 한구절이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실습만 끝나면 신나서 날라 다닐꺼라 생각했었는데
넘 피곤하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
뭔가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나이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영 회복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두터운 시간을 통과한 독서는
지적 지구력과 지적 예의를 길러주며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타인에 대해서도
귀를 열게 만든다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그나마 나에게 안정을 주는 책...
책에서 들려주는 책얘기가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호라이즌
한국추리소설 걸작선 1,2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한낮의 우울
열정과 기질
나이듦에 관하여 등이 일단 이 책을 읽고
장바구니에 담아둔 벽돌책이다.
그동안 가볍고 빨리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선호했었지만
다시 뭔가 일을 꾸미기전까진(?) 벽돌책에 도전해 보려한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던 책의 내용을 완독 즈음 파악하게 된다면
성취감은 굉장하겠지요. 하지만 끝내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 역시 소중한 깨달음입니다.
난해한 책과 제대로 겨루고 그 앞에 무릎을 꿇어 보십시오.
이후에 보이는 풍경은 전과 같지 않을 겁니다.
또 다른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