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도 배웅도 없이 창비시선 516
박준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로 한국시 독자의 외연을 폭넓게 확장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박준의 세번째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일상의 소박한 순간을 투명한 언어로 포착하는 특유의 서정성으로 신동엽문학상, 박재삼문학상, 편운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잇달아 수상하며 문학성 또한 공고하게 입증해왔다. 7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은 그리움과 상실마저 아릿한 아름다움으로 그려내는 미덕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한층 깊어진 성찰과 더욱 섬세해진 시어로 전작들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살면서 놓쳐버린 것들, 어느새 잊힌 것들의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시대와 개인 모두와 조응하며 남다른 공감을 선사한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함께 앉아 조용히 등을 내어주는 시집”(추천사, 이제니)이라는 말처럼, 박준의 위로가 고요히 존재하는 삶들에 불어넣는 숨결이 어느 때보다 따뜻하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지각

나의 슬픔은 나무 밑에 있고

나의 미안은 호숫가에 있고

나의 잘못은 비탈길에 있다

나는 나무 밑에서 미안해하고

나는 호숫가에서 뉘우치며

나는 비탈에서 슬퍼한다

이르게 찾아오는 것은

한결같이 늦은 일이 된다

도화

볕 아래 나와 앉아

바탕을 칠한다

밝은색부터

겹쳐 그리는 너든

어두운 것이라면

먼저 대고 보는 나든

숨 하나만을

그으며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우리는

점점 뭉툭해지는

서로를 견뎌야 한다

귀로

듣고 싶은 답을

떠올리며 내가 물었다

생각대로 당신은

내가 바라던 답을 들려주었다

하나의 답을 정한 것은 나였고

무수한 답을 아는 것은 당신이었다

원망은 매번

멀리까지 나아갔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야금야금 아껴가며 '폭삭 속았수다'를 보고 있다.

엄마의 촉으로 연탄가스로 의식을 잃은 금명이 응급실에 실려가는

장면을 보며 또 한참 훌쩍였다.

꼬맹이 처음 독립시켰을때 코로나상황이기도 했고

연락이 안되면 밤새 안절부절 잠을 설쳤던 기억...

서로 떨어져 지낸 3년이라는 시간동안

난 사서하는 걱정을 좀 내려놓았고,

꼬맹인 엄마의 걱정을 이제는 조금 이해하는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매일 자기전 연락을 준다.

오늘은 자체적(?)으로 내게 휴가를 주었다.

커피 한 잔을 진하게 내려 집안을 어슬렁 거릴 것이다.

굴러 다니는 머리카락쯤은 로봇청소기에 맡기고

게으름을 필 생각이다.

뭔가를 해야 '보람된 하루'라고 생각했던

강박을 내려놓고

하루쯤은 그래보고 싶었다.

시집을 한 권 데려왔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의 박준 시인이

신간을 내어놓았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제목부터 심쿵 내 취향이다.

시 잘 모르지만 '폭삭'의 여운과 함께

자꾸 눈물이 찔끔 찔끔 흐른다.

'나의 슬픔은 나무 밑에 있고

나의 미안은 호숫가에 있고

나의 잘못은 비탈길에 있다'

라니... ㅠ.ㅠ

기대했던 여유로운 봄날의 하루는

이런 모습은 아니었거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