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첫 발간부터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최첨단에서 평단의 주목과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받아온 창비시선이 500번을 맞아 기념시선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을 출간했다. 엮은이로는 돋보이는 감수성으로 요즘 독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동시에 시에 관해서라면 눈 밝기로 정평이 난 안희연, 황인찬 두 시인이 나섰다.
401번부터 499번까지 각 시집에서 한편씩을 선정했으며, 두권을 출간한 시인의 경우 한편만을 골라 총 90편의 시가 한권으로 묶였다. 이번 시선집은 “지난 8년여 동안 전개된 창비시선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정리하고 요약하기보다는 시인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 보이는 데 역점을”(「엮은이의 말」) 두었다.
창비시선은 국내 여느 시선 시리즈보다 신구 세대가 조화롭고 시의 경향도 다채롭다. 시선집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1948년생 김용택 시인(『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시선 401)과 2000년생 한재범 시인(『웃긴 게 뭔지 아세요』, 창비시선 499)만 해도 연령뿐 아니라 시어를 다루는 양상과 시를 전개하는 방식이 무척 상이한데, 400번대 창비시선은 순수/참여 같은 고루한 이분법에 갇히지 않으려는 고투가 넓혀온 시적 영토 덕분에 총천연색 스펙트럼으로 찬란하다.
이로 인해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개성 넘치는 빼어난 작품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이 시선집의 진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읽어나갈 때 드러난다. 출간 순서를 최대한 따른 구성과 세심하고도 치열한 선별 과정 덕분에 이 한권만으로도 독자들은 급변하는 현재 한국시의 지형도를 가늠해볼 수 있으며, 이 시대의 감수성이 우리 시와 어떤 방식으로 조응하고 호흡하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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