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가스라이팅’으로 화제가 된 유튜버 ‘탱로그’의 첫 책. 조성진, 임윤찬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에 공연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만큼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클래식 왜 안 좋아하세요?》는 음악 교육가이자 클래식 스토리텔러 권태영(탱로그)이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하게만 느껴졌던 클래식에서 벗어나 쉽고, 재미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도록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클래식 연표·기본 용어 해설·감상법으로 배경지식을 익히고, 20인의 음악가와 그들의 대표곡을 통해 클래식의 큰 흐름을 잡는다.
마지막으로 감성·취향별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자기만의 취향까지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클래식은 소수의 엘리트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음악이다. 이 책이 ‘클래식이라는 세계’에 초청하는 초대장이 될 것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정치와 사회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계몽사상과 프랑스대혁명으로 인해 격동하고 있었습니다. 계몽이란 '깨우침'과 같은 의미로, 무지했던 시민들이 사회가 근대화 되면서 등장한 철학자들에 의해 불공평한 사회구조의 불합리함을 깨우치지 시작했죠. 그리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만 급급한 프랑스의 왕과 귀족들에게 쏠린 권력에 관해 분노하며 동등한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이에 왕과 귀족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순순히 권력을 나누어줄 리가 없었죠. 즉시 군인들을 동원하여 이들의 주장을 잠재우고자 했습니다.
베토벤은 유럽에 퍼져나간 계몽주의 사상을 온몸으로 흡수했습니다. 예술가로서 귀족들에게 굽히지 않는 절개와 음악을 신성하게 여기는 마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신념 등을 다져나갔죠. 그리고 이 태도와 사상을 음악에 오롯이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p25
<교향곡 1번>의 실패에 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는데 누군가는 오케스트라의 무능을 언급했고, 지휘자가 곡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죠. 심지어 글라주노프가 취한 상태로 지휘했을 것이라는 비평도 존재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초연이 완벽한 실패로 끝난 라흐마니노프는 큰 충격에 시달리며 슬럼프에 빠집니다. 이후 그는 3년 동안 단 하나의 음표도 그리지 못합니다. 우울감에 시달린 것은 물론 창작에 대한 자신감까지 완전히 상실했죠. 결국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을 뒤로한 채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명성을 높여 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작곡에 관한 불씨는 다시 피어올랐습니다. 그럼에도 첫 번째 교향곡의 처참한 실패에 대한 기억으로 새로운 음표를 그리는 데는 여전히 주저했죠. 라흐마니노프는 유명한 의사 니콜라이 달 박사를 찾아가 최면 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효과적인 심리 치료 덕분에 비로소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치유된 직후,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곡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입니다. 모스크바에서 초연을 들은 관중들의 반응은 매우 폭발적이었죠. 이를 계기로 라흐마니노프는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했고, 그 감사함을 담아 달 박사에게 이 곡을 헌정했습니다. p77
전체 악장의 흐름이 마치 영화처럼, 한 사람의 복잡한 서사의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래서 <피아노 협주곡 2번>만큼은 전 악장을 꼭 감상하길 권합니다. 감상할때는 라흐마니노프의 생애를 떠올리는 것도 좋고, 내가 가진 상처나 트라우마를 극복한 경험을 떠올리는 것도 깊이 있게 음악을 내면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p79
1830년 고별 연주회 이후, 쇼팽은 다시 오스트리아의 수도이자 음악의 도시 빈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받았던 찬사를 고이 기억하고 있었죠. 하지만 빈에 도착한 쇼팽은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낍니다. 같은 해 폴란드에서 러시아에 대항하는 '바르샤바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가 러시아와 정치적 동맹 관계에 있었기에 폴란드 출신 쇼팽을 향한 시선은 싸늘 했습니다. 쇼팽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했지만, '음악을 통해' 조국에 헌신 하라는 아버지의 듯에 따라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