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일단 걸었습니다 - MBC RADIO 나서기 PD의 해파랑길 순례기
조정선 지음 / 수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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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단짝인 ‘해정 군’과 해파랑길 걷기를 함께하며 끼니를 챙기고 숙소를 정하는 등 하루하루의 일정과 소감을 스마트폰에 남겼다. 매일 걸은 거리와 함께 챙겨 먹은 끼니와 반주로 곁들인 주종과 양까지도 기록했다. 또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두 사람의 소식을 접한 동창, 학교나 직장 후배 등 이런저런 인연들이 그들의 트레킹을 응원하려고 등장하기 시작한다. 낮에 트레킹에 동참한 후에 저녁 식사에 반주로 시작된 한잔이 거나해지는 술자리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단출히 때로는 손님(?)을 맞으며 꼬박 27일간을 걸었다.

글쓴이가 ‘가능하면 매일 밤’ 남기려고 노력한 기록을 따라가 보면, 대학교 일 학년 때 놀러 갔던 부산 밤바다도, 새내기 PD 때 당시 정동 MBC 근방 생맥줏집도 읽힌다. 지은이와 단짝은 걸으며 부르기에 좋은 노래 베스트 5곡을 선정하기도 하고, 저녁에 반주로 즐기던 막걸리 품평회를 열기도 하며, 걸으면서 마주한 풍경들 순위를 매기기도 한다. 이렇듯 유쾌한 에피소드들 사이사이에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말해도 되는’ MBC RADIO 간판 프로그램들의 숨은 비화와 일찍이 우리 곁을 떠난 이들(정영일 영화평론가, 가수 박상규 등)에 대한 회고도 새겨져 있다.

<인터넷 알라딘제공>

 

 

그 첫 번째 프로젝트가 동해안 해파랑길 770킬로미터 걷기다. 극기, 도전, 달성, 자기와의 싸움, 모험, 챌린지 등의 하드코어한 용어는 쓰고 싶지 않다. 그저 트레킹을 하다 힘들면 쉬고, 졸리면 자고, 목마르면 마시려고 한다. 하지만 촌음을 다투는 방송 일을 오랫동안 해왔던터라, 느긋한 여행이 이어질는지 모르겠다. 이제 출발이다! p7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게 뭐냐고 묻는다면?
그게 사람이나 좋아하는 동물 같은 생명체이든, 아니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물건이든, 혹은 종교적인 신념이든, 딱 하나만 꼽는다면 뭘 들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존재들을 내게 소중한 순거로 나열해 본다면?
친구의 스마트폰 분실 사건을 겪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제 스마트폰이란 요물은 가족이나 친구, 신앙, 애완동물, 재물 등등 모든 존재를 가볍게 넘어설 만큼 압도적으로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은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과연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있을까? p50


세상에서 가장 헛되고 아까운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한 가지 강박관념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시간은 반드시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일이든 공부든 결과물, 소위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야 안심한다.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노는 데 쓰는 시간은 헛되고 아깝다. 지금처럼 마냥 걷는 일 역시도 마찬가지.
하지만 잘놀고, 취미를 즐기며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닐까. 우리가 사는 목적은 결국 행복이며, 그건 생산적이라기보다는 소비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돈은 벌 때보다는 쓸 때 더 행복하듯이, 가끔 돈버는 재미에 빠져 다른 건 잊고 사는 사람을 보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의문이 든다. p60~61


37년을 일해온 나로서는, 방송 PD라는 엔진의 시동은 꺼졌지만, 모터는 한동안 탄력을 받아 돌아갈 것이다. 출근 시간이 되면 나가려 할 것이며, 새해 달력을 받아 들면 빨간 날을 세거나, 연휴가 며칠이나 겹치는지 진지하게 체크할 것이다. 후배들이 만든 방송을 들으면서 뭔가 참견하면서 '라테는'(나 때는 말이야) 하고 늘어놓으려 할지도 모른다. p105

어떻게 하면 모양 빠지지 않게, 품위를 지키며 스스로를 리셋reset할 수 있을까? 원초적이고 힘든 일을 오랜 시간 겪으면 새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이처럼 길고 무모하기까지 한 도전에 나섰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트레킹을 시작하며 회사 일을 떠올리는 경우가 드물었던 걸 보니 이제까지는 성공인 듯하다. 반면에 가족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은 점점 깊어진다. 이 글을 아내가 읽을 것이라서 쓰는 건 아니다. p106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여행을 다니면 뭔가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라고 한다. 둘이면 반드시 갈라지고, 셋이면 하나를 왕따시키는 일이 벌어진다면서.(...) 솔직히 내심 그 점이 염려가 안 되었던 건 아니다. 생각 끝에 이런 껼론에 도달했다. 이런 비유를 하고 싶다. 부부가 티격태격해도 헤어지지 않고 사는 건 대부분 관계가 좋고 천생연분이어서라기보다는 ‘결정적인 순간’ 혹은 ‘진실의 순간’을 잊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매력을 느꼈던 몇 초의 짧은 순간, 어느 때인가 내게 해주었던 고마운 응대나 배려 따위 말이다.  p118~119

 

하루키는 달리기가 진정 가치 있는 영위라고 했다. 그 이유가 뭘까? 그가 말하는게 경제적인 의미의 가치는 물론 아닐 거다. 아마 가치관을 말하는 것이 아닐는지.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 그것을 구별할 줄 아는 눈을 말하는게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사람은 거기에 가치를 둔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정직함보다는 남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거나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긴다. 분노하는 사람, 질투하는 사람, 사치하는 사람. 모두 가치관 문제다. p124




퇴직,

일단 걸었습니다.


설연휴를 앞두고 블로그 마실다니다가

이웃 맑고맑으님의 리뷰에

아무리 바빠도 이책은 읽어야겠다 싶어 후다닥 주문하고

연휴이후 지금까지 재미나게 읽고 있다.


학창시절 라디오음악방송PD가 꿈이었을만큼

그 옛날,

공부는 안하고 늦은밤 즐겨듣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배한성의 밤하늘의 멜로디' 등 라디오 음악방송에 대한 추억과

걷기에 대한 로망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책으로

소개된 그 시절 좋아하던 음악들을 QR코드로 연결해 들을 수 있어

더 많이 공감되었던 것 같다. 


2019년

동생과 계획했던 제주도여행이 태풍으로 좌절되고

아쉬움이 남아있던 차에

다시 친구들과 내년 10월쯤에 제주도 한달살기를 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일찌감치 '알파캠프'를 알아보고 정보를 공유해 준 친구의 말에 의하면

숙식은 물론 교통편까지 제공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조금 빠른 걸음으로 한달동안 올레길을 완주할 수 도 있고

나처럼 숨쉬기 운동만하고 체력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선

제주오름, 휴양림 숲길, 미술관 등을 천천히 걷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하니

낮에는 각자 원하는 코스를 여행하고 저녁이후 시간을 함께 보낼까한다.


책에서도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그것도 셋이면 그 중 하나를 왕따시킨다곤 하지만

우린 몇 해동안 함께 여행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그래도 여행기간이 무려 한달이니 방은 각각 사용하는 걸로...


매일 걸으며 무사히 제주도 한달살기를 마치기 위해

올해는 8천보에서 만보 걷기로 걸음수를 늘려봐야겠다.

아직 김씨에겐 얘기안했는데 허락해주겠지?!... ^^;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지 닷새가 지났다.

해정 군의 표현대로, ‘깊은 꿈을 꾸고 일어난 기분’이다.

나이가 들면 최근에 경험한 일일수록 희미해진다.

치매란 과거의 기억을 잡아먹는 게 아니라 요즘 기억부터 꿀꺽 삼켜 나간다.

마치 활어만 공격하는 상어 같은 존재다.

내가 치매에 걸렸다는 게 아니라, 나도 그만큼 기억들이 옅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갖는다.

이렇게 나이를 먹으며 스스로를 잃어갈지 모른다.

으로의 내 삶은 ‘추억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아니라, 매 순간의 기쁨과 만족을 향유하는 일’이어야 한다.

어차피 다 잊을 일이니까. 슬퍼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걷는 즐거움은 대체재가 마땅치 않다.

그냥 다시 걸어야 하나 보다.

또다기 달력을 들여다보고, 지도를 탐색한다.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p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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