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 - 도망친 곳에서 인생을 다시 짓다
패트릭 허치슨 지음, 유혜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2월
평점 :
미국에서 ‘MZ판 월든’으로 화제를 모으며 출간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른 에세이 『내 작은 숲속의 오두막으로(CABIN)』가 한국 독자를 찾았다. 지역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패트릭 허치슨은 중고직거래 사이트에서 숲속의 허름한 오두막 한 채를 산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책임지는 어른처럼 보이고 싶다는 마음과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였다.
누구의 시선도, 평가도 없는 숲속에서 그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모여 자신들만의 은신처를 완성해나간다. 직장과 연인, 집까지 매년 모든 것이 바뀌던 시기에 오두막은 변하지 않는 유일한 장소였고, 진흙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하던 따분한 삶에 대한 작은 저항이었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오두막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역시 조금씩 고쳐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채워야 하는가” 장강명 작가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남들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직접 쥐고 살아가는 감각과 안락함을 박차고 일어나는 무모한 용기를 보여준다. 키보드를 내려놓고 망치와 못으로 자신의 삶을 지어올린 청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금, 무엇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나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조금씩 팔아넘기기 시작했다. 집세와 건강보험료를 내야 했고, 컵라면 대신 제대로 된 음식을 사 먹고 싶었다. 폼은 나지만 돈은 안 되는 잡지 일을 포기하고 광고 문구를 쓰는 사무직으로 옮겨 갔다. 몇 년 전에 대학을 졸업 할 때만해도 세상을 누비며 아름다운 광인들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포부로 가득했던 내가 이제는 사무실에 틀어박혀 배관공을 대상으로 한 광고 이메일의 탬풀릿을 만들고 있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p17
처음에는 진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새로운 목표를 찾아내서 인생을 걸고 도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나? 아니면 마음가짐이 너무 안이했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몇 주, 몇 개월, 몇 년이 지나도록 삶의 목표를 찾지 못했고 점점 더 절박해졌다는 사실이다. 목표를 찾고 싶다는 열망은 서서히 곪아가더니 급기야 목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만 해도 된다는 발악으로 변했다. 병을 고칠 수 없다고? 그럼 증상을 완화할 방법을 찾으면 되잖아? 책임감처럼 보이는 것들을 찾아서 착시 효과를 노려야 했다. 내가 뭘하며 살고 있는지 머리 싸매고 고민할 동안 세상의 의눈을 속을 교묘한 장치가 필요했다. p18
오두막은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연습장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뭘 하는지 지켜보며 싫은 소리만 내뱉을 참견쟁이들과 멀찍이 떨어져 연습할 수 있었다. 오두막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안전한 장소였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듯이 춤추라는 말도 있지 않나. 우리는 비꼬는 말투로 “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라고 한마디 툭 던지는 사람 없이 집을 짓고 싶었다. 이 오두막에서는 절단면이 직선이 아니어도, 못이 구부러져도 괜찮았다. 바닥이 조금 기울어져도, 진입로가 단단하지 않아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전동공구로 재밌게 나무를 자르면 그만이었다. 드릴의 전원 스위치를 꾹 누르고 톱으로 판자를 잘라내면 충분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플러그를 꽂아야 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전기발사!"라고 외치면 발전기 작동법을 몰라도 발전기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뜻임을 다 알아들었다. 우리를 평가하는 관찰자들은 숲의 나무들뿐이었다. 반창고, 한 웅큼만 있으면 모든 문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배우다 만 기술을 터득하며 우리만의 요새를 건설하고 집을 짓는 법을 다시 배워나갈 터였다. p54~55
진짜로, 색상이 너무 많았다. 하나를 고르기도 어려운데 페인트 이름까지 고려해야 했다. 페인트 색상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어린시절 죽도록 싫어했던 사람을 떠올려 보자. 다음으로 그 사람의 이름을 내 아이에게 붙여준다고 상상해보라. 이름은 중요한 문제다. 회색 페인트 하나가 괜찮아 보였디만 이름이 '가을 안개'였다. 오두막이 가을 안개와 어울릴까? 종종 안개가 꼈지만 가을에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늘 안개가 끼거나, 매일이 가을어거나 하진 않았다. 내가 가을의 오두막을 가장 좋아하긴 했다. 특히 나무들의 색이 바뀔 때, 하지만 다른 계절이 좋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가을 안개색 견본을 쥔 채로 다른 색 페인트들을 둘러봤다. 새로운 색을 볼 때마다 오두막의 정체성과 충돌하는 실존적 고민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p243
공구를 정리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거기에 시선이 머물렀다. 다들 엉망진창이었다. 드릴은 외벽용 스테인으로 여기저기 얼룩져 있었고 긁히고 파인 자국이 가득했다. 원형 톱의 신세도 다르지 않았다. 검은색 고무 손잡이는 닳고 닳아 진회색으로 변했다. 온갖 모양, 크기, 색상의 나사도 상자에 반쯤 남은 채로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사 하나하나가 이곳을더 근사하게,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 작업들을 떠올리게 했다. 내게는 연장선 서너개, 다양한 드릴 비트와 부속으로 가즉한 상자 몇 개도 남아 있었다. 크롬과 강철과 고무 재질의 손잡이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온 공구 보관함은 꽃이 흘러넘치는 꽃다발처럼 보였다. 그안에 새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낡아 보이지도 않았다. 잘 길들어 손맛이 생긴 공구들로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p357
내게 위츠엔드의 오두막은 단순한 오두막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 됐다. 스승이자 순교자였으며, 몇 군데 멍은 들었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오두막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건축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무책임하게 오두막을 사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다른 꿈을 찾았을 수도 있겠다. 열기구 조종사나 유리공예가나 매 훈련사가 됐을지도 모른다. 꿈을 포기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직업과 일상에 안주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그 작은 오두막은 내 인생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p370
오늘도 꿈을 꿨다.
꿈을 잘 꾸는 타입은 아닌데
요즘 들어 지각을 하거나 하는 꿈을 꾸더니
오늘은 첫직장에 재취업을 하고
타부서와 협의되지 않은 업무로 허둥대는 꿈을 꾸었다.
너무 구체적이어서 깨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하게 되는...
지금까지 프로그래머로 또 컴퓨터강사로 지내왔던 시간을 뒤로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겪는 걱정과 불안이 꿈으로 나타났던 것 같은데
오늘 읽은 책,
'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으로를 읽으며 생각이 정리된 듯 하다.
전세계를 여행하며 여행작가로 살고 싶었던 저자.
그러나 현실은
집세와 건강보험료를 내야 했고,
컵라면 대신 제대로 된 음식을 사 먹고 싶었던 그는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갖게 된다.
그러다 20대 중반에 문득,
불안감을 느끼며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덜컥 허름한 오두막집 한 채를 사게 된다.
이 책은 아무런 기술이나 정보없이 수많은 실수와 또 예기치 않은 행복을 느끼며
친구들과 그 오두막집을 수리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집을 고치며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유쾌하게 그려지며
나도 그의 집을 함께 수리한 듯
이유없이 불안하던 마음을 괜찮다고 다독인다.
너도 잘 할 수 있다고...
뭔가 힘든 일을 만나면 고생을 끝내고 맥주 한 잔 이면 된다고....
실습생이 괜히 실습생이 아닌 것을...
그리고 난 이미 어른인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