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의 행복수업
김지수 지음, 나태주 인터뷰이 / 열림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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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의 작가인 ‘인터스텔라’ 김지수와 ‘풀꽃시인’ 나태주의 인터뷰 에세이 『나태주의 행복수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23년 2월부터 5월까지 매주 월요일, 서울 사람 김지수가 공주의 풀꽃문학관을 찾아가 써 내려간 봄 한철의 여행기이자 행복한 수업의 결과물이다.

또한, ‘풀꽃시인’ 나태주와 김지수가 세대를 초월해 ‘상대방을 살린’ 우정의 기록이자, ‘너무 애쓰다 지친’ 모든 어른에게 바치는 가장 촉촉하고 다정한 응원가이기도 하다. 책을 펼치는 순간, 공주의 작은 마을에서 ‘키 작은 정원사’ 태주를 만나 그가 풀꽃문학관에서 정성껏 돌보는 꽃들과 같이 윤슬 같은 희망을 받아먹고 다시 피어나는 마법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령 교수가 함께한 라스트 인터뷰집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의 뒤를 잇는 책으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죽어가는 스승이 어둠의 사선에서 나눠준 ‘밤의 전리품’이라면 『나태주의 행복수업』은 뜨는 해를 바라보며 매일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아침의 편지’”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후회를 최소화하려 들지 말고 최적화하라. 두려워서 결정을 미루지 말라. 실행하지 못한 것, 옳은 일을 하지 못한 것, 아끼는 사람에게 손 내밀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해라. 하루라도 빨리 깨닫길 바란다. 인생은 얼마간의 후회를 쌓는 일이라는 걸." p61

“나태주의 시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나는 압니다. 군림하지 않잖아. 업신여기지 않잖아요. 다 안쓰럽게 여기잖아요.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곁에 오면 나는 살갗이 부들부들 떨려요. 역한 감정이 습자지처럼 배어 나와.”

예쁘지 않아도 예쁜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했다. 높은 곳에서 끼리끼리 놀고 싶어 하는 잘난 사람이 아니라 아래서 뿌리처럼 엉켜 사는 예쁘지 않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p91

함께 석양을 음미하거나 별을 보진 못했지만, 멀리 뜬 낮달이나 강물에 반짝이는 물별을 향유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태주는 아침의 남자였기에 저녁 무렵이면 성예가 기다리는 집으로 갔다.

그러나 낮 동안 태주의 우정에는 늘 설렘이 동행했고, 태주 자신이 먼저 수줍어 얼굴을 붉히거나 긴장이 배어 나오는 웃음으로 사랑의 채도를 맑게 유지했다.

태주는 공주의 자랑이었고, 공주는 태주의 자랑이었다.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공손한 공주 품에 태주라는 ‘예쁜 씨앗’이 날아들었기에, 도시는 더 울창해지고 환해지고 가까워졌다. p126


“우리는 누구나 진심을 들키고 싶어 해요. 진짜 마음은 순전하게 발굴되길 원하죠. 외로운 마음도, 멜랑콜리한 마음도 다. 우리의 과제는 이거예요. 자기 마음을 변형시키지 않고 일그러뜨리지 않고 그대로 꺼내는 것. 그런데 그냥 꺼낼 수는 없어요. 언어로 옷을 입혀 꺼내야 해요. 마음은 아메바처럼 계속 움직여요. 그 마음을 가만히 고정시켜서 느껴야 합니다. 냄새도 맡아보고 소리도 들어보고 촉감도 느껴보고…… 그런 다음 언어의 옷을 입혀서 사악 빼내야죠.” p155~156

"선생님, 나이들면 무엇이 점점 중요해 지나요?"

"늙어갈수록 효용이 더 중요해져요. 높은 곳에 있든 낮은 곳에 있든 무가치하지 않은 게 중요하죠. 왜냐면 배터리가 바닥을 드러내거든. 젊은이는 배터리의 여유가 많아서 실수해도 돼고 낭비해도 돼.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배터리에 여유가 없어요. 낭비 없이 유용하게 써야죠." p168~169


태주와 함께 ‘이어령길’을 걸으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상념에 사로잡혔다.

지수에게 이어령은 크고 명료한 생각의 스승이었고, 나태주는 웃기고 다정한 느낌의 아버지였다. 이어령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동작이 컸고 나태주는 희극 배우처럼 표정이 변화무쌍했다. 이어령의 눈은 예지로 번뜩였고 나태주의 눈은 물기로 촉촉했다.

이어령은 평생토록 죽음과 나와 우주를 탐구한 넉넉한 에고이스트였고, 나태주는 평생 너와 꽃과 사랑에 몰두한 로맨티스트였다. 이어령은 진선미의 높은 언어를, 나태주는 의식주의 생활 언어를 사용했으나, 둘 다 영성을 통과하는 은유의 달인이었다.

어휘의 총량이 무한대인 지식인과 기억의 총량이 무한대인 시인 사이에서 지수는 전극이 다른 경이를 느꼈다. 두 사람 다 충청도 사람이었고 유머가 풍부했고 키가 작았다. 무엇보다 남겨질 후대를 지극히 사랑했다. p201~202

“앓는 행복이라고 들어봤어요? 내가 약했을 때 느껴지는 행복. 앓을 때는 가장 먼저 내가 나를 연약한 한 명의 인간으로 보호하게 됩니다. 자신감도 체력도 능력도 떨어지니까, 모든 걸 좀 줄이게 돼죠. 그리고 주변에서도 가엾다고 힘없다고 보호해주잖아요. 앓을 때 먹는 죽을 나는 특히 좋아해요. 죽을 먹는 것 자체가 엄청난 치유의 과정이예요. 약할 때 나는 아내가 쑤어준 묽은 죽을 먹고 살아났어요. 죽을 끓여줄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는 사람, 내 몸을 염려해 스스로 죽을 찾아 먹을 줄 아는 사람은 희망이 있어요.

왜냐? 회복의 시작은 약해지는 걸 인정하는 것이거든. 약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죠. 시름시름 앓다 죽을 먹고 기운 차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플 때도 도울 수 있습니다. 이치가 그래요. 죽이 있어서 나는 앓는 걸 피하지 않아요. 약해져도 괜찮고 저자세로 살아도 나쁘지 않더라고.” p213

친구 경이가

"어느날 뜬금없이 갑작스레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보낸다"라며 향기 가득한 꽃다발과 함께 보내온 책,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 지친' 서울 사람 지수가

공주의 키 작은 정운사 태주를 만나 일어서는,

봄 한철 보살핌의 기록을 담은

'나태주의 행복수업'을 읽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 언급한 것처럼 몇해전 읽은 저자의 전작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죽어가는 스승이 어둠의 사선에서 나눠준 '밤의 전리품'이라면

이번 '나태주의 행복수업'은 하루하루 널을 뛰며 살아왔던 내게도

'아침의 편지'이자 '응원의 노래'였다.

밤호수님과 이웃블로거를 통해 비교적 친숙한 공주,

유배된 것처럼 고향 서울을 그리워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또 하나의 고향이된 군산과 장항 그리고 서천에서 나눈 두 분의 이야기들이

정겹게 때론 아프게 마음에 스며들던 시간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공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지리했던 불안하고 무기력했던 시간을 지나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드는 봄날의 오후...

그럼에도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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