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 - 김훈 문장 엽서(부록)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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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쩔 수 없는 비애와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 김훈.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삭아드는 인생의 단계를 절감한다는 그가 “겪은 일을 겪은 대로” 쓴 신작 산문을 들고 돌아왔다. 생과 사의 경계를 헤매고 돌아온 경험담, 전쟁의 야만성을 생활 속의 유머로 승화해 낸 도구에 얽힌 기억, 난세를 살면서도 푸르게 빛났던 역사의 청춘들, 인간 정서의 밑바닥에 고인 온갖 냄새에 이르기까지, 그의 치열한 ‘허송세월’을 담은 45편의 글이 실렸다. ‘본래 스스로 그러한 세상’의 이치를 아는 이로서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고도 섬세한 문체로 생활의 정서를 파고든 《허송세월》은 김훈 산문의 새 지평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나는 오후에 두어 시간쯤 햇볕을 쪼이면서 늘그막의 세월을 보낸다. 해는 내 노년의 상대다. 젊었을 때 나는 몸에 햇볕이 닿아도 이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고, 나와 해 사이의 공간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지나간 시간의 햇볕은 돌이킬 수 없고 내일의 햇볕은 당길 수 없으니 지금의 햇볕을 쪼일 수밖에 없는데, 햇볕에는 지나감도 없고 다가옴도 없어서 햇볕은 늘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 온다. 햇볕은 신생하는 현재의 빛이고 지금 이 자리의 볕이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p43


시간을 시각과 시각 사이의 흐름이라고 억지로 말하는 말을 들을 때 나는 시간의 질감을 내 살아 있는 육신의 관능으로 느낄 수 있고, 한 개의 미립자처럼 또는 한 줄기 파장처럼 시간의 흐름위에 떠서 흘러가는 내 생명을 느낄 수 있다.

깊이 내려앉은 해가 빛과 색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젊은 어머니들이 노는 아이들을 핸드폰으로 불러들이면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또 하루가 노을 속으로 사위어 간다. p48

장자는 순결한 삶, 자유로운 정신, 억압 없는 세상의 모습을 역동적 드라마로 제시한다. <노자는 사상의 원형이며 뼈대일 터인데, 여기에 판타지를 넣고 스토리를 엮어서 인간세에 적용하면 <장자>가 된다. 장자는 뛰어난 스토리텔러다. 장자는 인간의 수많은 질문에 직접 대답하기보다는 질문의 근거를 부수어 버림으로써 인산세의 끝없는 시비를 끝낸다. 질문이란 대체로 성립되기 어렵다. 인간은 짧은 줄에 목이 매여서 이념, 제도, 욕망, 언어, 가치, 인습 같은 강고한 말뚝에 묶여 있다. 짧은 줄로 바싹 묶여서, 괴로워하기보다는 편안해하고 줄이 끊어 질까 봐서 조심초사하고 있다. 장자가 마음의 도끼질로 이 목줄을 끊어 주는데, 줄이 끊어지면서 드러나는 세계의 질감은 가볍고 서늘하다.

공원에서 연꽃과 물고기를 들여다보면서 장자를 생각했다. 연꽃이 장자고 물고기가 책이었다. 아름다운 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하다. 거꾸로 써도 마찬가지다. 내년 여름에는 또 새 매미가 울겠지. p129


살아있는 인간의 몸속에서 '희망'을 확인하는 일은 그야말로 희망적이다. 아마도 이런 희망은 실핏줄이나 장기의 오지 속과 근육의 갈피마다 서식하는 생명 현상 그 자체인것이어서, 사유나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다만 경험될 뿐이다. 몸의 희망을 몸으로 경험할 때, 우리는 육체성과 정신성의 간극을 넘어서는 행복을 느낀다. 나는 이런 행복을 '몸과 삶 사이의 직접성'이라고 이름 지으려 한다.

돈이나 수고가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직접성의 행복은 인가을 소외시키는 일상성(속도, 능률) 속에 매몰되어 있다. 추운 겨울 거리의 노점 식당에서 라면을 먹을 때나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에 수박을 식칼로 쪼갤 때, 또는 개을 데리고 새벽 공원을 달릴 때 나는 때때로 그 직접성의 행복을 느낀다. 그 행복속에서는, 살아 있는 몸을 통해서 세계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느낌은 사유라기보다는 생명을 보증으로 삼는 경험이다. p130~131

사람은 지나가지만 사람됨은 지나가지 않는다. 짓밟히고 억눌린 시대에도 사람은 사람다운 표정과 체취와 온도를 지니고 있었고 억압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의 그때'를 '사람의 지금'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지나가는 것들이 다 지나간 뒤에도 지나가지 않는 것들은 남아 있다. 많은 것들이 지나간 뒤에야 지나가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p265~266


수학은 물적세계의 구조와 전개를 해명하려는 순수이론이지만, 인간 정신의 합리성에 바탕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속내가 정신에 의해 밝혀지게 되는 비밀을 나는 말할 수 없다. 음의 물질성 안에 희로애락의 정서가 들어 있을리가 없지만, 그 추상적 파동들을 모아서 편성한 음악이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감당하게 되는 비밀 또한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냄새도 음과 같아서 그 자체 안에 희로애락이 들어 있지 않지만, 냄새는 인간의 생애와 정서에 깊이 간여한다. 후각은 인간의 오감중에 가장 동물적이고 원시적이다. 냄새는 기호화할 수 없고, 개념화할 수 없고, 구조나 조직으로 계통화할 수 없다. 그래서 냄새는 사상이나 예술이 되지 않는다. 기억속에 남아 있는 냄새는 내 생애의 냄새이고, 내가 살아온 시간의 냄새다. P328

제목에 끌려 구입한 책

남한산성으로 유명한 작가 김훈의 5년만의 산문집 '허송세월'

기말고사를 끝내고 무기력해진 내게 김씨가 기어코 한마디 한다.

'무슨 도움이 된다고 고생을 사서 하냐고....'

그냥 집에서 쉬거나 놀아도(?) 아무도 뭐랄 사람없는데

스트레스 받아가며 때아닌 공부를 한다는 내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다.

그래서일까?

노작가의 세월이 담긴 이 책이 궁금해졌던건....


늙어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슬픈일임에 공감한다.

겁많은 나는 얼굴에 점을 빼는 일외엔 시술을 받아보지 못했지만

점점 내려오는 눈꺼풀과 심술보처럼 보이는 처진 볼살이

가끔은 병원에 가서 견적이라도 받아볼까 싶은 것이

뭘꾸미는데 별관심없는 나였으나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얼굴을 보는 것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

지난주에도 장례식장에 다녀온 꼬맹이가

지난 월요일에도 직장동료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며

퇴근후 저녁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고 한다.

99년생 신입사원이라는데 외동이라는 어린 직원이 눈물을 흘리니

안쓰러움에 덩달아 눈물이 났다고

연달아 이런일이 있으니 마음이 안좋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흔히들 가는데는 순서가 없다고 한다.

호상이라고 슬프지 않을 일이 없으며,

이별후엔 좀더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후회가 남지 않을까?!...ㅠ.ㅠ

걷기예찬속에 나오는 이야기는 많은 공감을 끌어냈다.

햇빛속의 호수공원을 걷는 일은 내게도 희망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가득 찬다.'는 저자처럼

나도 허송세월로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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