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재미있는 미술사 도슨트 : 모더니즘 회화편 - 14명의 예술가로 읽는 근대 미술의 흐름
박신영 지음 / 길벗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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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사랑을 받은 모네와 고흐의 인상주의부터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까지 19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그려진 그림들을 미술사에서는 모더니즘 회화라고 한다. 바로크와 르네상스 등 많은 아름다운 미술사조가 있지만 《이토록 재미있는 미술사 도슨트》에서는 이 모더니즘 회화 시기에 집중한다. 이 시기는 근대의 역동적인 변화만큼이나 예술계에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시작인 시민혁명을 필두로 미술사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표현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추상미술, 추상표현주의의 대표 예술가 14명의 작품과 인생을 통해 모더니즘 회화의 큰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인기 팟캐스트 '후려치는 미술사'에서 많은 구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입담을 자랑해온 진행자 박신영 저자가 미술관 도슨트처럼 모더니즘 미술사를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우연이라기엔 어쩐지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인과관계로 이루어진 미술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모더니즘 회화의 역사와 작품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모더니즘 회화는 그저 자유롭고 다양한 것이 전부일까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그렇게 들꽃처럼 자유롭게 피어나던 모더니즘 회화는 어느 순간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겪게 됩니다. 그림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나는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의문을 가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현상을 어려운 말로 ‘자기인식self-consciousness’이라고 합니다. 아직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그 과정을 한번 살펴볼까요? 이것은 한 가지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그림이라는 게 도대체 뭐지?” p6~7

미술을 다루는 책의 시작을 시민혁명으로 여는 것이 의아할 수 있겠지만, 모더니즘 회화를 이해하려면 그 발생 원인인 시민혁명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미술작품은 항상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이죠. 시민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찾은 예술가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예술 세계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로운 시민사뢰의 예술, 그것이바로 근대 회화, 모더니즘 회화입니다.

모더니즘 회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인상주의Impressionism입니다. 인상주의는 한마디로 ‘태양빛’을 그리는 그림입니다. 모더니즘 회화의 시작이 태양빛을 그리는 그림이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지점입니다. 시민혁명의 배후에 태양이 있었는데 그 결과로 나타난 미술이 ‘태양을 그리는 그림’이니 말입니다. 물론 둘 사이에 논리적 연관성은 없습니다. 그저 우연에 불과하지만 어쩐지 소설의 복선처럼 아귀가 들어맞아 신기할 뿐입니다. p20~21

고흐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마치 신에게 부여받은 소명인 것처럼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오로지 예술에만 매달렸습니다. 고흐의 이런 태도를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이라고 합니다. 세상과 단절된 채 가장 순수한 목적으로 예술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후배 예술가들도 고흐의 순수한 태도가 존경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다음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져나간 것을 보면 말입니다. p116

추상화의 탄생은 모더니즘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입니다. 마티스와 피카소에 의해 고전 회화가 무너지고 모던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대표할 완전히 새로운 미술 장르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추상화의 탄생은 한편으로 이런 의미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미술은 신의 창조물인 자연을 모사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자연은 완벽하기 때문에 이를 모사한 미술은 항상 아름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추상화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이미지 입니다. 이제는 신의 도움없이 인간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입니다. 이를 두고 신성모독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예술가들은 이제 신의 창조물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창조 행위를 모사하기 시작했습니다. p252~253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전 세계의 질서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수많은 식민지들을 거느리며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유럽은 히틀러에 의해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새롭게 재편할 또 다른 거인이 등장했으니,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예술의 중심 또한 프랑스 파리에서 뉴욕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한때 모네, 고흐, 피카소 같은 위대한 예술가를 배출했던 파리는 이제 예술사에서 뒷전으로 완전히 물러났습니다. 유럽은 그야말로 잿더미가 되었으니 파리는 더 이상 예술을 발전시킬 공간도 에너지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뉴욕은 여전히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p280

인류는 지금껏 여러 가지 형태로 신을 표현해 왔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에서 아담과 신이 손가락을 맞대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절대신을 인간의 지성으로 한정한 것에 불과합니다.

신의 형태를 윤곽선으로 가두었기 때문이죠. 윤곽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지점에 있는 숭고의 아름다룸은 한계가 없는 무한성, 절대성에 있습니다.

색면추상 예술가들은 미술사에서 지금까지 숭고를 표현해온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근원적인 숭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형태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p302~303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한 세기 동안 이어져온 모더니즘 회화의 결말은 회화의 완성이 아니라 해방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허무한 한느낌도 들지만 모더니즘 회화의 아름다움은 결말보다 발전과정에 있습니다. 한세기가 지난 시점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더니즘 회화가 꿈을 완성하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을 향해 달려가던 예술가들의 마음은 진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동쪽 끝으로 가면 해가 떠오르는 세상의 끝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예술가들도 그 끝에서 무언가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모더니즘 회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것입니다. 꿈을 쫓던 예술가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p311

'이토록 재미있는 미술사 도슨트

모더니즘 회화편'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기 시작한 건

2014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영혼의 시

에드바르드 뭉크전부터 였던것 같다.

진행되는 도슨트를 듣고 다시 둘러보는 전시장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던 시간...

한 권만 읽으면 명화 속 이야기가 보이는

최소한의 미술사 교양 수업

한 권만 읽으면 명화속 이야기가 보인다고?!...

그동안 그림보는걸 좋아하지만 아는게 없으니 그저 보는 것으로 그쳤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새로 나올 미술사 책 리뷰제안에 기대를 안고 책을 기다리게 되었다.

드디어 도착한 책

고전의 끝, 새로운 시작을 알린 화가들...

하얀드레스를 푸른 하늘에 비친 모습으로 표현한

빛을 그리는 화가 클로드 모네와

마치 의도적으로 어두운 부분을 지우고 따뜻함만 남겨놓은 듯한

봄처럼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리고

어두운 측면을 가감없이 그려낸

그동안 알고 있던 작품외에 '두명의 댄서'를 통해

벨 에포크의 어둠을 알게된 에드가 드가...

어제 미술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미술사 관련 강의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마네의 '올랭피아'를 화두에 올렸었는데 '인상주의를 개발한 사람들'에서 작품과 함께 기득권에 반기를 든 마네의 이야기를 읽으니 책에 관한 관심이 더 커진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1830

"화가는 자신 앞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것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내면의 소리 개인성을 중시하는 것

낭만주의에서 귀족적 취향은 거의 고려되지 않은

평민계급이 자유의 여신과 함께 귀족을 짓밟고 혁명을 완수하는 내용

루브르박물관에서 기대했던 '모나리자' 대신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작품은 바로

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었다.

그당시엔 들라크루아란 화가에 대해서도 이 작품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던 상황이었는데

이 작품이 수많은 그림들 사이에서 내 마음을 움직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14명의 화가들 중에서 가장 내시선을 끈건 뜻밖에도 마크 로스크였다.

유명화가의 전시는 어찌하던 관람하러 노력하는데 그동안 유일하게 제외됐던 화가가

바로 마크 로스코였다.

그 흔한 선 하나없이 색으로만 채워진 작품앞에 난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탓에 흥미를 가지지 못했는데

'숭고의 미술'에 실린 마크 로스코편을 읽고 나니

형태를 완전히 제거하고 색으로만 숭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색면추상'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어렵지만 그의 작품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이는게 사실이다.

푸른빛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나로썬

위의 '파랑 위 녹색'은 기회가 되면 꼭 직접 보고 싶은 작품...

그동안 어렵게 느꼈던 미술사와 예술가에 대해

알게 된 시간으로 추상화와도 조금은 친해진 느낌...

아직 앙리 마티스 특별전 관람전인데

추석 지나면 꼬맹이 옆구리 찔러 다녀와야겠다.




** 이 책은 출판사 길벗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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