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의 햇빛 일기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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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따스한 사랑을 전해온 이해인 수녀가 8년 만에 전하는 신작 시집. ‘위로 시인’이자 ‘치유 시인’으로서 아픈 이들에게 건네는, 반짝이는 진주처럼 맑게 닦인 백 편의 시가 담겼다. 1부와 2부는 투병 중에도 나날이 써낸 신작 시만으로 엮었다.

“저마다 무슨 일인가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날을 샌 존재들에게”(황인숙 시인, 추천의 글) 시인은 작은 햇빛 한줄기로 가닿고자 한다. 때로 생경하고 낯선 고통 앞에서도 “아파도 외로워하진 않으리라” 결심하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인의 맑고 고운 언어들이, 우리의 상처와 슬픔에도 “환한 꽃등”(「아픈 날의 일기 1」) 하나씩 밝혀줄 것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병원에서 링거주사를 맞듯이

내 몸이 힘들고 우울할 땐

햇빛 주사를 자주 맞는다

차가운 몸이 이내 따뜻해지고

우울한 맘이 이내 내밝아지는

햇빛 한줄기의 주사

고맙다고 고맙다고

목례를 하면

먼 곳에 있는 해님이

다정히 웃는다.

복도를 걸어갈 때도

두꺼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나를

생명의 빛으로 초대하는

나의 햇빛 한줄기로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햇빛이 준 넉넉한 양분으로

나는 나에게

이웃에게

둥근 사랑을

시작한다

– 햇빛 주사

비가 많이 내리는 오늘

갑자기

나에겐

생각의 빗방울이 많아지고

어딘가에 깊이 숨어 있던

고운 언어들이

한꺼번에 빗줄기로 쏟아져 나와

나는 감당을 못 하겠네

기쁘다

행복하다

즐겁다

나는 그냥

하루 종일 웃으며

비를 맞고 싶을 뿐

눈매 고운 새 한 마리

초대하고 싶을 뿐

– 비 오는 날

기쁠 때

슬플 때

아플 때

그리고

삶이 버겁고

억울한 일 당했을 때

하느님도다

먼저 불러보는

엄마

엄마는 나에게

작은 하나님

구원의 천사임을

하느님도

이해해주실 거라 믿고 싶네

부르는 것 자체로

기도가 되는 엄마

먼저 다기 그 나라에

나도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저기 가서도

제일 먼저 불러볼 그 이름

엄마

이 세상에 나를 낳아주시고

저세상으로 떠나신 이후에도

계속나를

사랑으로 키우고 계신 엄마

나의 엄마

– 엄마

간 밤 꿈에

그림이 아름다운 열두 장의 카드를 사며

더 살까 말까 망설이다 눈을 뜨니

아쉬우면서도

행복한 느낌!

고맙다는 말

축하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시처럼 적으면서

살아온 날들

내 일생동안

누군가에게 날아간

사계절의 고운 카드를

그리워하며

다시 보고 싶은 카드 속의 문장들

어느 훗날 나는

존재 자체로 한 장의 카드가 되어

날아갈 준비를 하네

더 이상

가게에서 사지 않아도 될

가장 아름다운 카드 한 장으로

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또 내일도

그냥 그냥 기뻤다고 고백하리라

한 장의 러브레터로 살다 갔다고

누군가 그렇게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 꿈 일기⎯카드를 사며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날이었던 것 같다.

고생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더 잘 될꺼라고 응원의 말을 듣고 싶던

시린 가을날

난 이 책을 구입했다.

햇살주사를 읽으며는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았고

비오는 날은 아껴가며 비소식이 있는 날 읽었다.

엄마는 내게 폭풍눈물을 흘리게 했고

꿈 일기를 읽으며는 나도 러브레터 같은 삶을 살아야겠구나 하며

조금은 밝고 기쁠 내일을 꿈꾼다.

한번도 뵌 적 없지만

수녀님도 늘 건강하시길...

오래도록 우리곁에서 위로로 남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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