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토의 명작과 명소를 명문으로 전해온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30주년 기념판이다. 50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국내 최장수 베스트셀러 ‘답사기’ 시리즈에서 한국미의 정수이자 K-컬처의 원류를 보여주는 하이라이트 14편을 가려 뽑아 한 권에 담았다.
유홍준 교수는 우리 문화유산을 향하여 ‘사랑하면 알게 된다’의 철학을 설파해왔고, 한국미의 원류를 말하며 언제나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의 미학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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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최남단,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장 제1절로 삼은 것은 결코 무작위의 선택이 아니다. 답사라면 사람들은 으레 경주·부여·공주 같은 옛 왕도의 화려한 유물을 구경 가는 일로생각할 것이며, 나 또한 답사의 초심자 시절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난 세월 내가 답사의 광(狂)이 되어 제철이면 나를 부르는곳을 따라가고 또 가고, 그리하여 나에게 다가온 저 문화유산의 느낌을확인하고 확대하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수없이 여러번 다녀온 곳이 바로 이 강진·해남땅이다.
강진과 해남은 우리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무대의 전면에 부상하여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일 없었으니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는 대단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한 곳이며, 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어쩌다 나 같은 답사객의 발길이나 닿는 는이 조용한 시골은 그 옛날 은둔자의 낙향지이거나 유배객의 귀양지였을 따름이다. p13~14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느끼는 법이다. 그 경험의 폭은 반드시지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각적 경험, 삶의 체험 모두를 말한다. 지금 말한 그 졸업생은 이제 들판의 이미지에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얻게 된 것이다. 남도의 들판을 시각적으로 경험해본 사람과 그렇지않은 사람은 산과 들 그 자체뿐 아니라 풍경화나 산수화를 보는 시각에서도 정서 반응의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답사와 여행이 중요하고 매력적인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달리는 차창 밖 풍경이 산비탈의 과수밭으로 펼쳐졌을 때 우리 일행은 남도의 황토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누런 황토가 아닌 시뻘건 남도의 황토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시각적 충격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15
서양 사람들이 그들의 자연 빛에 맞추어 만든 먼셀 색상표에 눈이 익어버렸고, 그 수치에 맞추어 제조된 물감과 잉크로 그림 그리는 일, 인쇄하는 일, 그렇게 제작된 제품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 저 남도의 봄날이그려보인 원색의 향연은 차라리 이국적이고, 저 먼 옛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그림에서나 본 조선왕조의 원색으로 느껴진다. 하물며 연지빛, 등황빛, 치자빛, 쪽빛의 청순한 색감을 여기서 더 논해 무엇할까. 남도의 봄,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자연의 원색이고 우리의 원색인 것이다. 나는 그날 그 원색의 물결 속을 거닐고 있었다. p30
소쇄원이 깊숙한 계곡의 한쪽을 차지했다면 명옥헌은 산언덕 너머 전망이 툭 터진곳에 자리 잡았다. 똑같은 원림인지라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공을 가한 것이지만 소쇄원은 아늑함을, 명옥헌은 활달함을 취했다. 그것이 이 두 원림의 설계자, 사용자의 기본 아이디어였을 것이니 우리는 이를 비교하기 위해서라도 송강정, 면앙정보다도 명옥헌을 택해야 한다.
한국문학사적 의의로 말하자면 면앙정과 송강정이 훨씬 위에 놓이겠지만 옛 원림을 보는 시각적 즐거움으로 셈하자면 명옥헌이 단연 앞선다.
명옥헌은 소쇄원에서 일곱 굽이인가 아홉 굽이인가를 산길로 넘어야나온다. 그리하여 고서면 산덕리에 이르면 길 오른쪽에 ‘인조대왕 계마비(繫馬碑)‘가 서 있는데 여기서 산허리를 지르는 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언덕배기 중턱에 이르면 마을이 나오는데 여기가 후산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엄청나게 큰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어 동네의 연륜을 말해준다. p75
그러나 고급의 경지에 다다른 답사객은 언뜻 보기에 답사에의 열정과 성심이 식은 듯 돌아다니기보다는 눌러앉기를 좋아하고 많이 보기보다는 오래 보기를 원한다. 지나가는 동네 분과 시답지 않은 객담을 늘어놓고 가겟방을 기웃거리다가 대열에서 곧잘 이탈하곤 한다. 허나 그것은 불성실이나 나태함의 작태가 아니라 그 고장 사람들의 사는 냄새를맛보기 위한 고급자의 상용수단인 것을 초급자들은 잘 모른다. 고급자는 문화유산의 개별적·상대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그것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싶어하는 단계인 것이다. 하기야 사물에 대한 인간 인식의 수준이 개별적·상대적·총체적 차원으로 발전해가는 일이 어디 답사뿐이겠는가. p142
부석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무량수전에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라서가 아니며, 그것이 국보 제18호라서도아니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이 무량수전을 위해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법성게(法性偈)」에서 말한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조화하여 두 모습으로 나눠이 없고,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하나됨˝이라는 원융(圓融)의 경지를 보여주는 가람 배치가 부석사이다.
그러니까 부석사는 곧 저 오묘하고 장엄한 화엄세계의 이미지를 건축이라는 시각매체로 구현한 것이다. 이 또한 이미지와 이미지의 만남이며,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의 대화일 것이다. p203
들판엔 추수를 기다리는 벼 포기들이 문자 그대로 황금빛을 이루면서 초가을의 따스한 햇볕 속에 해맑은 노랑의 순색을 발하고 있다. 벼포기의 초록빛과 벼 이삭의 누런빛이 어우러져 설익은 논은 연둣빛이되고 농익은 논은 갈색이 되지만 엷은 바람에는 너나없이 단색의 노랑으로 변하며, 그 일렁이는 황금빛 물결 속에 먼산의 단풍도 길가의 화사한 꽃들도 모두 묻혀버린다. 나는 언젠가 가을 답사 때 동행했던 나의주례 어른이신 고 리영희 선생이 가을 들판을 바라보면서 독백처럼 흘렸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가을날의 단풍이라고 하면 먼 산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이는화려한 색감을 말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단풍의 주조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 이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나이가들고서야.˝
이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풍광이 느끼기에 따라선기암절경보다도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충청도 땅, 옛 백제의 아름다움 속에 피치 못하게 개입해있을 풍토적 성격일지도 모른다. p286
조선시대남자 과묵한 남자 김씨가 유난히 목소리가 커질때가 있다.
바로 역사드라마나 벌거벗은 한국사 등 역사에 관련된 TV프로그램을 시청할때...
몇해전 안동을 방문했을때 그 진가가 발휘되었는데 그에 비하면 난 외워야하는 과목은 별로였기에
국사나 세계사 성적은 늘 바닥이었던 까닭에 그의 잘난척(?)을 기꺼이 들어준다. ^^;
아마 이 책을 구입한 저면엔 혹시 언젠가 책속에 그곳을 함께 간다면 나도 가만있지 않으리라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아무튼 이런 흑심(?)을 품고 읽기 시작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30주년 기념 하이라이트답게 흡입력있고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읽으며 예산의 황금빛 들판이 그려진 부분에선 그리운 추억으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고
꼭 가고 싶은 '사무치는 마음으로 가고 또 가고'라는 타이틀의 영주의 부석사는 설레임으로 읽었다.
그외에도 소쇄원, 한라산 영실도 가보고 싶다는 장소로 차곡차곡 쌓인다.
추석 지나면 창경궁부터 나의문화유산답사를 시작해볼까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눈에 보일 그 순간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