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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산문
박준 지음 / 달 / 2021년 12월
평점 :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등으로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박준 시인이 두번째 산문집 『계절 산문』을 펴낸다. 첫번째 산문집 출간 이후 4년 만이다.
독자들의 오랜 기다림만큼 『계절 산문』에는 시인이 살면서 새롭게 쌓은 이야기와 깊어진 문장들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시간을 사는 동안 계절의 길목에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 장면들을, 시인은 눈여겨보았다가 고이 꺼내 어루만진다. 때문에 산문을 이루는 정서와 감각 또한 섬세하고 다정하다.
이번 산문집에서는 경어체로 쓰인 글들이 눈에 띈다. 이는 계절의 한 페이지를 접어다가 누군가에게 꺼내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고, 시인 자신의 내밀한 독백이기도 하면서 지나온 미래에서 떠올리는 회고로도 보인다. 누군가를 향해 이어지던 말들은 이내 대상이 조금씩 흐려지면서 마치 시인이 어릴 적 하던 놀이인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가로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양옆으로 휘휘 돌리는 것”처럼 “여러 모양으로 산란”한다. 그렇게 풀어낸 시인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독자의 이야기와도 맞물려 확장된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여리고 순하고 정한 것들과 함께입니다. 살랑인다 일렁인다 조심스럽다라고도 할 수도 있고 나른하다 스멀거리다라는 말과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저물기도 하고 흩날리기도 하다가도 슬며시 어딘가에 기대는 순간이 있고 이내 가지런하게 수놓이기도 합니다.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잡으면 놓칠 게 분명한 것입니다. 따듯하고 느지막하고 아릿하면서도 아득한 것입니다. p37
어제는 유난히
바람이 거센 하루였습니다.
가지가 많은 나무가 아니더라도
바람 잘 날이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 바람을 타고 씨앗들은
얼마나 신나게 날아갔을까요
풀과 나무가 자라지 않던 외진 곳
새로 푸르게 돋아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다 어제의 바람 덕분일 것입니다. p59
천천히 살고 싶었습니다.
다정을 맡기고 싶었습니다.
나를 숨겨주는 사람을
믿고 살고 싶었습니다. p69
분명한 것은 짧은 기간의 교류든 평생에 걸친 반려든 우주의 시간을 생각하면 모두 한철이라는 것이고, 다행인 것은 이 한철 동안 우리는 서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잘도 담아둔다는 것입니다. 기억이든 기록이든.
이제 첫서리가 내린다는 상강도 지났습니다. 아름다운 우리의 가을날이 또 이렇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p141
환하게 열릴 한 해의 시간들 속에서 어떤 바람을 풀어야 할까요. 그 바람은 어떻게 현실이 될까요. 그리고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말을 꺼내게 될까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음의 바람과 삶의 현실과 인간의 말은 서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멀지 않음의 힘으로 우리는 더 멀리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역시 오래된 저의 바람입니다. p161~162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118/pimg_7623041433274983.jpg)
'계절산문'
몇해전
제목에 끌려 구입했던 책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저자
박준시인의 두번째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잠 안오는 겨울밤,
창밖의 매운 바람소리와
라디오진행자로 분한 시인의
CBS 레인보우로 듣는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
그리고
그의 사계절이 담긴 책 계절산문은
탈진한 듯 바스라든 몸과 마음을
촉촉히 채워주는 위로였던 듯 싶다.
어떤 잘못은 잘못하는 것을 모르고 하고
또 다른 잘못은 알면서도 하는데 이번에는 후자입니다.
그래서 더 죄송합니다. p53
책을 읽으며
새해 소원과 다짐 몇가지를 추가했다.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좋은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기를...
그리고
입은 가능한 닫고
귀는 활짝 열어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를...
적어도 알면서 하는 잘못은 저지르지 않기를...
그렇게 노력하기를...
살아가면서 좋아지는 일들이 더 많았으면 합니다.
대단하게 좋은 일이든,
아니면 오늘 늘어놓은 것처럼 사소하게 좋은 일이든 말입니다.
이렇듯 좋은 것들과 함께라면 저는 은근슬쩍 스스로를 좋아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p95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118/pimg_7623041433274982.jpg)