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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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용한 산골 마을, 작은 식당에 모여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이야기를 그린 소설 《달팽이 식당》이 새로운 번역과 디자인으로 돌아왔다. 이 소설은 특유의 맑고 깊은 시선으로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따뜻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전 세계에 수많은 열성 팬을 가지고 있는 ‘일본 힐링 소설의 원조’ 오가와 이토의 장편 데뷔작이자 대표작으로 꼽힌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나는 목소리를 잃었다.

조금 놀랐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아프지도 가렵지도 힘들지도 않다. 그저 그만큼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제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게만 들리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꼭. p25


모계 가족의 기질은 반드시 대를 걸러 유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엄마는 너무도 정숙한 외할머니에게 반발해 그것과는 정반대로 파란만장한 삶의 방식을 선택했고, 그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엄마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반발해, 또 그것과는 정반대인 평범한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오셀로 게임을 하는 것처럼 엄마가 하얗게 칠한 부분을 딸은 열심히 검게 덧칠하고, 그 딸인 손녀는 다시 하얗게 칠하려고 노력한다. p73

여전히 나는 하루에 한 번 엘메스의 똥을 밟는다. 밤송이가 머리 위에 떨어지는 일도 있고, 길가의 돌멩이에 걸려 넘어질 뻔한 때도 있다. 그래도 도시에 살던 시절보다는 작은 행복을 만나는 순간이 훨씬 많다.

길가에 뒤집어진 공벌레를 구해 주는 것이 행복했다. 닭이 갓 낳은 계란을 뺨에 대고 온기를 느끼는 것도, 아침 이슬에 젖은 풀잎의 다이아몬드보다 예쁜 물방울을 발견하는 것도, 대나무 숲 입구에서 발견한 레이스 컵 받침처럼 아름다운 비단그물버섯을 겨된장에 넣어 먹는 것도. 내게는 이 모든 것이 신의 뺨에 감사 키스를 보내고 싶은 사건들이었다. p79


나는 대부분의 사람과 생물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엄마만큼은 도저히 진심으로 좋아할 수가 없었다. 엄마를 싫어하는 마음은 그 외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에너지와 거의 동등할 만큼 깊고 무거웠다. 그것이 내 진정한 모습이었다.

사람은 항상 맑은 마음으로만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의 마음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흙탕물이다. p173

그날 일을 더 떠올리면 내가 망가져 버릴 것 같다.

그러니 조금만 생각하도록 하자.

정말로 소중한 것은 내 가슴속에 넣어 놓고 열쇠로 꼭꼭 잠가 두자. 아무에게도 도둑맞지 않도록. 공기에 닿아 색이 바래지 않도록. 비바람을 맞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p216


서른셋 나이에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시즈쿠...

바다가 보이는 '라이온의 집'에서 남은 시간을 마무리 하기로 결심한다.

매주 일요일, 신청자의 쪽지를 뽑아 특별한 간식 시간이 열리는 이곳에서

삶을 정리하는 시즈쿠의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책

'라이온의 간식'을 쓴 오가와 이토의 힐링 소설 '달팽이 식당'이 예쁜옷(?)을 입고 재출간 되었다.




책과 함께 동봉되어 있는 엽서를 보며 달팽이 식당을 상상해본다.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식당

하루에 한팀만 받아 정성스럽게 준비한 요리를 대접한다.

일년 내내 똑같은 상복 차림으로 지내는 할머니,

우연히 가족이 된 토끼가 거식증에 걸리자 도움을 청한 소녀,

은밀한 사랑의 도피처를 찾아온 커플...

그녀가 준비하는 음식이야기를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며 힐링이 되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엄마이야기엔 콕콕 마음이 아프다.

정숙한 외할머니 밑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로 택한 엄마,

그 엄마가 못마땅해 반기를 들며 평범한 삶을 선택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오셀로 게임을 하는 것처럼

엄마가 하얗게 칠한 부분을 딸은 열심히 검게 덧칠하고,

그 딸인 손녀는 다시 하얗게 칠하려고 노력한다.


칠칠치 못한 인생을 보낸 엄마 루리코가

딸만큼은 바람직하지 못한 인생을 살지 않길 바라며 지은 이름 린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살아가 주길 바란다며

엄마 루리코가 남긴 마지막 편지엔 참고 있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ㅠ.ㅠ

조만간 고즈에와 토끼를 위해 준비했던 밤크림이 산처럼 올려져 있는 몽블랑을 사먹어야겠다.

따뜻한 얼그레이 티 한 잔과 함께...

그 어느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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