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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평점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신작 장편소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가 다산책방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연애의 기억』 이후 국내에 6년 만에 선보이는 줄리언 반스의 작품으로 “이것이 줄리언 반스다”라는 극찬과 함께 다시 한번 그만이 가능한 독보적인 이야기로 문학적 성취를 거두었음을 증명했다.
소설은 결혼생활과 직업적 실패를 겪고 고비를 맞은 한 남자가 삶에 큰 영감을 주는 교수를 운명처럼 만나면서 시작한다. 언제나 압도적인 일인칭 화자를 내세워 강렬한 질문을 던지는 줄리언 반스는 이번 작품에서도‘닐’이라는 화자를 앞세워 매혹적인 허구의 인물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와 역사의 승자에 의해 배교자로 불리는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에 대해 탐색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지 못했던 물음에 직면하게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맞는가?’
어느덧 여든에 가까운 줄리언 반스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글을 쓰며 천착해 온 화두의 정수가 모두 담긴 이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을 과감히 넘나들며 기억의 한계와 역사의 왜곡, 그리고 인간과 삶의 다면성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두고 장르 불명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줄리언 반스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 말고는 달리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다. 감히 줄리언 반스 40년 문학의 결정판이자 그의 문학적 지문과도 같은 작품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우리의 의견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수 있고, 우리의 충동, 욕망, 혐오 - 간단히 말해서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것 - 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수 없고, 우리의 소유나 평판이나 공적 직책도 마찬가진다. 즉,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는 모든 것이 그렇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들을 하면 그 성격상 자유롭고 방해가 없고 막힘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을 하면 익숙해지고 속박되고 방해받는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억하라, 본성상 속박하는 것이 자유를 준다거나 네 것이 아닌 것이 네 것이라고 생각하면 좌절하고 비참해지고 화가 날 것이며 신과 사람 탓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네 것 만을 네 것이라 생각하고 네 것이 아닌 것도 그냥 있는 그대로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도 너에게 강요하지 않고 아무도 너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고, 너는 아무도 탓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내키지 않은 일을 단 하나도 하지 않을 것이며, 너는 적이 없고 아무도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해치려해도 너는 전혀 해를 입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42
“실패가 성공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깨끗한 패배자가 지고 나서 뒤끝이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주장하고 싶네요. 나아가서 배교자가 늘 진실한 신자보다, 거룩한 순교자보다 흥미롭습니다. 배교자는 의심의 대변자이고, 의심은―생생한 의심은―활동적인 지성의 표시죠.” p58
그녀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리고 자기 나름의 수준에서 살고, 또 느끼고, 또 생각하고, 또 사랑했을( 이 대목에서 나는 추측을 하고 있다 )것이다. 잡동사니도 마찬가지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의 감정생활에 끈질기게 매달려 좋든 나쁜든, 영광이든 모욕이든 낱낱이 탐닉할 것이다. EF는 이런 삶에도 잡동사니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을 지워야만 다시 더 분명하게 보고, 또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P107
죽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물론 우리는 죽은 자들을 기리지만 그렇게 기리면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을 훨씬 더 죽어 있게 만든다. 하지만 죽은 자들을 기쁘게 하면 그들이 다시 살아난다. 그게 말이 될까? 내가 EF를 기쁘게 하고 싶다는 것은 옳았고 나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건 옳았다. 그리고 나는 약속을 지켰다. P122
일관된 서사란 것은 대립하는 판단들을 화해시키려 하는 것이기에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검토해 볼 만한 암시적 사실들을 그냥 나열하여 어떤 사람을 설명해 보는 것도 똑같이 가능할지 모른다. p217
"그럼 우리는 그걸 인정해야 하는 거네, 우리가 진정으로 철학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그런 삶이라는 게, 현실을 직시하자면, 사람들 대부분은 관심도 없는 거지만, 또 우리는 거기 헌신하기에는 이제 좀 늦었지만." P273
이건 정당할 것이다.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이 일은 지금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고 따라서 내가 자유와 행복을 얻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p292~293
가을을 타는지?
아니면 지난 추석연휴의 노동의 휴유증인지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피곤타... ㅠ.ㅠ
아직도 못한 그릇정리와 가을옷을 꺼낼까 궁리하다가
책한권을 챙겨 늘 그렇듯 별다방 창가에 앉아있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내취향을 아는 직원의
텀블러에 가득 담아준 얼음 잔뜩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줄리언 반스의 신작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를 읽고 있다.
이번 소설은 결혼생활과 직업적 실패를 겪고 고비를 맞은 한 남자가
엘리자베스 핀치라는 교수를 만나
"우연이라는 불가해한 힘 앞에
삶은 얼마나 파편 된 진실이며 필연적 거짓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닐'이라는 인물을 통해 말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이 책이 소설인지, 철학책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때론 쉽게 또 어느땐 도무지 읽고 다시 읽어도
문장의 의미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아 애를 먹었다.
소설은 아직도 내게 도전하기 어려운 장르인가보다.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다시 읽어 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